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1일 목요일

영원한 서민...맞다




                  맹하린


아르헨티나는 12월부터 들썩이기 시작하여 3월 초까지 여름휴가철이다.
보통 보름 정도의 여행들을 떠난다.
본국의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민족 대이동을 연상하게 될 정도의, 같은 수준이라고 하기에는 훨씬 길면서도 도시 전체가 텅 빈 느낌 매우 강하다.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여름휴가를 알차게 보내기 위해, 일 년 내내 적금을 붓기도 한다.
기다렸다는 듯,  해마다 이맘 때쯤 되면 달러가격은 지나칠 정도로 급상승의 곡선을 긋는다.
수요와 공급이 적정선을 유지하지 못하는 관계로 과도한 달러병목현상까지 유도한다.
루머에 의하면 몇몇 정치가들이 달러시장을 쥐락펴락 한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피어나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불경기, 달러시세 급등(急騰), 수입규제라는 삼박자의 경제적 변동에도 불구하고 해외로 관광을 떠난 피서인구는 그 어느 해보다 신기록 갱신의 수치를 달성했을 정도로 올해 역시 시작부터 여행이고 즐김이고 휴식이다.
이웃나라 칠레에 몰린 관광객의 40퍼센트가 아르헨티노들이라고 한다.
우루과이나 브라질의 해변 가에 있는 개인별장이나 임대별장을 선호하던 지난해까지의 유행이 향방(向方) )을 뒤바꾼 양상으로 변했다고도 전한다.
결정적인 원인은 적정선 이하의 가격다운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대통령 크리스티나는 관저의 화장실 수리비용에 3백만 달러인지 3백만 페소(1백 50만 달러 상당)인지를 들였다는 소식이 얼마 전 현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하도 인플레이션이 가파른 곡선을 긋고 서민들의 장바구니가 날이 갈수록 부피가 줄어드는 사태가 발생(發生)하자, 꼬보스 전(前)부통령은 화폐개혁이 절실하다는 예견을 강하고 절실한 태도로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현 부통령의 성씨는 부두다. 한글로 글을 끄적이는 내겐 웃음만 나오는 존함이다. 하물며 부두 부통령의 이름은 아마도다. 나는 가끔 아마도 노래를 잘 흥얼거린다. 아마도 별 일은 없겠지. 아마도 화페개혁은 없겠지. 아마도 머잖아 다시 좋아지겠지.)
각설하고,  화폐개혁설은 2012년 내내 몇몇 정치가들이나 경제인들에게서 자주 회자되던 쟁점(爭點)이었다.
현실적으로 정권(政權)의 실세(實勢)도 아닌 정객(政客)의 정치이론인지라, 공신력이라거나 공권력이 제 빛을 잃은 한낱 주장(主張)에 불과하다고 가볍게 치부할 수도 있다.
하여간에 정치가들이란 입에 무쇠조각을 단 것처럼, 평소에는 아무 말이 없다가도 맘만 먹으면 너도 나도 쨍그랑거리면서 요란을 떤다.

작금(昨今)의 아르헨티나 Pampa(대평원)나 Campo(농경지대)들은 소를 사육하는 일보다 쌀이나 콩, 그리고 옥수수와 해바라기들을 재배하는 일이 보다 원활한 수출신장을 보장하는 공헌이라고들 확신을 굳혔는지, 알게 모르게 점차  변화하는 추세다.
아마 몇 년 전부터 그러한 변혁을 실현해 왔던 듯하다.
고기값이 올라서 어쩐지 고기맛이 고급스러워졌다고 감탄했더니,  아마 소보다 작물이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는 실정(實定)이라서 더 그리 된 모양이다.
정부는 앞으로의 주요 경제성장을 콩 수출에 쏟고 기대하는 시대적 추이에 너무나 민감해 있다.

