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0일 목요일

우리 집 사전(辭典)



          맹하린


“아드님 있어요?”
이웃 가게에서 수입상품을 취급하는 S사장이다.
“정오쯤에 오는데 무슨 일이세요?”
“건너 편 공장 앞의 거지들 때문에 그럽니다. 저 공장 주인한테 전화해서 쟤들 좀 어떻게 해결하라고 그러세요. 도대체 쟤들 때문에 수준 떨어져서 어디 장사를 해먹겠습니까?”
이렇다 저렇다 토 달지 않고 나는 그렇게 전하겠다고만 대답한다.
가족한테 전화해서 나는 자세한 설명을 삼간다.
올래? 그렇게 짧게 말해도 곧장 나오기 때문이다.
주문이 여러 개 밀려 있게 되면, 나도 모르게 암묵적인 표현을 간단히 해낸다.
“왈래?”
올래를 왈래라고 말할 정도로 느닷없이 바빠 있다는 표시다.
5분이나 10분이면 도착하는 가족이 40분 후에나 도착했다.
욕실의 수도꼭지가 말썽을 일으켜 그걸 혼자서 뜯고 원상복귀 시키느라 늦었다는 얘기다.

생긴 건 곱상한데 뚜렷한 주관쟁이에다 끈기가 한 몫 한다.
뭐든 솔선수범 고치기를 즐겨 실행해 왔다.
어려서부터 멀쩡한 건 하나 같이 망가뜨려 놓고  고장 난 건 기어이 고쳐내는 반전의 연속이었는데, 나로선  전부 다 눈 감아 주고 기다리고 참아 줘 왔었다고 본다.
기술이란 게 실패하면서 익히기 마련 이라 서다.
어쩌면 나는 전생에 유태인이었는지도 모른다.
남보다 ‘뛰어나게’키운 게 아니라 남과 ‘다르게’키우는 걸 최우선으로 삼았지 싶다.

나는 점심식탁을 차려 주며 노숙자문제를 설명한다.
“그래서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분의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 뭘. 왜 하필 우리가 나서겠니?”
S사장은 최신형 아우디를 몰고 다니는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있다.
나는 짧고 핵심적인 결정을 순간적으로 표출한다.
“개입하지 말자.”
신문의 사설에서 누누이 읽어왔다.
노숙자 보호시설에 들어가면 끼니는 물론이고 날마다 샤워를 할 수 있고 단체생활을 영위한다는 잇점도 있으며 전문의 역시 상주한다는 사실을.
나는 글에서나 나댈 뿐 웬만한 일에는 못 본 척, 모르는 척, 모자란 척 하는 주의에 철저하다.
그렇게나 제대로 차려 놓은 복지시설을 마다하고 붙잡혀 가는 족족 뛰쳐 나오는 그들.
흡사 닭장 같은 나무상자를 켜켜로 쌓아 놓고,  너댓의 청년들이 노숙을 고수하고 있다.
저들에게도 자유를 누릴 특권은 분명 주어졌을 것이다.
한인 타운에 오고가는 한국인들에게서 떨어지는 콩고물 맛이 날이 갈수록 고소한 치즈 맛인지도 모른다. 쾌쾌한 냄새와 고소한 맛을 골고루 지녔으며 영양도 풍부한…….

며칠 전,  S사장과 노숙자들이 서로 갈궈 대는 소란을 우연히 목격했었다.
S사장의 고객들이 구매 후에 집으로 돌아가다가 노숙자들에게 적선하려던 찰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S사장 쪽에서 못 주게 가로막은 데서 생긴 충돌이었다.

나는 우리 가게 앞을 지나가던 S사장을 반대로 지나가던 중, 지나가는 말을 지나가게 전하고 있었다.
“쟤들에게 앙심을 품게 만들지는 마세요. 해코지라도 당하고 싶으신 거예요?”
“박해를 당해야 저곳을 포기하고 떠날 것 같아서 그럽니다.”
“쟤들이 무슨 예수그리스도인가요? 저 공장의 관리인들과 경찰들조차 건드리지 않으려는 문제아 그룹입니다. 무늬만 노숙자들이라는 거 아시죠?”
난감한 표정을 못 벗어나는  S사장을 웃어주며 나는 가게로 향했다.
S사장은 잊었다는 듯 커다랗게 내 뒤에 대고 소리쳤다.
“내가 저 녀석들 나무판자를 모조리 끌어다 버렸습니다. 저놈들 안보일  때 말입니다.”
나는 못 들을 척 서둘러 가게에 들어섰다.
S사장의 커다랗던 음성이 의아했던지 가족이 물었다.
“괜찮아요?”
“물론 괜찮아.”
나는 속으로 대답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세상은 격파하는 게 아닐 거야. 마냥 흐르는 게 순리인 것 같아.)

우리 집 사전에는 고발이나 고소가 없다. 신고 역시 화재신고 정도만  한다.
내게 남겨진 소중한 시간들 아무 일에나 낭비하고 싶지가 않다.
세상과 예술을 아끼기에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고통에서 벗어나서야 평화가 온 게 아니라, 고통 중에 있을 동안 나는 특별히  평화를 얻었는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에 젖을 때 간혹 있어 왔다.
내게는 노숙자들이 전혀 거치적거리지도 않고 불편할 일이 없는데,  다른 이들의 눈에는 가시처럼 쓰리고 따가운 모양이다.
(나는 거지사촌쯤 되는 존재?)
저 높은 이의 시선으로 부각시키자면  우리 모두 노숙자들이 아니려는지...

초인종이 울린다.
다시 S사장이었다.
얼떨떨한 표정을 숨기며 나는 가게 문을 열었다.
“아드님 있어요?”
“네. 있어요.”
“산책길의 수도가 크게 고장 났어요. 저놈들이 머리감고 옷을 세탁하느라 난리를 치더니 결국 고장을 냈지 뭡니까?  당장 신고하고, 수도 자체를  아예 없애버리라고 하세요.”
“하하.  잔디나 나무들은요?  그리고 쟤들도 사람인데 샤워라도 하게 놔둬야 할 것 같은데요.”

가족은 시청에 전화도 하고 수도 국의 홈페이지를 검색하더니 메시지도 보내고 그런다.
우리 집 사전에 첨부해야겠다.
수도고장신고도 한다!
가로등 사이의 플래카드 되어 펄럭이는 ‘물을 아끼자'는 캠페인이 느닷없고 속절없어만 보인다.


댓글 2개:

lovemate :

님....
집과 가게에 인터넷이 동시에 끈겨 글과 뎃글을 당분간 못씁니다.
갑자기 오른 폭탄요금에 항의를 하니깐 바로 끈어버리네요.ㅎㅎ 참 좋은 나라입니다.ㅋㅋ
지금은 동생가게에서 잠시 뎃글 남기고 갑니다.
당분간 제가 안보이더라도 걱정? 하지마세요.
곧 돌아 오겠습니다.

아르헨 드림.

maeng ha lyn :

우리집 사전에 몇 조항 더 첨부해야겠어요.
걱정하지 말라는 분은 꼭 걱정하자!
그리고 곧 돌아 오도록 기도하자!
그리고 낚시 중 건진 물고기가 멀뚱멀뚱 님을 쳐다보는 예전 어느 날의 한 컷을 떠올리며 걱정을 자꾸만 덜고 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