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9일 토요일

오디나무


맹하린

우리 가게 앞에는 몇 십 킬로는 됨직한 무겁고 큰 화분에 두 그루의
오디나무가 심겨져 있다.
(맨 가장자리 화분에는 일 년 내내 잔잔한 진분홍색 꽃을 수없이 피워내는 사랑초.)
그 오디나무는 보통의 오디나무가 아니라 분재처럼 키워진,  사람 키보다는
큰 정도의 나무다.
그 나무가 봄이면 열매를 조롱조롱  매달고 차츰 붉어지다가는 결국 무르 익어간다.

내 이웃엔 영심이 엄마라는 교민이  사는데, 영심이는 그 집 강아지 이름이고 두 자녀가
엄연히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녀를 영심이 엄마라고 부른다.
그녀의 남편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이미 5년 동안이나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일요일에 J교회의 여신도들이 우리 가게 앞을 지나가면서 객기로 따먹을 때도  있지만,
우리 오디나무의 열매는 영심이 엄마가 거의 다 따먹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
오며 가며, 또는 새벽녘에 일부러 나와서 따먹을 때도 많았다고 한다.
그녀는 어린잎도 따다가 찻잎으로 덖어서 사용한다고 그러는가 하면,
그것도 모자라 때때로 살짝 데쳐 쌈으로도 즐긴다는 것 같다.
나는 그 사실을 묵인하는 것으로도 부족하여 고맙게까지 여기게 된다.
그리하여 영심이 엄마가 그럴 때마다 난 영심이네 도우미라도 된다는 듯 오디열매를 따내는 역할에 충실해하며 옆에서 거들어 주기를 즐긴다.
(꼭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는 문제아와 같은 내 행동이여!)
그러는 과정에서 난 겉으론 웃으면서 속으로만 말한다.
(영심엄마, 힘 내, 언제나 파이팅! 알지?)

나는 잠복도 풍부하지만 식복 역시 넘치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뭐든 잘 먹는데 살도 잘 안찌는 체질이라 오디열매 정도는 하루하루가 팍팍해 있을
영심엄마에게 양보해도 그다지 손해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어떤 때 바빠서 반찬을 따로 준비하지 못했을 경우엔 맨 김에 야채 몇 가지 넣고 즉석
김밥을 만들어도 나는 그게 그리도 달고 맛있다고 감사해 하는 소탈 쟁이다.
그리고 밑반찬 위주의 식단이 아닌 즉석요리를 잘 마련하는 성향이 있다.
어쩌다 사먹는 음식을 시키면, 너무 느끼하면서도 퍽으나 진한 맛이라서 아들까지 여러 번
투덜거리므로 그것도 못할 노릇 중의 하나가 된다.
-에이, 입맛 버렸네. 어찌 이리  많은 재료를 넣고도  왜 이렇게 대단한 니글거림으로 남의 입맛을 간단명료하게 망칠 수가 있는 거죠?
그 소리를 서너 번 중얼대는 아들을 바라볼 때의 내 기분이란 참으로 묘해서 가끔은 식당음식을 시켜도 되지 않을까 하는 장난스러움이 불현듯 생겨날 때 또한  없지 않아 있다.
아들은 내가 약간 피곤해 보이거나 살짝 병이 났을 땐 전혀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눈치껏 끼니를 마련하는 센스 꾼이다.
주로 파스타나 버터를 발라 구운 토스트에 치즈와 토마토로 속을 채운 샌드위치 정도지만…….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우바(포도) 맛의 헬라티나(젤라틴)를 저녁마다 들 수 있게 미리 마련해 주기도 한다. 중요한 건 아들도 나도 어떤 일을 할 때 솔선수범을 선호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렇게 자유분방함을 즐기며 사는 것 같은 내게도 걸림돌이 없는 편은 아니다.
나의 일과 중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산책 중에 잘 일어나는 불찰이다.
그 공원에서 저절로 깨닫게 된다.
아픔으로 아픔을 알아보는 일이 어떤 안 아픔에게는 짜증을 안기는 일이 된다는 사실을.
또한 그 아픔이 사실은 아픔이 아니라, 그 짜증일 수도 있다는 진리를.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나의 일관된 문학적 지향은 일종의 유미주이이고 탐미주의의 성향이 짙다는 점을…….
나의 문학은 보편적 소통과 진정성에 근거를 두고 싶어 한다는 것을.
나의 냉소적 세계관이나 넘치는 인류애는  비록 회의적일 경우 많다고 해도 절대로 정도 이상의 무리수는 두지 않는다는 사실도…….

지금 오디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몇 개인가만 남아 있다.
내년 봄을 기다리지 않아도 좋을 어떤 대안을 찾아 영심이 엄마를 돕고 싶고 알게 모르게 거들게 도 될 것이다.
내 주위에 아직 봄이 머물고 있음을 본다.
참으로 해맑음이 푸르청청한, 싱그럽기 이를 데 없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