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부터 무용에 반한 내 동생 미숙은 고전보다는 현대무용 쪽으로
가닥을 잡더니, 전공까지도 무용을 선택하였다.
미숙이 S대학에 입학시험을 치룰 때 보호자로 따라 다닌 건 나였다.
그런데 동생이 실기시험 중일 때 접한 정보에 의하면, 합격자들은 이미 결정이
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해당 무용교수에게 작품을 받은 학생들로 합격은 정해졌노라 는 은밀한 말들이
학부형들 사이에서 안개처럼 휘돌았다.
그 말에 확신이 설 수 밖에 없는 게 실제로 내 친구 석서현도 재수 삼수만 하다가, 신촌에 있는 대학의 체육과에 버젓이 작품 하나 거래하여 들어갔으니 말이다.
친구 석서현은 무용의 무도 체육의 체도 모르던 애였다.
결국 동생 미숙은 또 다른 S여대 무용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세상물정에 어둡거나 작품을 미리 거래하지 못해 동생과 함께 그 대학에 모인 미숙의
친구들은 참 대단한 집안 출신들이 유독 많았다.
특히나 인물들이 훤하고 출중했다.
얼마 전 내 친구가 메일을 보내왔었다.
동창회에 참석했다가, 역시 다른 동창회에 나온 미숙과 그 친구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 차림새나 인물의 눈부심에 넋이 빠졌다가 왔노라고.
그 표현처럼 미숙도 그 친구들도 한 인물 톡톡히 하는 그야말로 봐줄만한 인물들인 셈이다.
이런 비슷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제부는 피식 웃으며 야유 섞인 일갈을 펼치기 마련이다.
-쳇, 택시 기사 수준 가지고.
어느 날 미숙이 친구들과 택시를 타게 되었는데, 운전기사가 백미러로 뒷좌석에 앉은 미숙을 쳐다보느라 운전을 제대로 못해서 미숙의 친구들이 여러 차례 경고를 줬다는 얘기 때문에 생긴 퉁박이었다.
실제로 내가 귀국여행 중에도 미숙이 운전하는 자동차로 내 두 친구와 함께 양수리에 다녀왔는데, 톨게이트의 직원이 미숙에게 거스름 주는 걸 잊고 미숙을 보고 또 보고, 그리고 또 쳐다보고…….
내가 귀국할 때마다 내 친구들은 또 어떤가.
-얘, 얼굴에 칼도 안댄 예삐, 미숙이나 보러가자!
내가 왜 이리 동생자랑을 거창하게 늘어놓는가 하면 미숙은 얼굴보다 마음이 더 빛나는 사람이라는 걸 꼭 말하고 싶어서이다.
만약 시댁이나 친정가족에게 인사 잘 챙기는 상을 주는 제도가 따로 있다면 아마 미숙이 포상감이 아니려는지…….
내가 미숙보다 월등하게 낫다고 자신하는 부분을 든다면 책을 좀 많이 읽었다는 정도?
날마다 책을 손에서 못 놓던 나를 좀 닮아 보려는 의도에서 책 한권 들때마다, 미숙은 한 페이지는 커녕 반 페이지도 못 넘긴다.
골치가 쑤신다, 눈이 따가워지고 있다, 그렇게 엄살을 떨기 시작하는 스타일이었으니 모처럼 맘을 잡아봐야 얼마나 버틸 수 있었을까.
내가 문학서적을 탐독할 때면 미숙은 보란듯이 만화책만을 챙기고 즐겼다.
나 만약 훌륭하고 현명한 남자였다면, 나는 나와 같이 별난 인간 당장에 밀쳐 버리고, 미숙처럼 단순한 여인을 선택했을 것만 같다
예쁘고, 아담하고, 인사성 밝고, 똑소리라고는 안 나고, 요리 또한 나처럼 뚝딱은 못해도
정갈스러우면서 맛있게 준비할 줄도 아는.
연극영화과 출신의 키 크고 잘 생긴 제부가 몇 번인가 바람이 났어도 아침에 대추를 직접 잘라 넣은 차 변함없이 대령하고 고통스런 내색 전혀 안 비치며 하늘 모시듯 남편을 대접할 줄도 아는 천생 여자 맹미숙.
맛있는 음식 날마다의 일과처럼 만들어 수많은 날들 누군가에게 퍼다 주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아직도 지지배 같은 여인.
나 다시 태어난다면 맹미숙으로 태어나고 싶어진다.
만화책이나 읽고, 글도 안 쓰고 마음이 여린 듯 위대해서 예쁜…….
나 새삼 뒤늦게 맹미숙, 그녀처럼 살고 싶어라.
......세상을 이만큼 흘러와 보고 나서야 나라는 이 미물, 겨우 깨닫게 됩니다.
맹미숙은 바보 같은 똑똑한 인생을 살아왔고.
나, 나야말로 똑똑한 것 같은 바보 인생을 펼쳐 왔음을...... .
오늘부터 나는 나를 겉똑똑이라고 ,
내가 나를 그리 부를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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