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8일 화요일

Don Silvano(돈 실바노)

img002 by maenghalyn
img002, a photo by maenghalyn on Flickr.


돈 실바노에서 찍은 사진...




   맹하린

동문회에서 Pilar 지역에 위치한 펜션 '돈 실바노'에 관광을 떠나기로
정한 지난달에는 되도록 가겠노라고는 했지만, 나는 언제나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정확한 결정여부를 깨닫게 됨으로 크게 기대 같은 걸 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나는 꽤나 변화무쌍한 성격의 소유자이고, 내 속을 나도 모르는
언제나 오리무중인 작자인지 작가인지 그런 족속이다.
톨스토이였던가. 우리 형은 작가가 될만한 유능함은 모두 지녔는데 작가가 갖춰
야할 단점은 전혀 간직하지 못했노라고 말한 작가는?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유능함은 모자라지만 꼴통기질은 무진장 넘치는 셈이니
아무래도 결핍개념에만 젖어 있는 작가?
그제 오후엔 가지 않을 단정으로 굳혀 있었는데, 어제 새벽엔 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그러나 가기를 백번이나 잘한 일 아닐까.
여행, 이 언어는 현재의 내게 가장 매력적인 제안이랄 수가 있겠다.
어떤 돌파구 같은 게 간절토록 요구되는 시점의 극한상황이었으므로.

왜 그쪽 길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선 아직껏 전혀 감이 안 잡히지만, Panamericana
고속도로를 진입하기 전에 지나던 빨레르모공원 요소요소마다 봄의 여신이랄 수 있는 
하까란다가 우아한 자태로 짙고 깔끔한 보라색 꽃나팔 떨기들을 고고히 피우고 있어서
그 점 특히 마음 밝아지게 하는 바이러스로 각인되었다.

영국혈통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2000헥타르(1헥타르=3300평) 중, 형제들과 분배한 어떤 영국인 2세의 땅 380헥타르를 1989년 실바노라는 이탈리아 태생의 현지인이 구입하게 되었고, 곧장 거대한 농장으로 조성되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펜션 "돈 실바노'는, 때마침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 알팔파 군락이 지평선처럼 아득히 파릇파릇 펼쳐져 있었다.
월요일인데도 러시아와 유럽인들과 약간의 중국인으로 팀을 이룬 관광객들이 우리 동문들 12인과 합류하자 71인이나 되었다.
아침으로 제공된 엠빠나다(군만두)와 포도주는 따로 들었지만. 점심식사는 함께 아사도
(갈비구이)를 들고 다 함께 탱고, 사냥감을 향해 겨냥하던 볼레아도라스를 흔들며 추는 말람보, 아르헨티나 각 지방마다의 고유음악, 관광객들이 지닌 국가들의 전통음악, 그리고 6세부터 그 농장의 터줏대감으로 살아온 현지인 사회자가 한국어로 부르는 아리랑을 눈물 글썽이며 소리소리 함께 따라 부르게도 되었다. 세상 태어나 그리도 소리 높여 부르던 노래 처음이었다고 본다. 오후에 농장의 벌판 객석에 앉아 구경하던 가우초쇼.
아침나절에 가장 먼저 제시 되었던 말이나 마차타기를 분기점으로 마떼와 간식을 드는 일로 관광코스를 매우 알차고 산뜻하게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일사천리로 잘 해낼 수 있었다.
오고가는 두 시간은 물론이고, 진정 즐겁고 흥미로움이 함께 한 관광이었다고 여겨진다.

인공미가 아니라 자연 그대로 개성 있게 자라난 나무숲과 화초들, 많은 종류의 동물들, 홍학, 오리, 공작, 생전 처음 보는 난쟁이 소. 많은 골통품으로 변모된 예스런 농기구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말 타기가 두려워 마차타기를 선택했던 내가 탄 흰 색 쌍두마차는 가우초 차림의 청년마부가 건네는 절제 담긴 지시와 채찍질에도 전혀 움직이지를 않아서 말이 말을 참 안 듣는구나, 그렇게 안타까움과 관심으로 바라보았는데, 원래의 관리자인 아가씨마부로 교체되자 언제 그랬었냐는 듯 말이 말을 각본이 짜인 것처럼 잘 듣기 시작했던
시간…….
결국 고집쟁이 말도 사랑에는 말이 따로 필요치 않아 말을 잘 듣기 마련이구나.
K동문의 남편 되시는 W장로님께서 가리키는 커다란 나무의 하늘 가까운 부분인 꽤 굵은
팔뚝이 옆 나무에게 신세를 안 지려고 팔을 휑하니 돌려 완만한 한 아름의 소용돌이로 서
있는 모습 또한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길은 함께 손을 붙잡고 사는 일은 아니라는 듯 회오리바람
처럼, 포옹처럼, 자제하고 서 있는 그 자태는 말 그대로 눈물겨운 살아냄이었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거나 눈 감고 휴식 중인 동문들의 맨 앞 쪽 좌석, 단독으로 된
전망 좋은 자리를 선택했던 나는 차창으로 스쳐 지나는 초록빛 광야를 싱그럽게 주시
하며 싱싱 신나게 돌아오고 있었다.
내가 언제나 흐르는 곳.
어디로인지 가고 가는 것 같은데 계속 머물러야 할 곳으로 오며 오게 되는…….
관광시간 내내 동문들은 내게 수시로 질문을 보내왔었다.
" 시가 저절로 나오지요?"
겉으로는 웃었고, 그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으나 나는 속으로 응답했을 것이다.
(아뇨, 시가 잽싸게 도망가요. 자연 앞에서는 따로 시가 필요하지 않거든요.)

다음 달에 사라떼 강으로 떠나보기로 한 낚시관광, 그걸 꼭 가게 될지 나는 아직
모르고 있다.
당일 새벽에나 결정이 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가고 가는 게 아니라 오며 오고 있어라.
헤르만 헤세가 말한 구원의 길…….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통해 있지 않은
자기 자신의 마음 속
신과 평화가 존재하는 곳으로.

나 오늘 어찌하여 불현듯 엄마가 보고 싶다.
그리하여 몸을 둘로 접듯이 엎뎌 조금 울컥해지는가 하면 거의 쓸쓸해진다.
한동안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도 없다고 큰소리였었는데 …….
'돈 실바노'처럼 하루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도 아니고
내 나라, 그리고 청주.
그 나라와 그 도시는 오늘 내게 너무 멀구나.

···아래의 동영상은 '돈 실바노'의 공연과 수준이 다름을 밝힙니다.
   아래의 무용수들은 이 나라에서도 저명한 예술인들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