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일 화요일

펠리스 아뇨 누에보




    맹하린


아침 8시까지 성묘 다발 3개를 준비해 놓으라는  고객의 주문에 맞추려고 6시쯤 집을 나서게 되었다.
영락교회 근처에 둥지를 튼 20대의 노숙인 들이 커다랗게 인사를 건네 온다.
"아쥼마(아줌마), 펠리스 아뇨 누에보(새해에 복 받으세요)!"
"이괄 멘떼(마찬가지로)!"

정원이라는 이름의 식당 앞 산책길에서는 피식 웃음이 터진다.
벌써 보름째나 그 자리를 지날 때마다 습관적으로 웃는 웃음이다.
부인회 임원인 L여인이 보름 전의 오후 무렵, 엉덩이 부분이 암팡지고 사람보다는 약간 키가 큰 덕더구리란(덕란)을 올려다보며 현지인 여인과 대화 중에 툴툴대고 있었다.
아랫부분으로 흐르는 마르고 갈색이 된 쭉정이와 다름 아닌 머리카락들(?)을 누가 모두 뜯어냈다는 투정이다.
나는 그녀와 안부의 포옹을 나눈 뒤 선뜻 이실직고 했었다.
"나였는데?"
나는 산책길의 나무들에 붙어있는 노랗거나 퇴색한 잎, 또는  가지들을 그동안 자주 손봐줬었다.
"아이고, 이 나무는 우리가 20년을 집 앞의 화분에 길러 온 나무인데 우리만 보느니 다른 이들도 보게 하자고 얼마 전 내다 심은 나무랍니다. 알아도 우리가 더 잘 알죠. 그냥 놔둬야 훨씬 잘 자라거든요? 그렇게 마르면서 크는 게 이 나무의 특징이에요. 오죽하면 우리 집 양반이 악담을 다했을까.  이 나무의 겉잎을 누가 다 뜯어냈다고, 어떤 손모가지인지 당장 부러져 버려라! 그렇게 ."
"하하하."
환희작작  웃음부터 터뜨린 나는 순간적으로 내 손모가지를 올려다 보다가 자세히 내려다보게도 되었다.
"아직은 멀쩡한데요? 모든 나무의 삭정이들은 제 때 따 줘야 따로 영양소를 빼앗기지 않아요. 앞으로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왕성하리라고 확신 합니다. 약속까지도 할 수가 있어요."
"글쎄 우리가 자식처럼 키운 나무라니까요. 알아도 우리가 더 알죠."
그런데 그 나무가 보름이 되는 요즘 머리카락의 숱을 푸르면서도 놀랍고 풍성한 모습으로 잔뜩 내려뜨리는 중인 것이다.

나는 며칠 전 L여인의 남편이 허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손목이 아니고 왜 허리지?)
살아오며 나는 수차례 경험했었다. 내가 누구를 욕하면 그 욕이 누구에게 미처 닿지 못할 경우, 결국은 내게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결코 어떤 누구에게도 욕을 사용하지 않는다.

제일교회 앞의 산책길을 지날 때는 되도록 땅을 보며 걷거나 하늘을 올려다보며 걷기를 즐기고 선호한다.
제일교회를 지키는 현지인 Vigilancia(사설경찰)와 매일 인사하기가 약간 겸연쩍어서다.
가끔은 길을 사이에 두고 고개를 까딱하거나 손을 들어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오늘 역시 오른쪽나무들과 눈 맞추며 그곳을 지나고 있었다.
"세뇨라( 아주머니)!"
그 사설경찰이 나를 불러 세웠다.
나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길 가장자리까지 다가오더니 길이라는 돗자리 앞에서 한국식으로 허리를 잔뜩 숙이며 인사를 보내 왔다.
"펠리스 아뇨 누에보(새해 복 받으세요)."
나는 순간적으로 길이라는 돗자리의 중간쯤까지   갔고,  그 역시 스스럼 없이 다가와 우리는 길이라는 돗자리 위에서 서로 악수하며 각자의 인사를  충실하게 다시 해냈다.
"펠리스 아뇨 누에보."
"펠리스 아뇨 누에보."

가게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나무들과 꽃들과 세상을 향해 새해인사를 동서양식 마구 뒤섞으며 작게 외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펠리스 아뇨 누에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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