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6일 토요일

'돌아온 장고(Django)'





      맹하린


검정가죽 소파에 기대 앉아,  나는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 속으로 초저녁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밤으로 도착하기도 전에 도중하차(途中下車)를 했다.
어제 퇴근 후였다.
아예 그만둘 각오를 굳힌 건 아니었고,  다음에 다시 틈을 내어 떠나 볼 의도로 그랬을 것이다.
가게에서 여러 번이나 관람을 시도(試圖)했으나 번번이 포기하고는 했다.
이상하게도 진도(進度)가 지지부진한 여행이었다.
슬픔이라거나 고통까지도 리듬으로만 창출(創出)된 영화였으므로 어딘지 모르게 진지(眞摯)해지지가 않았고 몰입조차 어려워서 더 그랬다고 본다.
그 영화를 보는 장면마다  나의 머리엔 음악적인 물결만 출렁였다.
고통이건 기쁨이건 따지지 않고 뮤지컬배우처럼 리드미컬하게 숨 쉬어 왔던 나의 일상(日常)들을 홀연 되돌아보게도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푸르르 일어나 원탁을 마주하고 노트북의 파워를 넣었다.
집에서는 금기(禁忌)처럼 멀리하던 작업이었다.
일 년도 더 넘게 노트북을 방치해 뒀을 것이다.
양어깨에 두 개의 날개가 솟고 푸르른 등줄기의 뿌듯함과
햇살 투명하게 반짝이거나 무지개로 뜨던 파릇파릇한 감성들이
파도 되어 밀려오고 밀려갔다.

우리 인간은 얼마나 오묘하며  자유자재로이 흐를 때가 잦고 많은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무한정 과거로 거슬러 오르는 몫을 매번 거듭할 수가 있는
특별함을 갖췄다는그 자체라니.
때를 막론(莫論)하는 성격이기는 해도,  나는 중력 달 지구 타원궤도 회전 지구 행성 태양의 둘레 회전증명 등의 언어들이 잇달아 부각되는 뉴턴의 법칙에는 매우 드물게 관심을 기울이는 성향(性向) 매우 짙다.
나는 수학(數學)에는 지독한 문외한이다.
난해한 수학 때문에 한층 문학에 가까워졌을 확률 특히 많다.
세상에나!
지구라는 이 행성엔 내게 방정식처럼 난해한 수학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흔하게 널려 있는가.
하여, 내가 문학이라는  고난의 길목에서  목이 길어지는 건 당연지사(當然之事)가 당면(當面)한 문제처럼 파생 되었을 터…….
그렇지만 세상천지에서 가까이하고 싶은 일만 실행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는 공식(公式)은 자고이래 누누이 입증(立證)되어 왔다.
사람이 실행하기 가장 어려운 일 두 가지를 축소하라면 다른 사람이 나를 훼손하는 발언을 했을 경우 용서하는 마음과, 내가 지닌 것을 약간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자세라고들 일컫는다.
포괄적(包括的)으로 표현하자면 우리 모두 동시대(同時代)에 흘러가는 같은 행성의 테두리 안에서 크고 작게 반짝이는 하나하나의 별 떨기라는 사실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긍정 심은 그 어떤 위대한 이에게서도 질타로 표출되어서는 곤란하다.
사람이 그 누군가에게서 동질성을 감지하는 일은 생의 권태(倦怠)에서 비롯되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누구를 좋아하는 감정 또한 아무도 자신 있게 설명할 수가 없겠고.
그건 단지 운명적 압도(壓倒)라고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인생사 어찌 보면 격언(格言)이 바로미터가 될 경우 흔하게 있어왔다.
"밉게 보면 풀 아닌 것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것이 없다."
내 시야가 풀로 뒤덮이면 보이는 사물 마다 풀이고, 내 시야가 꽃으로 맺히면 눈에 띄는 상황마다 꽃이 핀다.

결국 나는 종반(終盤) 무렵에야 디카프리오가 악당(惡黨)역할로 등장하는 영화 '돌아온 장고'를 밤늦도록 관람하기에 이르렀다.
밤중에 마실 물을 병에 채우기 위해 부엌으로 가다가, 내가 아슬아슬한 경지에 몰입해 있는 거실에 섰던 가족이  한 마디 했었다.
"그거 애들이나 보는 영화인데……."
"옛날에 애들이던 시절에 남친 하고 함께 봤던 영화야.  무섭다는 핑계로 남친이 내손을 잡았던 것도 같고, 나도 좀 그렇다!  내쪽에서 무섭다고 내숭을 떨었어야 하는 거 아니었나?   하하.  새로우면서 흥미진진이야. 이 영화..."
사실 나는 아직도  스릴과 액션에 적응되고 당긴다는 자세를 고수(固守)하고 있다.
가난이나 절망, 혹은 극한 상황 등이 돌출하는 '레미제라블'이 내겐 영원한 부적절함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쉬엄쉬엄 접근하게 되는 분야인가 보다.
나는 계속 뮤지컬로 숨 쉬며 살아낼 것이다.
처음이다.
학창시절에 단체로 보았으며, 감명이  넘치던 영화를  이리도 띄엄띄엄 행군하는 '레미제라블'이라는 저 여행은…….

이 기호 소설가의 칼럼 '너무 많은 공감' 후반부가 강하게 어필된다.
아이들 때문에 '레미제라블'을 먼저 보고 온 그분의 아내가 전하는 말.
"그나저나 저 영화 왜 다 뮤지컬로 만들었는지 알아? 누가 그러더라. 가난한 것들. 이런 식으로라도 뮤지컬 봐라."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