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일 월요일
땅고(Tango)
맹하린
땅고(Tango).
아르헨티노들은 탱고를 그렇게 일컫는다.
유토피아를 꿈꾸며 흘러 들어온 유럽계 이민자들과, 보까(Boca)지역에 여장(旅裝)을 푼 뱃사람들이 저녁이면 속속 술집으로 찾아들었다.
이민자의 암울함과 선원(船員)들의 고달픔을 쾌락으로 지워내면서 춤과 술, 그리고 음악으로 밤을 지세우다 보니까 4분의 2박자와 8분의 4박자로 된 무곡(舞曲)과 무도(舞蹈)가 싹터서 생겨난 것.
땅고는 그렇게 탄생되었다는 전설과 같은 유래(由來)를 간직하고 있다.
'비에호 알마센' '까사 블랑카' '미켈란젤로' '라 벤따나'를 위시한 땅고 공연장은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만 100여 군데가 넘는다.
유명하다는 곳으로 선택해서, 몇 번 가본 중에 가장 인상적인 곳은 가비오따(Gaviota=갈매기)라는 매우 조촐하면서도 앙증맞을 정도로 운치까지 갖춘 곳이었다.
밤 10시에 시작해서 새벽 4시까지 영업하는 가비오따는 피아노와 반도네온(손풍금)으로 된 반주(伴奏).
흑과 백으로 나눠진 땅고 가수들.
그밖에 젊고 아름다운 웨이트레스들로 구성되어져 있다.
무대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고, 관람객들이 둘러앉은 가운데 쪽 넓은 홀이 무대라는 점도 신선한 발상(發想)이다.
관객과 무용수들 사이에 격(格)을 두지 않기 위해 특별히 고안(考案)해 낸 기발한 건축양식(建築樣式)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무용수들의 격렬한 춤에 따라 다탁과 의자와 관람객들이 자주 부딪히게 되어, 춤추는 이나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효과 있는 일치감(一致感)을 지니게 한다.
바람에 강물이 찰랑이고 수초(水草)가 서로 닿으면서 서걱이는 소리.
얕은 물 바닥을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의 파닥임.
관능과 열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율동으로 예술의 극치를 완벽하게 창출(創出)해내는 듯 한 경지를 땅고에 심취하다보면 저절로 섭렵하게 된다.
더불어 고국에 대한 향수병에 가슴이 저며 드는 아픔을 수시로 겪는 애환까지도 당분간 잠재울 수가 있게 된다.
땅고라는 춤이 만들어져 추거나 부르거나 보기를 즐기던 초창기에는 땅고장에 가면 누구라도 상관없이 무대에 나가 땅고를 출 수 있는 자격이 부여 됐었다.
하지만 군정시대에 법이 강화되어 두 사람 이상의 관중이 어떤 공간에서도 접촉하거나 활동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금지 됐었다.
군정시대엔 수염을 기른 사람은 무조건 잡아 갔다는 사실만 생각하면 지금껏 소름이 돋는 기분이다.
독재성격을 띤 정치란 바로 그런 면에서도 독재성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군정이 물러나고 다시 민정이양으로 정권이 바뀌자, 군정이 확연하게 금지했던 살벌한 법령은 다시 활기로운 영역을 넓히며 변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땅고에는 눈에 안 보이는 질서 같은 게 느껴진다.
일단은 파아트너와의 동반관계가 적절하게 이룩돼야 하고 남녀 각자가 지니고 있는 특성전체를 십분 발휘하여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연출해 내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표출해야 한다.
약진감과 긴실함이 사각사각 스치는 야회복을 통하여 한숨처럼 박자를 맞추며 터뜨려지기도 하고, 표표하게 나부끼는 발랄함이 엿보이는가 하면, 흡사 마녀처럼 괴기한 집념이 뚝, 뚝 흐르는 신명난 무용수들도 있다.
어떤 무용수들은 출아된 식물의 싹이 잎을 틔우고 가지가 생성되며 꽃과 열매까지 맺어 나가는 과정까지를 표징해내는 춤을 추어내는가 하면, 개척자 시대를 나타내기 위해 카우보이차림으로 춤추는 커풀도 있다.
그렇게 모든 무용 파트너에 따라 각자의 개성을 한껏 살려내는 각양각색의 춤을 추어내지만, 땅고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은 정열과 낭만이 곁들여진 야회의식이 철학과 같은 진정성과 조화로 재해석을 이룩한다는 사실에 있다.
어느 폭풍우 쏟아지던 밤.
문우 몇 분과 가비오따에 간 적이 있다.
갈 무렵에 비와 바람이 시작된 게 아니라,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폭풍을 동반한 억수비가 쏟아졌었다.
피아노, 기타, 반도네온의 연주자, 땅고의 무용수들, 땅고 가수들, 웨이트레스, 주인이 우리 일행몇 명을 위해 흥과 성의를 다해 몇 시간동안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에 열중하여, 그들의 격조 높은 예술정신에 만감이 교차하는 감동을 축복처럼 받았었다.
평소의 나는 선물 받은 시계조차 착용을 안 하는 성격이라 핸드폰의 폴더를 살며시 열었었다.
새벽 2시였다.
고백하건대 잠을 놓치며 시선을 고정시켜 즐겼던 공연은 그날 밖에 없었다.
마치 일탈을 꿈꾸기 위해 휴가를 떠나온 여행자처럼 열정이 담긴 느낌 같은 게 오래토록 남아 있음을 새삼 발견했던 매우 근사한 날이었다.
뜻이 맞는 이들 몇분과 다시 땅고장에 가봐야겠다.
왠가 하면 나는 요즘 마음을 좀 어디다 옮기고 싶기 때문이다.
마음은 가락져 살고 싶은데, 그런데 마음을 내 맘대로 못할 때다.
지금은.
장대비라도 내린다면 더욱 절절하게 보헤미안 정취에 잠길 수가 있지 않으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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