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1일 수요일

아르헨티나 엄마들은




     맹하린

2008년 12월 8일

본국 잡지 <엄마는생각쟁이> 12월호

               (웅진싱크빅)

아르헨티나에 살면서 가장 근사하게 여겨지는 건 아르헨티나인 들의 가족관계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엄마와 자녀들의 사이가 친구 이상으로 돈독하고 친밀하여 그점 매우 부럽게 생각 했던 걸 결코 부인하지 않겠고.
아르헨티나 엄마들은 특히 물건을 살 때나 고를 때 남편 아니면 자녀들을 대동하고 나타나 가족들의 고견을 듣기를 매우 중요한 일로 여긴다.
가구나 전자 제품이나  그릇을 고를 때도  색상이나 스타일. 특별히 집안을 장식한 기존의 분위기에 부합되는 색을 선택하면서 가족들의 도움을 즐겨 받는다.
또한 옷을 구입할 때조차 구두와 핸드백과 상하의의 매치에 신경을 있는 대로 쓰는데, 그럴 경우 역시 가족의 조언을 기꺼이 받는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아르헨티나 여성들은 카드빚의 궁지에 결코 빠지지 않는다.
더불어 허영이나 사치와는 담을 쌓고 산다.
명품? 그런 걸 들고 다니거나 착용하고 다니는 걸 오히려 수치로 알고 정신 나간 미친 짓이라고까지 단정 짓기를 서슴지 않는다.
물론 상류층의 엄마들은 다를 확률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이나 직장이 흔들리는 예는 거의 없다.
동양인이 아니라 그들이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는 것이다.
만약 외부적인 영향을 받아 몰락을 맞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런 일조차 거의 드문 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사람이 장에 간다고 아무나 등에 지게를 지지도 않을뿐더러 아무나 어린 나이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지도 않고 아무나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유수한 재벌들조차 아이들이 공부에 소질이 없다 싶으면 중학교만 마치게 하고 바로 사업의 기초 작업부터 배울 수 있게 그 길을 자연스레 열어준다는 얘기다.

여기서 잠깐 나와 절친한 관계인 현지인 제시카의 예를 들겠다.
그녀의 집은 엘리베이터가 갖춰진 정도의 대저택이지만 그녀는 나와 밖에서 만날 때조차 진을 줄기차게 입는다.
물론 잔치나 파티에 참석할 경우의 그녀는 화려한 치장을 맘껏 발휘하여 마치 딴 사람처럼 보일 때도 많지만, 집안에서의 그녀와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은 한결 같이 평소의 생활방식이 소탈 그 자체이다.
무릎이 헤진 청바지는 기본이고 단추가 한두 개 떨어져 나간 상의.
그런데도 그들의 생활태도는 당당하다 못해 의젓하기까지 하다.
마치 무릎이 헤진 바지 때문에, 또는 단추가 모자란 상의를 입어서 그토록 빛나고 용감한 것처럼.
아르헨티나 엄마들에겐, 의상은 물론이고 세상의 그 무엇도 참으로 중요하고 책임감 있는 자세로 요소요소 살아 있음을 자주 접한다.
단지 그들은  평상복과 파티복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는 데에 익숙해 있을 뿐 아니라, 수수한 차림의 평상복조차 색상의 배합을 소중히 여기고야 마는 도사들이라고 평가해야 마땅할 것이다.
좀 더 원대한 의미에서 살펴보자면 아르헨티나는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못 펼쳐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일으키고 몇 차례의 IMF를 치렀을지라도 아르헨티나의 국민들은 개인적으로 너나없이 침대 밑에 달러를 감춰둔 든든한 부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나라에 어려움이 닥치면 한국인들은 금붙이도 내놓으며 그렇게 나라를 위기에서 건질 때에, 아르헨티나인 들은 나라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느껴지기 시작하면 꼭 사야할 것도 조심하며 당장 달러를 사들이기에 혈안이 되고는 한다.
달러를 지니는 길만이 유일한 해결책이고, 안도의 길이라고 나름대로의 위안을 삼으며.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들은 철저한 개인주의자들이기 때문에 이혼율이 꽤 많은 편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다행스럽게 여기는 건 그들은 이혼 후에도 자녀들을 서로 왕래 시키고 헤어진 부부조차 친구처럼 지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매우 놀랄만한 사실은 아르헨티나에는 고아원이 많지 않다.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되었을 때는 친척 중의 그 누군가가 돌보며 키우기를 의무처럼 완수하기 마련이고, 18세부터는 독립하여 일하기 때문에 이렇다하게 문제가 될 소지가 매우 적다. 그런 연유로 크게 사회문제가 대두되지도 않는 편이다.

특별히 우려되는 일이라고 한다면 아르헨티나 뿐 아니라 남미는 현재 마약 문제가 심각한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산지(콜롬비아와 볼리비아)가 인접해 있어서인지 우선 값이 저렴하고 구입이 손쉬운 탓에 멀쩡하던 청소년들조차 빠르게 맛을 터득하고 잠식되기에 이르렀다.
단언하지만 아르헨티나인 들은 마약쟁이도 거지도 청소부도 신사도를 지키기를 기본적으로 갖춘 셈이긴 하다.

오늘도 역시 많은 아르헨티나 엄마들이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친구처럼 묻고 있을 것이다.
" 오늘 저녁 결혼식에 참석하려면 뭘 입을까? "
그러면 그들의 남편이나 아이들은 신이 나서 옷을 골라 줄 것이다.
아르헨티나 엄마들은 그렇게 가족과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내면서 오늘도 절약하는 일에 익숙한 채 충동구매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철저하고 알뜰한 가정을 살뜰하게 구축해 나가고 있다.
그런 환경에서 살아온 우리 아르헨티나의 교민 엄마들도 모르는 사이에 아르헨티나의 엄마들의 성격을 저절로 답습해 오지 않았을까?
  

-엄마는생각쟁이.
발행부수가 25만부라고 한다.
원고청탁 받고나서 원고료  몇백 달러 받았을  때,  기분 참 근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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