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4일 토요일
물가를 조심하라!
맹하린
해마다 연말이 되면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여 토정비결을 본다.
단지 재미를 얻기 위해 보는 관계로, 좋고 나쁨에 크게 연연해 하지는 않아왔다
신비스럽게도 나의 토정비결은 해마다 이렇다하게 나쁘지 않아서 한층 재미 있었고 괜찮았던 셈이고 지속적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해, 그러니까 10 년 전의 토정비결은 유난히 1년 내내 운수가 만사형통으로 나왔었다.
그러나 5월 달에는 물가를 조심하라던 항목이 유난히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문협에서는 우연찮게도 추위가 6월부터 심해지더라면서, 야유회를 5월로 당기자는 합의점들을 찾고 있었다.
더불어, 넓고 광활한 땅에서 하필이면 내게는 물가가 되는, 강쪽으로 나가자는 결정이 금세 좁혀지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바다나 강을 좋아해 왔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나로서는 묵묵부답 을 고수하며 참을성 있게 견뎌야만 했다.
그럴 때 나는 , 내 토정비결이 어떻더라? 그러면서 어리석게 문제를 제기하는 성격은 못된다.
마음 속으로만 조심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굳히면 되는 것.
Laguna de Lobos 강.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의 강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바다처럼 널따란 강이었다.
아사도(갈비구이), 겉절이, 야채사라다, 밥과 찌개, 그리고 커피까지 달콤새콤쌉싸름 하게 끝을 낸 회원들은 강을 낀 숲으로 단체산책을 나섰다.
일부는 휴식을 취하겠다고 돗자리에 눕거나 강가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나는 물론 산책 팀에 합류했다.
돌아오는 길에 Muelle(잔교=棧橋)의 기둥에 매어 있는 두어 대의 보트를 발견한 회원들은 보트놀이를 하겠다고, 마치 유치원생들처럼 우르르 몰려갔다.
나의 갈등 따윈 아랑곳 없이 잔교 위에서 연신 사진부터 찍던 회원들.
보트 하나에 넷과 다섯이 사이좋게 나눠 탔을 무렵, 그때껏 잔교위에 서있던 나는, 사양하고 싶어져서 미안하다는 웃음을 보이며 그들을 향해 손까지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 순간 내 의식(意識) 속엔 토정비결, 5월, 물가, 그런 언어들만 떠올랐었다.
예상 했던 대로 곧장 야유인지 원망인지 또는 힐책인지가 투명한 화살이 되어 내게 여러 대나 쏘아지고 꽂히고 그랬다.
-에이고, 저 꼴통!
나는 강한 말투에는 부드러운 표현으로 응수하는 센스도 잊지 않는 성격이다.
-어휴, 진짜 얄미운 리버럴리스트! 그게 훨씬 어울린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여러분?
자유는 모든 인간의 신성한 권리인 것을.
그렇지만 내 한 손의 축복이 턱없이 부족했었나?
나의 미소(微笑)는 너무 미소(微小)해서 부득이 미소(媚笑)로 바꿔야 했을까.
나는 드디어 깔깔대며 두 팔을 춤추듯 휘저었고, 손짓까지 휘날리도록 펼치고 펼쳤다.
그때의 내 심정이라는 것은, 나만 위험에서 빠져 나와야겠다가 아니라, 나 때문에 다른 사람까지 위험하면 안 된다, 에 치우쳐 있었다.
공원 안의 대여 장소에 닿았을 때, 그곳에 남아 있던 몇몇 회원은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일로는 만족치 못했던지 술잔까지 부딪치며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나는 잔디 위에 엎뎌 약간의 휴식을 즐겼다.
술을 마시던 회원 하나가, 멀리서 보트 놀이하는 회원들을 수시로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30분이 넘도록 회원들이 탄 두 대의 보트는 수초와 물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제자리놀이를 계속하고 있더라는 얘기였다.
달려가 볼 수도 없다는 의견들이 오갔다.
보트의 주인이던 현지인도 안 보이는 상태에서 그들을 더욱 당황 속으로 잠기게 한다면 점차 못 헤어날 확률이 더 많다는 염려들이 술좌석을 안개처럼 떠다녔다.
거의 1시간이 지나서야 수초와 역류에서 헤어난 그들은, 조용한 가운데 기다려 주고 있던 우리 일행과 합류했다.
함께 안 타기를 잘 했었다고 내게 안도를 전달하는 회원도 여럿이나 있었다.
강산이 변할 정도로 많은 날들이 지나게 된 최근에야 나는 그해의 토정비결에 대한 얘기를 허심탄회 털어 놓을 수 있었다.
항상 내게 딴죽을 잘 거는 L선생이 묵은 감정을 토해내듯 반격을 가해왔다.
"그래서, 혼자 살겠다고 빠져나오신 게 잘하신 일입니까?"
그것은 원망 같았지만 원망이 남을 수도 있는 사인이라서 나는 굳이 해명하고 나섰다.
"아니죠. 내가 그 보트를 탔더라면 전복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는 문제였어요. 그걸 견제했다고 생각하시면 우리가 서로 손해날까요? 나는 나로 인해 엇나가고 싶지가 않았던 겁니다."
교회의 중책을 맡고 있고, 본인들의 신앙심이 깊고 넓다고 확신하는 몇 회원은 토정비결은 미신일 뿐이라고 강하게 표방했다.
분명한 것은 나는 문협의 토정비결을 본 게 아니라, 나의 토정비결을 보았다는 사실이었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내가 한 인간으로 거듭나야 할 역할이 숙명처럼 마련되어 있다.
인생은 수만 종류의 기쁨과 수만 종류의 애환으로 짜여 있다.
이 모든 과정은 궁극적인 평화와 긍정적인 선(善)에 도달하는 여정(旅程)이고
인연이고 운명이라고도 보여진다.
제대로 된 사람이 되어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조건 없이 사랑하고 이해하며 비판을 회피하고 나와 남의 소중함에 관해 약하거나 강한 애정을 감추기도 하고 건네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사람이기 위해, 사람이려고, 누구나 아끼지만, 그것을 누누이 밝히고 싶지 않은 이성(理性)만큼은 나름대로 갖췄다고 여겨진다.
내 시각으로 필요치 않은 디테일들은 마냥 흘러 보내지만 말이다.
앞으로도 나, 해마다 토정비결을 미신으로가 아니라
재미삼아 찾고 보고 느끼고 받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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