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5일 화요일
휴식과의 소통
맹하린
지난해엔 지독히도 극심한 불경기를 겪었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겸허를 표출했지만 나로선 다른 해보다는 더 바쁘게 일했던 것 같다.
인플레 문제, 그리고 환율급등으로 위정자들에 대한 불신(不信)과 잦은 어리둥절 상태는 그다지 낯설지만은 않던 사안이었지만, 애면글면 분주함 속에서 지냈다는 사실만으로 명쾌히 접어 두게도 된다.
여름태생이어선지 나는 여름에 주로 글을 쓴다.
하물며 아르헨티나는 12월 초부터 3월 초순까지 무려 3개월이나 휴가시즌이다.
1년에 걸쳐 19번인가 있다는 공휴일은 차치하고, 대부분 보름이나 한 달 남짓 지방 도시와 국외로의 여행들을 연례행사 삼아 다녀온다.
도시는 서부영화에 나올 법한 장면처럼 텅 비고, 거리마다 자동차도 드물고 고객들 또한 뜸한 상태다.
한적한 시간을 여행이라는 고생과 맞바꾸는 일이 내겐 어느 날부터 더 이상 내키지 않는 삶의 행간처럼 접혀져 있다.
음악 속에서 글 쓰고 책이나 읽으며 소일하는 게 가장 신명이 날뿐이다.
책을 읽는 도중엔 습관적으로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사다 먹고 그런다.
나는 붕어나 멜론으로 된 한국산 아이스크림보다 아르헨티나산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훨씬 맛있어 하는 취향이 있다.
값도 저렴하고 산뜻한 맛이라서 더 그럴 테지만, 어찌하여 한국 아이스크림은 약간의 눈물이 글썽여지는 고향 맛이기에 부득불 간혹 가다 구입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어제 역시 알멘드라(아몬드) 맛의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편의점에 갔다.
마침 편의점 강여인을 포함한 지인 넷이서 각자의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서는, 각각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희희낙락이 대체적이었다.
Y엄마는 카톡, N여인은 가요동영상을 보며 어깨춤. K여인은 기념사진 들여다보기, 강여인은 거베라꽃 두 송이가 크게 부각된 바탕화면의 아래 켠을 손가락 끝으로 밀면서 내게 시 하나 좋은 거 건졌다고 자랑처럼 보여주고 그랬다.
하하하. 그렇게 화통한 웃음을 잘 터뜨리는 나지만 그곳을 나올 때는 깔깔 대며 웃지 않을 도리라고는 없었다.
넓은 정원을 소유한 저택에 살면서들 왜 날이면 날마다 좁디좁은 편의점에 약속처럼 들이닥쳐 양푼 하나에 공동합자(公同合資)로 밥 비벼 먹고, 호박잎쌈 나눠 먹고 그러는 것일까.
하필이면 한 깔끔하는 내게까지 이 여인 저 엄마가 한 쌈씩 큼직하게 손수 나의 입안에 쌈밥을 넣어 주고 그러는 것일까.
가게로 돌아오는 길의 앞쪽에서 걸어오는 젊은 현지인 커플조차 서로 카톡하며 위태로이 아슬아슬 걸어오는데, 생글생글이 너무도 잘 어울려 보여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나는 또 웃고웃었다.
이번엔 쿡쿡쿡!!!
그 누가 설파했을까.
최상급(最上級) 쾌적함과 탁월함이 최선(最善)과 같이 아우러진 환경일지라도 마음이 함께 섞이지 못하면 지옥과 다름 아니며, 퇴보(退步)와 척박함이 뒤얽히듯 조성된 환경이라도 마음이 닿고 마음을 열고 마음을 쏟게 되면 그곳이 곧 천국이라고…….
햇살이 자글자글 퍼지는 도시.
너도나도 떠난 도시의 한 가운데에서 나는 올해도 틈틈이 산책하며 텅텅 비어 있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파수꾼처럼 열심히 지켜내며 재밌게 잘 지내고 있다.
예전엔 여행과 휴가를 제때에 누렸을지라도, 지금은 단지 집과 가게를 오갈 수 있다는 현실 그 본체(本體)를 가장 감사하게 되는 날들이다.
날마다 변화 추구하며 시골풍이면서 소박하게 차리게 되는 집밥을 매일 먹을 수 있어서.
내 소유의 연필이 작대기 발로 노트라는 빙판위에서 스케이트 타기를 즐겨 실행해서.
그 누구와도 나를 견주지 않아서.
거의 모두 떠났지만 나까지 떠나지 않을 수 있어서.
하물며 절대고독이 필수인 장르의 글쟁이 노릇에 치열하게 세뇌되어.
멀리 여행을 떠나온 처지도 아닌데 슬프거나 고즈넉해져서.
참 대책 없다.
내 영혼의 침잠(沈潛).
작렬(炸裂)하는 태양빛의 열정이 묻어 있는 내 빗장뼈의 시리거나 아린 통증(痛症).
그네에 흔들리듯 지금은 휴식과 소통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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