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하린
밸런타인데이라기보다 연인의 날인 14일은 물론이고 15일까지 이틀에 걸쳐 퍽으나 바빴다.
매번 느끼는 바로는, 아침나절에 시집(?) 가는 꽃에 따라 그날의 유행과 가격이 평균화 되고는 한다는 점이다.
100페소(15달러 상당)의 라운드형 꽃다발이 빠르게 입소문을 탔고, 전화주문을 하는 고객마다 둥근형으로 된 100페소 가격의 다발에 초콜릿도 주시는 거죠,를 노래 삼고 있었다.
해를 더해 갈수록 현지인 고객이 늘어나는 추세(趨勢)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고객은 현지인 마르셀로 내외였다.
항상 그래왔듯 마르셀로는 당일에 앞당겨, 10일쯤에 미리 주문하러 왔었다.
딸이 결혼하는데 살롱의 메인 식탁에 놓을 사방 화와 부케를 맡아달라는 설명이었다.
나는 흰색을 바탕으로 한 연분홍을 매치하여 장식해 놓기로 했다.
14일 오전 11시에 찾으러 오기로 했었다.
바쁜 날은 뭐가 겹쳐도 겹치게 된다.
바쁘기 마련인 날이라서 그런 것 같다.
바쁘기 마련인 날이라서 그런 것 같다.
정각 11시에 도착한 마르셀로 내외.
초면이 되는 부인은 자기 이름이 제시카라고 이름부터 밝혔다.
탤런트 장미희와 흡사한 분위기에 말투까지 똑 같았다.
부인이 말을 시키기도 전에 마르셀로는 그녀의 등 뒤에서 내게 살짝 윙크하며 가만히 들어내 달라는 제스처를 보내왔다.
생김새와는 달리, 의외로 시름을 섞으며 제시카는 말을 더듬거리듯 이어 나갔다.
"도대체 꽃을 맞추기는 했다는데, 평소에 당신이 만든 꽃을 선물 받은 경험은 많아도 이번엔 아주 특별한 날인데, 딸애가 결혼하는데, 그런데 마르셀로는 잘 기억이 안 난다고 그러는 거 있죠? 플라스틱으로 된 조화(造花)로 맞춘 것 같다고도 그러고, 빨강과 노랑을 주로 꽂아 달라고 부탁했었다고 까지 말하는가 하면, 그리고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해서... 우린 매사에 튀는 걸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는 생활신조라서 걱정이 참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마르셀로는 재삼 내게 윙크를 보내고 있었다.
(어쩌면 좋은가. 뭔가 나쁜 일을 저지르진 않았는데, 그런데 말썽에 휘말린 듯 한 이 느낌은...)
"당신 남편 마르셀로는 주문을 꽤나 정확하게 했던 걸로 알아요. 오늘은 약간 바쁜 날이라서 주문보다 소홀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해해 주셨으면 해요. 하지만 빨강과 노랑이 아니라, 비올레타(보라)와 살몬(주황)으로 장식한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디오스 미오(세상에나)! 비올레타... 그 슬픈 색으로도 부족하여, 딸이 가장 배척하는 살몬색을요?"
작으면서 또박또박한 음성을 내지르는 차갑고 지성적인 경악이라니!
아무 말 없이 곧장 작업실에서 내간 하양과 분홍이 고루 배합된 부케와 사방 화를 보는 순간 당장에 마음에 들어 하며 마르셀로의 어께에 쓰러지듯 기대며 웃는 그녀, 제시카.
언제나 그렇듯 자가용의 바울(트렁크)에 꽃들을 실어 주자, 제시카는 내게 뜬금없이 물었다.
"저 건너 편 공장의 간판은 누가 세 놓은 거죠? 어떤 용도에 사용할 수 있는 공장인가요?"
나는 마르셀로에게 전수 받은 대응을 재빠르게 전달하고 있었다.
"난 모르죠. 단지 저 건너 편 공장의 건너편에서 가게를 할 뿐, 사실 저 공장이 뗄라(피륙)를 취급한다는 정도만 알고 있어요. 아마 당신 남편이 저보다 훨씬 더 많이 아실듯요. 제 생각으로는 남편께서 적절한 답을 매우 멋지게 꾸며내 집으로 가는 동안 근사하게 설명해 줄 것만 같습니다만..."
그 내외의 희극적인 웃음만 잽싸게 접수하고 나는 총총 가게로 돌아와야 했다.
분석하건대 마르셀로는 평소, 부인의 자로 잰 듯 한 성격에 질리고 말았던 마음을 그런 식으로 통쾌하게 복수(復讐)하는 지도 모른다. 절대로 미워하거나 버릴 수도 없는 부인에 대한 애정(愛情)을 그런 방식으로 스스로에게까지 설득시키는 지도 모르겠고.
나는 마르셀로 내외에게서 영원한 연인(戀人)의 표양을 발견하게 됐었다.
제시카에게서는 순간적이랄 수 있게, 배우자의 그 어떤 면모조차 신뢰하고 아끼며 사랑하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고 여긴다.
아르헨티나 여인들은 현지인이건 교민이건 남자를 제대로 휘두를 줄 아는 것 같으다.
밸런타이데이를 연인의 날로 뒤바꿀 수 있도록 역전의 실력을 발휘한 것도 그렇고, 그리하여 꽃 사러 온 여성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기에 하는 말.
제시카에게서는 순간적이랄 수 있게, 배우자의 그 어떤 면모조차 신뢰하고 아끼며 사랑하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고 여긴다.
아르헨티나 여인들은 현지인이건 교민이건 남자를 제대로 휘두를 줄 아는 것 같으다.
밸런타이데이를 연인의 날로 뒤바꿀 수 있도록 역전의 실력을 발휘한 것도 그렇고, 그리하여 꽃 사러 온 여성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기에 하는 말.
불경기에는 불경기에 어울리는 상품이 있다.
물론 값진 꽃바구니 주문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착한 가격의 상품이 제대로 먹히는 시절(時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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