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7일 목요일

우리는 한국인




      맹하린


 며칠 전의 오후 4시 경.
금요일이었다.
바다가게에 갔다.
그냥 저냥 옷들을 들추거나 다시 제 자리에 걸고 그랬다.
뚜렷하게 건질 생각 같은 건 없었기 때문에 산책이나 하려고 산뜻하게  다시 그곳을 나왔다.
우리 가게를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물 한 모금 입에 넣듯 물끄러미 본 후, 스쳐 가는데 편의점 앞에 경찰차가 경보 등을 켠 채 반짝반짝 깜박이고 있었고, 앰뷸런스도 깜박이로 맞장구 치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경찰이나 경찰차가 보이면 가까이 가지 않는 성격인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내 발이 저절로 그쪽으로 다가 가고 있었다,
바다가게로  갈 때,  이미 경찰차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기억이 찰나와 같이 떠올랐다.
편의점으로 다가가는 나를 경찰들이 교양 있게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손을 약간 흔들며 씩씩하게 인사를 건넸다.
"부에나스 따르데스(좋은 오후입니다)."
편의점에는 육중한 체격으로 입구를 가로 막은 것처럼 경찰 하나가 서 있었다,
나는 사람 문인지 사립문인지의 그 경찰에게 부탁처럼 물었다.
"뿌에도 빠사르 아덴뜨로(안으로 들어갈 수 있나요)?"
안쪽에서는 근심스런 표정을 공동으로 띤 수입상여인과 냉동김밥여인이 보였다.
냉동 김밥.
외식을 잘 안하는 내가 어느 바쁜 날.
근처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식당에 김밥 2인분을 시켰었다.
냉동됐다 풀린 기미가 여실한, 몹시도 차갑고 딱딱하기까지 한 김밥이 배달돼서 나와 가족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입맛 버렸다고 가족은 그날의  점심을 과자로만  때웠다.
나는 그럴 때, 냉동 김밥에 대해서 나중에라도 따지는 성격은 아니다.
길에서 만나면 나를 선생님이라고 따르는 여인이라서가 아니라, 내 성격이 워낙 그 모양으로 생겨 먹었다.
그러려니 한다.
나 아니래도 세상을 바로 잡을 사람은 많기 때문이다.

편의점 강 여인은 머리쪽에서 피를 흘리며 냉장고 옆에  눕혀져 있었다,
의사로 보이는 푸른 제복의 현지인 여인이 강 여인을 지혈 시킨 후 일어섰다.
누구의 연락을 받았는지, 편의점 강 여인의 딸과 사위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의사가 차트를 펴더니 강 여인의 이름을 물었다,
딸과 사위는 충격 때문인지 꽤나 더듬거렸다.
벌써부터 이름을 익혔던 내가 대답하기 시작했다.
또박또박 읊었다고 본다.
"아뻬시도(성씨), 강! 까 아 애네 헤. 놈부레(이름), 영자! 이그리에가 오 우 애네 헤. 세빠라도(칸을 떼고), 자! 호따 아."
여의사는 다 적었다는 듯 펜을 멜로디라도 파생시킬 것처럼 힘껏 떼며, 나를 향해 상큼하고 탄성과 같은 음성으로 초등학생에게  좋은 점수를  베풀듯  말했다.
"무이 비엔(참 잘했어요)."
(원래 위급상황일 때 난 그렇거든요? 뭘...)
골판지로 만들어 자유자재로 팔다리를 접었다 펼 줄 아는 장난감 병정처럼 작동하는 만능휠체어에 누운 채 강 여인은 아무런 기척도 없이 앰뷸런스의 웨앵웨앵 소리에 실려 갔다.
지금껏 그 처음 본 휠체어침대의 최첨단 기능성에 놀라 있다. 구태여 사람의 손이 접고 펼 필요도 없이 어디에 닿기만 하면 펴지고 접어지고  세워지던...

엊그제부터 강 여인은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편의점 문에 쇠줄을 건채 열쇠까지 잠그고  쉬엄쉬엄 일하고 있다.
낯을 알고 있는 노숙자였다고 한다.
손바닥만 한 돌멩이를 허리춤에 감추고 들어왔고,  협박하고 실갱이 하는 과정에서 뒤통수를 여러 차례 가격(加擊)당했다고 한다,
돈 통과 포켓에 넣었던 돈들을 모두 털렸다는 얘기다.
그런데 뒤통수를 맞았다는 강 여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앞 통수가 튀어나오고 눈두덩은 빠샤쇼(어릿광대)와 흡사한 붉고 푸른색으로 굵고 둥글게 선이 그어져 있다.
나는 철학처럼 깨닫는다.
(그러니 그 누구에게라도 말 한마디조차 장난스레 말아야 해. 아무리 옆통수에 대고 웃어도 상대방은 앞 통수가 붓고 울긋불긋 멍들지 않던가.)

지금껏 문을 훤하게 열고 지내다가 문을 꼭꼭 닫은 채 일하기 시작한 강 여인.
우리는 한국인이다.
언제 어디서나 외국에 살지라도 어느 날 어느 시간에도 한국인이다.
강 여인은 요즘 지인들이 날라다 주는 김밥과 야채쥬스와 반찬과 찌개가 넘치고 넘쳐,  때 아닌 비명이다.
선글라스를 안 끼고 자랑스레 말할 때, 강 여인의 표정은 가히 희극적이랄 수가 있겠다.
하지만 몇 대 얻어맞은 사람 확실하게 맞다.
원래 잘 웃지를 않았었지만 너무나 안 웃고  있다.
한국학교 학생들로 북적대던 편의점이지만 여름방학으로 학생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편의점 한편에서 화투도 치고 카톡도 하고 양푼비빔밥도 나눠 먹던 우리의 한국 여인들은 휴가에서 돌아와 뭔가를 가져다주기에  바쁘다.
다시 문 활짝 열고 장사하는 날이 오도록 바라게 된다.
화투장으로 일진을 알아보는 패도 떼볼 것이며, 신 김치 넣은 비빔국수도 나눠 먹고 시끌벅적 카톡도 해낼 수 있는 날들이...... .
나는 오며가며 내 동족인 그들의 유한(有閑)을 늘 안도(安堵)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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