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6일 금요일
뻬리또 모레노 빙하
맹하린
깔라화떼에서 레돈다 호수를 끼고 많은 새들과 희귀식물들
이정표를 제시하는 순간 뻬리또 모레노 빙하는 페이드 인으
로 나타난다. 6Km에 이르는 정면의 높이와 해면에서 80m에
이르는 얼음이 산으로 된 그 빙하는 정적인 외관과는 상관없
이 거대하고 튼실한 심장 홀로 차지한 관록으로 의젓하고 고
른 숨쉬기 멈춤 없이 내쉰다. 모브씬처럼 달려드는 느낌인
장엄하면서도 장관인 굉음과 얼음파도 벗어나 호수로 떨어진
유빙들은 하얗거나 사파이어 색으로 돌출되어 여러 톤의 찬란
한 빛을 발휘하느라 밤잠 부지기수로 설친다. 호수로 흘러들기
전까지만 보석의 왕좌를 누리고 그 뒤엔 물로 변하는 계시를
신탁으로 받았기에 그 역할 혼신을 다해 연기하느라 녹초가
녹아 물이 되었다. 태양과 바람 그리고 중력의 작용이 얼음
산의 자태를 변화무쌍하게 연출해 내는 감독이자 제작자다.
축소판으로 각색한 웁살라 빙하 역시 너테 하나 없이 순수하
여 감상 쨍하게 열리는 순간 빙하라는 별로 떠나는 우주선에
이르도록 유도한다. 지금까지의 전망에 최면이 걸리듯 문득
눈앞의 얼음산이 아웃 포커스로 흐려지면 어디에서 왔으며 어
디로 갈 것인지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별나라에 도달한다.
그때 비로소 현란한 스포트라이트 부감되는 뻬리또 모레노 빙
하. 감정이입 차단하는 절제의 벽. 신이 인간에게 내린 절벽의
극치, 냉정함의 표본. 적당히 얼고 적절히 녹으라는 메시지.
보석이 물도 되지만 물이 보석도 된다는 신의 수식어(修飾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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