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9일 화요일

소통



             맹하린


나는 새벽마다 기도를 약 30분 정도 한다.
여러 가지 기도다. 대략 일곱 종류?
내가 몸담고 있는 가톨릭은 보수적이면서도 상쾌한 면도 꽤 많다고 보여진다.
헌금을 조금만 해도 누구한테 들키지 않으니 그 점 특히 좋은 것 같고, 가정을 위한 기도라거나 병자를 위한 기도 등 이미 정해진 기도문을 그저 읽기만 하면 되므로 그 또한 편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기도가 끝날 무렵이면 구약을 한 장쯤 읽고, 신약도 비슷한 분량을 읽으며 성가를 빠트릴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성가 역시 한 페이지를 끝절까지 흥얼대며 부른다. 오늘 부르게 될 성가가 430페이지니까 벌써 일 년도 넘게 성가를 아침마다 하나씩 불렀다는 얘기다.
성서와 성가의  모든 페이지가 끝나면 다시 시작하기를 20년 이상 거듭해 왔을 것이다.
내가 많은 세월의 새벽 빗장을 그런 식으로 열어 냈던 이유는, 신앙심이 깊어서라기보다는, 문학이라는 성곽은 거저 얻는 게 아니라는 걸 내가 나에게 가르치고 단련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사실 나는 성서를,  바치는 일에만 충실해 왔기 때문에 이렇다하게 외우는 구절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내가 생각해도 이런 태도는 참 잘한 일 같다. 성서를 내 것으로 만들려 하지 않고 그저 바쳐만 왔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성서와 성가를 끝마치기 전에 꼭 해내는 기도는 이웃을 위한 기도다.
특히 동문의 아들 엄안토니오에 대한 기도는 이미 6개월째 접어들었다고 보여진다.
엄안토니오는 한국인이지만,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고 자란  Argentino(아르헨티나인)이기도
하다.
(엄안토니오에게 딱히 잘 어울릴만한 제대로 된 표현을 하고 싶은데 난감하게도 자꾸만 순수, 토종, 혈통 그런 낱말만 떠오름에랴.)
20대 중반인 그는 우리 가게의 고객이기도 했다.
부모가 바쁜 이민생할에 몸담고 살아와선지 엄안토니오는 우리 가게에 오면 한국말보다 까스떼쟈노(서반아어)를 주로 사용 했었다.
그는 중요한 날마다 선물이나 꽃을 꼭 챙기는 감성이 풍부한 청년이었다.
아르헨티나인 들이 연인의 날이라고 명칭을 바꾼 화이트 데이는 물론이고 봄의 날, 생일, 어머니 날. 그리고 크리스마스. 만난 지 몇 년이 됐다는 기념일.
그는 애인과 만나게 된 그날만은 장미의 개수로 햇수를 표시해 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고 해냈었다.
그러던 그가 3년 가까이 대인기피증과 고소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
애인에게서 배신을 당한 대가가 그런 처절한 과정을 안겼다는 진단결과가 있었나 보았다.
몇 번인가는 입원치료도 했었지만 최근엔 통원 치료 중에 있다.

어젯밤 해운대회관에서 있었던 동문회 도중에 나와 같은 식탁에 마주앉았던 엄안토니오의 엄마 J여인은 식사 중에 두 번 쯤 핸드폰을 받았고, 두 번 정도 핸드폰으로 연락을 취했다.
모두 엄안토니와의 통화였다.
"응, 그래. 다 끝났어. 지금 가고 있단다. Hijo(아들)!"
엄안토니오는 집안에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가장 불안해 한다는 부연설명이 남겨졌다.
어차피 밥이나 먹고 헤어지는 동문회인데도 그녀는 언제나 서둘러 돌아간다.
여덟 명의 볼리비아인들 이끌고 제품을 하면서도 그녀는 아들의 뒷바라지에 헌신적인 부지런하고, 매사에 긍정적이고 밝고 맑은 생활인이다.
엄안토니오가 가정방문 중에 만난 목사님에게 해냈다는 대답은 몇 달이나 지난 지금껏 나를 여러 차례  눈물 글썽이게 만드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하느님이 계시다는 걸 믿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네. 있다는 건 분명해요. 그런데 나는 그분한테 많이 섭섭해요.

몇 달 전 처음 엄안토니오의 와병사실을 알게 됐을 때. 나는 회장과 총무와 상의하여 동문회 차원에서 위로금을 전달하도록 주선했던 사실조차 자주 부끄럽게 된다.
J여인이 일꾼들 다 보낸 저녁, 그녀가 차 한 잔 드는 시간 즈음 전화라도 자주 하리라는 마음만 여러 번이나 다지게 된다.
그녀가 총총한 발걸음으로 떠나갈 때 나는 잊지않고 그랬을 것이다.
"자꾸만 하느님을 억지로 심어주려고는 말아요. 지금은 섭섭할 때거든요."




-펌-
피카소는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통해 늘 새로운 작품을 시도했던 '큐비즘'이라는 새로운 회화영역을 개척했다. 그로 인하여 '미술계의 황제'라는 호칭을 받아온 예술가이기도 하다. 큐비즘은 단순한 시점으로 대상을 보는 게 아니라, 여러 각도에서 자유자재로 사물을 보아내고 그것을 동일한 평면 위에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나는 불경하게도  피카소의 블랙홀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운 시각과 각도를 펼치며, 뜻이 같은 사람들에게 아픔을 겪게 하며 그리 살아오지는 않았었나 오늘 뒤늦은 각성에 나를 맡겨 보게도 된다.

소통.
내게 너무 거창한  벽이었고, 난해한 고지였던 그 언어가  홀연
나를 을씨년스러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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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모차르트의 이 음악은 얼마 전에 이미 한 번 올렸었습니다.
하지만, 피카소의 그림을 곁들이려는 의도에서 다시 올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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