2013년 1월 13일 일요일
장자(莊子)를 펼치며
맹하린
우리 집의 뒷집에는 볼리비아인 들이 살고 있다.
제품공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명색(名色)이 한인 타운이고, 한국교민들에게 제2의 고향이라는 감동을 안기던 이 지역이 점차 인접국 사람들과 연변 교포들의 소유지로 변천되고 있는 실정에 이르른 건 벌써 몇해쯤 되었다.
몇 달 전부터 우리 집의 벽과 천정에 물이 스며들어 마룻바닥이 아니라 나무천정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거나 벽면으로 줄줄 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몇 번이고 찾아가서 매우 좋은 말, 가장 상냥한 언어로 항의하면, 높낮이가 다른 그들 특유의 억양으로 비가 많이 와서 그럴 거라는 핑계만 주절주절 성긴 빗방울 뿌려 대듯 튕겨 버린다.
가장 경악할 만한 대응(對應)이라니...
자기들 집은 멀쩡한데 웬 트집이냐고 되레 통박을 보내온다는 사실이다.
문제가 되는 우리 집과 맞붙은 그 집의 이층 화장실 바닥은 세탁기의 물 버리는 호스가 바닥에 노출되어 있었다.
주범이라고 볼 수 있는 세탁기의 사용을 당분간 멈춰 달라고 부탁했던 일주일 동안 물방울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엄청난 폭우가 퍼부었던 날들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도 않아 다시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더욱 기가 막힌 건 그들은 우리의 당부(當付)를 전혀 지킬 생각조차 안하고 새삼스러이 뜬금없는 트집까지 앞세웠다.
당면한 숙제를 떠안은 당사자들은 바로 우리니까 우리 집에서 벽이나 천정을 깨부수어 고쳐 내야 한다고 고집하며 우기는 것이다.
그리고 화장실을 다시 보여 달라고 하면 한참이나 기다리게 만들고 가까스로 보여준다.
분명 임시조치를 취한 자욱이 넘친다.
억양의 높낮이가 다른 그들과 승산 없는 싸움을 벌일 수도 없고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와 가족은 평소에 가족끼리는 물론이고 그 누구와도 논쟁이라거나 언성(言聲)을 높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안다.
그들에게 친해지자고 유화작전을 시도할 확률이 많은 나를.
세상 살아가는 근본적인 설득의 원리는 논리(論理)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에 근거를 두어서다.
새벽이나 퇴근 후.
천정과 벽에서 떨어지거나 흐르는 물방울을 바라보며 마음만은 언제라도 편하려고만 하는 주의(主義)인 내 마음이 그다지 평화롭지만은 않다.
크게 걱정이 앞선다.
우리의 2세나 3세들이 교양이라고는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보이고, 억지 내세우기를 가장 첫째가는 근본으로 일삼는 인접국 도우미들의 손에 의해 자라면서, 우유를 먹고 기저귀를 갈아 채며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유아기(幼兒期)를 겪어내고 있음에 관해서다.
내가 알고 있는 한국아기 비올레타(보라)는 인접국 도우미에게 크면서, 몸의 군데군데가 멍이 들고 잠만 자는 게 너무 이상하여 도우미를 당장 내쫒았다는 하소연을 그 엄마에게서 들었다.
울어야 할 때마다 무섭게 울음을 삼키는 증상을 치유하는 데는 많은 시일이 걸렸다고 알고 있다.
자꾸만 안아 주라고, 머리도 자주 쓰다듬어 주고, 뽀뽀 역시 많이 해줘야 한다고 …….나는 그 엄마에게 다독이듯 그랬을 것이다,
우리 집 천정은 둘째 사항의 문제라고 여긴다.
우리의 2세나 3세들이 한층 부모와 많은 시간을 공유하기를 바라게 된다.
새삼 아르헨티나가 걱정 된다
나라에 경제파동이 닥칠 때마다 석학(碩學)들과 자산(資産)이 속속 외국으로 빠져 나가고, 이론이 통하지 않는 인접국의 억지사촌들만 꾸역꾸역 밀려와 중얼중얼 높낮이 없이 대책 없는 주장만을 앞세우는 세상이 도래해 있다.
그 여파(餘波)는 점점 도를 넘고 있고, 당면한 현실이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다.
결국 나는 난감(難堪)한 일을 겪을 때마다 접하는 장자(莊子)를 음미하듯 펼친다.
'송나라상인 이야기'
송나라 사람이 '장보'라는 모자를 밑천 삼아 월나라로 장사를 갔다.
그런데 월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짧게 깎고 문신을 하고 있어서 그런 모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소유요-
작금(昨今)의 나는 송나라 사람이 되어 있다.
야만 상태에 있었으나 중국역사에 동참했던 신흥국가 월나라 사람들을 보듯 인접국 사람들에게서 동질과 타협이라는 격차(隔差)를 직접적으로 실감하는 장터에 발길을 내딛고 있다.
내가 모색해 왔던 종족(種族)간의 이해와 협력이 결코 와해될 수는 없겠으나, 나는 이민자들 틈바구니와 간격에서 오는 신뢰감이 소멸되는 아찔한 현기증을 매우 강하게 체험하는 중이다.
말 그대로 종족과 정서와 문화에 대한 커다란 낯설음이다.
인접국 사람들 다루기.
어떤 면으로는 전쟁의 도화선(導火線)이 될 돌발적 사태로 진전될 가능성이 구석구석 흔하게 엿보인다.
세상사 언제는 묘수 같아도, 어떤 땐 악재가 될 소지가 많았던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언제라도 협상이라는 카드는 남아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지난 연말.
나는 빤둘세(견과류를 넣은 축구공보다는 작은 빵인데 연말에 주고 받는 선물용.) 하나와 시드라(샴페인) 한 병까지 사들고 뒷집을 방문했다.
갈 때는 살살 달래듯 말할 계획이었다.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더라도 되도록이면 마지막 카드를 커낼 계획은 삼가기로 작정을 굳혔었다.
그런데 여전히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그들을 대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맘이 변하고 있음을 실감하고 말았다.
한 가지 조건으로는 미약하다 싶어 전면전을 시도(試圖)한 셈이고, 별다른 돌파구는 없으리라는 단정(斷定)이어서 거의 자신감 넘치게 내 적절한 표현을 전달했다.
나는 결단코 웃으며 말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그 이후로 웃음도 두려울 때가 있다는 인상을 보일까봐 나는 최대한으로 진솔한 표정을 갖춘 채 말했었다.
"더 이상 이 일로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 않아요.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내가 곰곰 생각해낸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당신들 편에서 선택하는 거예요. 우리와 공동부담으로 고쳐 보도록 해요. 그것도 귀찮으면 간단해요. 며칠 안으로 Carta Documento(내용 증명서)를 받으시게 되겠죠?"
분명하고 확실한 사실은 그들에겐 표정조차 이렇다 할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내용증명서가 두려웠던 것일까.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도 말이다.
아니면 공동부담을 부담하기가 부담스러웠으려나.
그도 저도 아니면 Pan Dulce와 샴페인의 역할이 돈독했을지도 모른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협상 끝?
새해 첫날부터 물방울도 물줄기도 단숨에 행방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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