달러파동도 그렇다지만 화폐개혁.
한두 번 겪은 일은 아니다.
일어날 수도 있겠으나 안 일어 날 확률도 많다.
누가 뭐라 해도 그것은 최선(最先)이라는 이름의 최악(最惡)의 카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아침,  암달러시장인 후로리다 거리는 어느 큰 손에 의해 큰 폭으로 좌지우지 됐었다고 메스콤은 전한다.
한 사람이 4백만 달러를 구입해 가는 이변(異變)을 보인 것.
당연지사  암달러상승현상은 큰 파장으로 전환된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중앙은행은 발 빠른  개입을 서두르며,  적정량의 달러를 암달러 시장에 풀어 왔고, 위험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태세에 전폭적으로 임해 왔으나,  어제는 정부시세만  조정하는 선에서 그쳤다는 속보(速報)다.
별일이 아닌 것 같은 별일이다.
달러는 잊게 만들고 페소만 생각나게 해주겠다던 정책이 어찌, 뭐, 왜 이런가.
내 철학은 아르헨티나에서 느긋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달러가 널 뛸 때일수록 달러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주의다.

아르헨티나에서 살아가는 일.
그건 절대로 심심하다는 수준과는 무관한 일이고 어떤 면으로는 흥미진진이다.
그러나 심심하지 않다거나 흥미롭다는 내 표현은 표면적으로 이해한 것에 불과할 뿐, 결국 아르헨티나의 속성(屬性)까지 이해했다는 말은 아니다.

일찍이 괴테가 읊었을 것이다.
'인간들이란 대개 어슷비슷한 거라네.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가기 위해 다 써 버리고, 자유로운 시간이 그저 조금이라도 남아 있게 되면 오히려 마음의 안정을 잃는 데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그 시간을 없애 버리려고 기를 쓰는 성향이 뚜렷하지.'

지나치게 왁자지껄한 분위기일 때면  나 도리어 여행을 삼간다.
더 이상 잃을 게 없어서 흐뭇한 아침이다.
나 같은 사람의 여유만만을 보호하려고  먹고 살 걱정은 마련된 성싶은, 어떤 면으론 완덕을 요구하는 땅...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나대로의 생(生)은 고스란히 제대로 잘 지나가고 있다.
하루하루를 고분고분하게.
나 영원한 서민... 맞다.


-초여름-
오늘은 국경일이다.
어쩌구저쩌구를 표방하는 100주년 기념일이라서 백년 마다 쉬도록 급조한 날이라고 한다.
왜 높은 이들은 백년에 한 번 있는 기념일까지 맘대로 금긋고 난리인가.
나처럼 나이 잊고 사는 사람도 고작 한 번 밖에 못 맞는 매우 소중한 기념일이긴 하다.
일 년에 공휴일이 19번이나 있는 나라.
토요일도 공휴일인 나라.
주중에 국경일이 있을 경우, 금요일이나 월요일로 당기거나 밀고 합쳐서 3일간의 주말연휴를 실컷 즐기게 만드는 나라.
이민자들이나  토요일을  반공일로 거울 삼는  나라.
나와 같은  뭐시깽이한테나 토요일이 가장 바쁜 나라.

저녁 6시 반경에 S여사 댁에서 아사도(숯불갈비)를 먹기로 했다.
하하하, 나 요즘 이러고 산다.
어쩌면 가장 인간답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얼 먹을까.
무얼 입을까.
어떤 친구를 만날까.
.............................................

꼬보스 전 부통령을 기도라고 적었다가 나는 가족에게 엄청 깨졌다.
다른 질타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단지 이 말만 떠오른다.
"무식하고 싶어서 아주 작정을 하셨군."
글을 쓰기 전, 실수하지 않으려고 가족에게 한 번 꼬보스 전 부통령의 정확한 이름을 묻고도 이런 일이 생겼으니 쥐 죽은 듯 가만히 당하고만 있어야 했다.
아마 내게 치매라도 온 게 아닌가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야단을 쳤지 않았나 싶다.
현지인 게시판과 현지인 페북에 매우 그럴 듯한 아이디를 사용하며, 아주 철학적이고 바른 댓글만을 가끔씩 다는 가족이지만, 내 글은 물론이고  교민 게시판에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문우 S여사가 이곳 한국일보에 나온 윗글을 보고 기도가 아니라 꼬보스라고 오늘 전화로 알려 왔기 때문에 들통이 난 일이었다.
나도 한 번 S여사의 실수들을 바리바리 들썩여 봐?

아무리 내가 완벽주의자이긴 해도 가끔은 실수도  한다.
실수도 하기 때문에 완벽을 추구하는 것을...
실수해선 안될 날은, 실수해선 안될  일을  꼭  실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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