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5일 일요일

서정의 유형지에서


   -이기철


벼랑에 도라지꽃 피고 서정시가 씌어진다는 것이
아직은 위안이다
아무도 노래하지 않는 땅에서 혼자 노래 부르는 사람이여
목이 아픈가
사람의 어깨에 싸라기 같은 햇살 내리고
공장의 굴뚝에도 달빛은 희다
대리석은 지층의 꿈에 젖고
강물은 나보다 먼저 내일에 닿는다
나는 삶에 대해 불온한 비유를 빌려오고 싶지 않다
비탄을 땅에 심어 희망이 열리기를 바라는 것은
고통보다는 달콤한 경험
햇빛으로 한 벌 옷을 해 입은 나무 곁에서
흙의 가장 신선한 부분을 꽃으로 옮기는 것은
나무의 가장 큰 희망
누가 달빛 잉크로 편지를 쓰느냐
아직도 내가 시에 쓸 말들이
이 땅 어디엔가 묻혀 있다는 생각이 나의 기쁨이다
나는 서정의 유형지에 혼자 서서
복사나무의 분홍 힘을 빌려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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