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하린
어제는 화이트 데이였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꽃시장에 다녀 온 걸 분기점으로 해서 저녁 8시에 퇴근할 때까지 내내 바빴던 셈이다.
무슨 전시회도 있었기 때문에 줄기차게 일했다.
그러는 틈틈이 휴식을 위해 내가 자주 드나드는 사이트에 몇 번 드나들기도 했다.
일을 많이 해야 하는 날은 일부러 군것질도 자주 한다.
에너지 보호 차원에서 이것저것 사서 마시고 먹는다.
당근쥬스도 주문해서 마시고. 중국마켓에서 오후 5시 반쯤 직접 구워 나오는 따끈따끈한 바게트 빵도 시간 맞춰 구입한다.
버터를 바르거나 그냥 뜯어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힐링캠프라는 프로를 계속 틀어 놓고 일하기도 했고, 날반디안 나오는 테니스 대회 중계도 틀어 놓았었다.
이경규와 김제동, 한혜진이 엮는 힐링캠프는 흡사 인생무대와 비교 될 때가 있다.
항상 흥미를 끄는 경향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상황을 앞에 하고 어떤 감성으로 살아 왔는가가 관심과 초점의 강도(强度)를 결정한다.
이번처럼 차인표와 같은 인물이 프로 자체를 압도한다고 여겨질 정도가 되면 일부러 틈을 내어 두세 번까지도 보게 된다.
그라사(기름) 중의 그라사.
만떼까(버터) 중의 만떼까였던 차인표.
그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고생을 겪었고 어떤 변화를 지향해왔고 어떤 근사한 말을 펼치는지를 제대로 바라볼 수가 있게 된다.
그는 편협과 타협하지도 않았고, 포퓰리즘에 영합한 일은 더욱 없었으며 오로지 원칙만을 고수해온 헹적이 선한 쪽으로 부각되어 보였는가 하면 너무도 당당힌 주관까지 간직하고 있었다.
힐링캠프를 항상 보는 건 아니다
게스트에 따라서 보는데, 어떤 게스트는 유명 찬란하지만 결국 좋은 본보기를 표방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간에 꺼버릴 때도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김제동.
이경규 이상으로 좌중을 주도할 수도 있는 인물인데도 계속 양념 역할을 잘 이행하고 있어 그점 역시 보기에 풋풋하고 신뢰감까지 생겨나고 배울 점이라는 인식이 볼때마다 새롭다.
힐링캠프나 승승장구와 같은 프로들이 있어 나는 사는 게 전혀 팍팍하지가 않다.
드라마는 거의 끝을 못 마친다.
질질 끌고 있다는 기미가 엿보이면 가차 없이 그만 두기 때문이다.
드라마 중에서도 역사극은 특히 기피한다.
정해진 운명처럼 누군가를 끌어 내리고 매도하고 죽음으로 몰아가려는 세도가들이 싫어서다.
하지만 처음부터 포기하려던 작정을 겨우 극복하고 요즘은 '해품달'을 5편째 보고 있다.
시기나 모함은 여전한 작태로 비춰지지만.
퇴근시간의 거리는 바람이 위위 불어댔다.
의외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저녁이 밝음의 휘장을 닫으려 하고 있었다.
J교회 앞의 산책로를 지나는 어떤 순간, 나는 너무 지쳐 있어 마치 술 취한 것처럼 걸음이 비틀거리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었다.
안녕슈퍼 주위에서 푸르른 빛이 서광처럼 반짝이며 내 주위를 휘도는 느낌 같은 게 번져왔다.
때로 마음 아프게 전해지던 빛줄기였다.
힘내라는 메시지를 보내오는 듯도 여겨져 느닷없이 진실해지며 감성 또한 샘솟게 되던 서광이었을 것이다.
정신이 인간을 어떻게 이끌어 가는지 참 오묘하다는 생각을 하며 뛰었다.
새롭게 힘을 얻어 낸 사뿐한 뜀박질이었을 것이다.
나는 자주 뛴다.
기뻐서도 뛰고
바빠서도 뛰고
슬퍼서도 뛴다.
오늘도 열심을 다해 바쁘거나 한가함을 만끽하며 하루라는 강을 되도록 곱다랗게 흐르려고 한다.
차인표의 힐링캠프를 권유한다.
누구라도 나처럼 깔깔 웃고
누구라도 나처럼 눈물 글썽대기도 했으면 고맙겠다.
적자생존과 경쟁시대 등의 곤경에서 벗어나 , 늦었다고 자탄하지 말고 우리 모두 지금부터라도 새삼 아름다운 생으로의 전환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사회소통'을 역설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고수해야할 역기능 지수는 결국 이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려는 모티브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힐링캠프의 차인표에게서 그 따뜻함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또는 우리는 때로 한 번도 직접 만난 일이 없는 이에게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경이를 느껴오지 않았던가.
그 따사로움과 포옹해 본 일이 없이는 누군가를 아낀다는 말조차 지난한 일이 될 것이다.
낯설다고 말하기엔 우리는 너무 오래 세상의 공기와 함께 공존해 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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