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2일 목요일

선물



    맹하린의 수요칼럼


아르헨티나 조선일보


2001년 5월 22일


아들이 과외를 맡고 있는 아베쟈네다 지역의 학부형이 밤을 한 보따리 보내왔다.
나는 평소에 밤이나 감, 배 등등의 한국종자로 된 과일에 거의  부식비를 사용하지 않아 왔다.
한국보다 비싼 값은 아니겠으나 최근 몇 년 동안 한 두냥의 소중함을 고개 끄덕이며 실감해 냈기 때문이다.
밤을 알맞게 삶아 가족과 둘러 앉아 먹는데, 얄궂게도 밤 한 보따리에 웬 감회가 그리도 좔좔 시냇물 되어 흐르던지...... .
하여간에 그 밤은 내가 세상 태어나 가장 절묘한 맛이라고 느꼈던 것이어서 나는  그 밤들을 오래도록 음미하며 천천히 목안으로 넘겼을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그렇게 간단히 먹어치울 게 아니라, 잘 말려서 두고두고 기념을 삼고 싶을 정도로 내 속된 감개는 그칠 줄 모르게 피어올랐다.

그렇게  한참이나 지난 며칠 전.
아들은 과외 수업료를 받았다면서 봉투 두 개와 함께 선물을 하나 건네 줬다.
봉투 하나는 제법 두둑했다.
과외학생이 몇 달 전  부에노스중학교에 합격을 했었는데,  가르침에 열성을 다해줘 고마웠고, 사정이 있어 인사가  늦었다고 미안해 하는  편지가 곁들여져 있었다.
3천 페소(1천 500달러)였다.
선물은 빨간내의라고 했다.
학부형이 그랬다고 한다.
첫 수입을 얻게 되면 어머니한테 내의를 선물하는 거라고.
몰라서 못했을테니까 이제라도  그렇게 하라고.
빨강으로 골라야 한다고.
와다닥 뜯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치밀어 투명한 비닐 테잎을 손톱으로 살살 긁어 포장을 뜯는 순간, 아하하하하, 내 통쾌한 웃음이 내의보다 더 먼저 쏟아져 나왔다.
너무 기뻐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자제(自制)할 마음이었지만 미소에 앞서 탕탕한 웃음이 저절로 솟은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선물을 거창하게 준비할 수도 있고, 선물을 산뜻하게 마련할 수도 있다.

나 겨우 조금씩 빗장을 풀기 시작했다.
완전히 소탈한 생활만을 지향(志向)하는 길을 향할 수 있는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나 진정한 무소유에 자박자박 닿을 심산(心算)이었는데.
그동안 참 별 것도 아닌 것들을 오랜 세월 꾸리고 살아 왔다.
나는 최근에야 가까스로 숨통이 트인 사람처럼 자주 긴 숨을 몰아쉬는 나를 발견한다.
때때로 척추 끝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혼돈(混沌)의 파장(波長)과 떨림을 감지할 때도 있다.
나만 들을 수 있는 싸이렌 소리처럼 특이한 진동(振動)이다.
포기할 것 포기하고 버릴 것 버릴 수 있는 현재의 내가 나는 참 좋다.
가끔씩 막막해져 오는 마음, 그 막막함까지도 나는 그저 새롭게만 받아들인다.

선물이라면 오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을 아주 당연한 일처럼 떠올리게 된다.
‘남편은 소중하게 아끼던 시계를 팔아 부인 델라가 브로드웨이의 상점에 진열된 것을 보고 오랫동안 동경하던 머리빗을 사고, 부인은 많은 세월동안 아름답게 가꿔왔고, 남편이 그토록 감격하며 바라보던 긴 머리를 잘라서 판 돈으로 남편 짐을 위해 플래티나로 만든 시계줄을 선물로 골랐다. 좋은 물건이란 으레 그렇듯이 장식이 간단하면서도 점잖았다. 그것은 남편 짐하고도 비슷했다. 품위와 가치, 그것은 짐과 그 시계줄에게 딱 어울리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오헨리는 작품의 말미(末尾)를 이렇게 장식(裝飾)한다.
“동방박사는 놀라울 만큼 현명한 사람들이다. 구유에 든 아기에게 귀한 선물을 가지고 왔다. 그들 최대의 가보(家寶)를 희생한 어리석고 가난한 부부의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지만 진실한 선물을 주고받는 이와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사람들이고 진짜 동방박사인 셈이다.”
오헨리의 표현 그대로라면 내게 있어 아들은 동방박사나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싯귀처럼 ‘깃털 침대 위헤서 자는 이들의 꿈이 차가운 땅바닥에서 자는 이들의 꿈만큼 상쾌하지 못한 이때.’
수도권 시민의 9만명이 하루 약간의 지폐를 지불하며 하류호텔에서 숙식을 해결한다고 메스콤은 전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민(市民) 숫자가 날로 증가하는 데다, 중산층의 경제력이 날로 악화되어 집을 잃는 사람들이 여관이나 모텔에 둥지를 트는 현상(現狀)까지  점차 늘고 있다는 얘기다.
문득, 아침 이슬 한 방울에도 어깨 휘청이는 풀들의 아우성이 들려 오는 듯 싶어져 숙연한 느낌을 어쩌지 못하겠다.

때로 주위사람들은 말한다.
슬픔을 나눌 친구는 많아도 기쁨을 나눌 친구는 흔치 않더라고.
그건 어떤 면으로는 즐거운 탄성에 다름 아닌 것이라는  의미일까.
우리 모든 인생은 결국 길 위에 있다.
너나없이 부단하게 노력하며 걷는 셈이다.
각자의 삶대로 걷다보면 어느 날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섬광처럼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은 결국 신(神)의 선물이다.
더불어 누군가를 향해 끊임없이 선물을 준비하는 날들이기도 하다,
나 이제 아들에게서 ‘선물’이라는 걸 받기 시작한 모양이다.


-초여름
2001년도의 경제파동에 아르헨티나를 떠났던 수많은 아르헨티노들.
특히 스페인으로 이민을 떠났었던 많은 아르헨티노들이 다시 아르헨티나로의 역이민을
단행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나마 아르헨티나가 살기 좋은 나라로 추억되는가 보다.
날이 새면 오르는 물가와 인플레는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갈수록 치명적이라고 비명을 지르기 일보 직전인 데도 이런 기이한 상황도 생기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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