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0일 토요일
때로는 은둔에 감성을 싣고
맹하린
어제 이 블로그에 '어떤 문학상'과 사진을 곁들여 올리며 무척이나 망설였다.
나는 어용(御用)은 아니기 때문이다.
본국에서 정치하시는 분들이 오실 땐 엄청 높으신 분일 경우, 기자들도 없이 간담회를 하는 날도 있다.
그리고 나는 단체장이 아닐 때도 초대를 받는 예외가 있는데, 앞에 놓인 명찰에는 여성대표이자 소설가 정도로 표시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간담회 몇 번 드나들다 보니까, 부끄럽고 창피하거나 적성에 안 맞고 지루할 때가 더 많았던 게 아닌가 하는 사려가 생겨 난다.
후원해 달라거나 정부차원에서 도와 달라는 단체장들의 발표시간이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는 데다 , 이러저러한 사설들이 너무 많고 길기 때문이다.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다.
그 시간 아니면 본국 정부의 높은 분을 다시 만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라는 걸.
하지만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처럼 큰 계획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도 어불성설 아니려는지.
그런데 하여간에, 정치하는 분들의 여유만만과 술수란, 참!
임기가 1년도 못 남았으니까 말로 인심 팍팍 쓴다.
보좌관에게 상쾌발랄뻑쩍지근하게 지시하는 것이다.
"건물이 필요하다는데 제일 첫 번째로 고려해 봐! 저 단체도 건물이 필요하다니 같은 건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선처하고 말야. 이곳 교민들께서 고국과는 멀고 변방이라는 생각이 안 드시도록 특별히 신경 좀 쓰라구!"
어떤 경우엔 불편한 자리지만 , 그런대로 괜찮았다는 인식에 젖을 때도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교민사회에선 내로라 할 수 있는 모(某) 단체장이 문화원을 몰아세우고 매도하면서 문화원의 위치나 경비, 그리고 행사에 관해서 폄하 할 때는 내가 방패막이가 되어 약간의 모면을 돕는 발언을 해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병이다.
누구라도 곤경에 빠지면 못 참는다.
더군다나 H문화원장은 내게 돌아왔어야 마땅했다는 어떤 혜택을 다른 이에게 돌렸었다고 나도 모르는 사실을 만날 때마다 미안해하던 처지라서 더 그러했다.
(기분 괜찮다. 나중에 높은 데 가서 상 받을 것 같다. 내 몫을 나도 모르게 앗기고 양보하고.)
몇년 전부터는 간담회 초대가 있을 경우, 시간이 안 될 것 같다고 내쪽에서 사양하게 되었다.
문협회장일 때는 평통위원 자리도 극구 사양했다.
글쓰는 사람이 뭔 평통위원을 한다는 얘기인가.
단체생활.
배가 산으로 올라갈 때가 너무도 많고, 매사에 많이 앞서가는 내 안목은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어서 대략 짚고 넘어 갈 때도 간혹 있었다.
시일이 지나면 내 지적이 모두 맞는 말이 되지만 , 어느 날부터 바른 말도 모두 부질없는 짓이라는 관념이 싹 터, 현재는 오로지 산뜻함만을 사수(死守)하려고 노력하고 노력하는 중이다.
김종민 문화관광부 장관께서 교민간담회를 주도하던 날도 나는 단체장이 아닌데 초대 되었었다. 뿌에르또 마데로의 오성(五星)급 호텔에 소속된 고급 레스토랑에서였다.
식사 도중, 장관께서는 특별한 질문을 꺼냈다.
나 이외에 따로 초대된 두 분의 여성 단체장에게 먼저였다.
동남아의 여러 나라 여성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부러워하는 분야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두 여성 대표가 마땅한 답을 못 찾고 시간이 좀 지연되자, 이윽고 질문은 내게 돌아 왔다.
장관께서는 그런 의미에서 질문의 순서를 제대로 파악하고 결정 했다고 본다.
내게서 비슷한 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미리 답을 들었더라면 싱거웠을 것이다.
맨 나중 사람이 답을 해야 약간이라도 긴장감이 주어질 테니까.
"네. 첫째는 다른 동남아 여성들이 가질 수없는 문화생활을 우리 한국 여성들이 누린다는 점에 있을 것이고, 둘째는 한국 남성 탤런트들이 타국에 비해 너무나 잘 생겨서입니다."
좌중(座中)쪽의 웃음 실린 물결이 내 두 번째 답 위로 출렁댔다.
장관께서는 자신감 넘치는 음성으로 그 화제를 마무리 지었다.
"그렇습니다. 결국 같은 맥락인데, 동남아 여성들이 한류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부러워하는 부분은, 바로 최신식의 극치인 우리나라의 주방시설이라고 합니다."
딱 한 번에 대만족이었지만, 지금은 그 잘난 단체장도 더 이상 싫고 참석하는 단체도 두셋이다.
머잖아 하나 정도만 남을 것 같다.
생업과 글에 시간과 정성을 기울이는 틈틈이 자주 산책을 시도하는 지금의 생활리듬이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다.
행복.
별거 아니다.
가진 것마다 흡족할 줄 알고, 그걸 사랑하면 된다.
사람이 갈 길 제대로 가려면 어느 정도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안 된다고들 하지만, 나는 필연코 돌아 볼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생생하게 살아 존재하는 힘을 꼭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행복의 이유는 늘 행복이 아닐 이유가 없는 법.
다만 생의 언저리에서 줍고 줍는 작은 환희.
내 일탈의 향방은 항상 각도가 따로 정해져 있다.
생의 그 어느 한 순간에라도 내 손때가 묻은 깃을 날마다 나의 격(格)에 알맞게 가다듬는 것.
오랜 세월, 또는 짧은 기간, 내 주위에 사랑으로 다가왔던 자연의 광휘로운 존재들을 더욱 아끼고 싶다.
별, 달, 햇빛, 바람, 해오름, 어스름, 밤비.
내가 방심했거나 우리 현대인들이 거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일컬음이다.
오솔길에서 잠시 여름의 끝자락을 지켜보는 순례자처럼.
때로는 은둔을 즐기며.
견뎌야 할 때 견디려고 써 낸 글들의 마디들이 때로는 아픔이 되기를 소원하며.
모든 손에 닿지 못하는 것들은.
어찌 이리도 슬프면서 아름답고 찬란한가.
느긋한 게 나의 천성이지만, 글에 대해서는 치열함을 아끼지 않겠다.
책으로 배움을 얻지 말고 책으로 질문을 받으라는 격언도 높이 받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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