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6일 화요일

일본공원에 다녀와서



맹하린의 목요 칼럼

아르헨티나 조선일보

2000년 10월 12일 목요일



해마다 이맘때면 일본공원에서는  잊지않고 ’서양란 전시회’가 열린다.
이 일행, 저 모임에 섞여 여러 번 그곳을 찾으니 거기는 마침 철쭉제의 향연이 한창이다,
양지 바른 쪽은 벌써 시들어 약간 산만한 느낌이 드는 반면에, 그늘 진 장소에 자리 잡은 철쭉은 이제 막 봉오리를 맺었거나 활짝 어니 만개(滿開)를 재촉하는 중이었다.
수천마리의 비단잉어들. 올리브 빛 호수. 군데군데 크거나 작게 서 있는 일본에서 공수해온  바위들.
오디나무는 열매를 가득가득 매달고 있고. 모퉁이 쪽의 벽오동 옆에는 버찌가 붉거나 덜 익은 채 동글동글 달려있다.
야단스러울 정도로 복스러운 겹사꾸라 꽃나무들을 끼고  걷다 보면 종각도 보이고 미처 활짝 피기도 전에 떨어져 버릴 게 분명한 목련화가 자주 빛과 보라에 물들어 수줍게 수줍게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듯 하늘을 바라보며 피어있다.
각각 으스대는 듯 당당하게 차려 입은 서양 란들의 빼어난 자태는 예년보다는 못할지라도 제법 화려만발한 편이라고 볼 수 있었다.
갸웃갸웃 이 꽃, 저 잎 다 살펴보다가 이만하면 실컷 봐 뒀다 싶어져 아래층으로 내려 와 일본에서 건너온 일본녹차와 마주한다.

과연 알뜰살뜰 일본인답다 싶은 풍광에 함초롬히 자주 눈길을 빼앗기고 나서인지 나의 일행들은 이윽고 품평을 시작한다.
다탁(茶卓)은 순식간에 아쉬움이 첨가된 부러움의 논쟁으로 들끓는다.
이민 역사 35년 동안 우리는 무얼 했는가,
누가,  무엇이,  우리에게 ‘한국공원’을 갖게 하는 일을 엄두도 못 내게 하는가.
우린 언제나 이처럼 아름다운 공원을 우리 것으로 소유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곧 이어 부정적인 반문들이 미리 정해 놓은 답안처럼 콩 튀듯 튀어 오르거나 쏟아졌다.
만약 ‘한국공원’이 생긴다면 저 비단 잉어들은 제대로 건재(健往) 할 수 있을까. 몸보신에 필요하다고  한 두 마리 건져 가는 교민은 왜 없을 것이며,  철따라 피는 매화 • 동백 • 철쭉의 꽃대들은 극성맞은 한국인들 등쌀에 제대로 붙어 있기나 할런지.
현지인 인파보다 한국 교민이 더 북적대는 양상은 어찌 안 생길 것인가.
잔디밭 위에는 틀림없이 고스톱 판을 벌이는 패거리는 물론이고 골프의 스윙연습을 시도하는 한심한 작태까지 안 벌어진다 는 보장이 그 어디에도 없다는 탁상공론들이었다.
일본공원 안의 일본인 찻집에서 일본공원을 왈가왈부 선망해 보던 나의 일행은 금세 후회하듯 부러움의 날개를 접는다.
나는 애당초 일본공원 같은 걸 우리 것으로 갖고 싶다는 마음이 추호도 없었으므로 옛날 옛적에 도통한 도사처럼 홀가분하게 웃는 역할에 충실하고 만다.
비로소 심란함과 부러움에서 헤어난 나의 일행은,  결국 화제를  멕시코로의 재이민에 대한 얘기에 도달하더니, 어머니 날이 아니라 ‘계모의 날‘일 거라는 투정에까지 촛점을 맞춘다.

안다.
인생은 운동경기와 마찬가지라고 누군가 말했다는 거.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얘기 같다.
맞는 말이지만 다 맞는 말은 아니다.

나는 내 머리 속에 관념이라는 걸 불어 넣기도 전에 이미 관념이 홀로 싹을 틔웠을 지도 모른다.
내가 가끔씩 여기 저기 휘돌아다니는 이유는 내 자신을 너무도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때로 예외적인 방향으로도  발길을 내 디딜 수가 있어야 한다.
뭔가 특별한 것.
뭔가 살아 숨 쉬는 듯 한 부딪힘.
편견을 이기는 어떤 특별한 모티브나 형상을 제시하지 않는 사랑.
온통 편견의 틀에 갇힌 이 바벨탑의 세파 속의  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은 저절로 주어지지는 않는다.
우리 자신의 행동이나 말로부터 감정을 분리시킬 수 있음을 자각할 때 우리는 어딘지 모르게 남이 들어내지 못할 작은 함성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일본공원에 간다.
내 나라와 이웃나라를 비교하려고 가는 게 아니다.
작위적이면서도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자연에게 어떻게 항복해 나가고 있는지를 발견하려고 가는 것이다.
다른 곳은 혼자도 잘 가는데 일본공원은 이상하게도 혼자 나서지를 못하고 있다.
머잖아 친구들이나 교우 중 그 어떤 팀 상관없이 다시 일본공원에 다녀오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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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입구에서 구입한 먹이를 뿌리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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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미국에 사는 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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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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