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7일 토요일
향수(香水)
맹하린
자기 스스로는 아무런 체취를 지니지 못해서였을까.
냄새를 맡는 일에 매우 민감한 후각을 갖추고 태어난 '그루누이'는 세상에서 가장 월등한 향기를 만들려는 목적을 품고 비밀스러운 계획을 실행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쓴 <향수>라는 책이 아니더라도, 서양사회는 이미 오랜 옛적부터 향수가 생활양식에 큰 비중을 차지해 왔다.
옷가게를 할 때, 아르헨티노를 위시한 여러 인종들과, 하루에도 수시로 드나들던 사람들에게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 대부분이 향수를 사용한다는 사실이었다.
하나같이 독특하고 개성 있는 향수를 선호하는 것 같았다.
어떤 때, 중요한 고객이나 천공장 주인들과 사무실 안에서 지불과 수금을 끝내고 잠시 여담과 함께 커피를 마실 때가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돌아간 얼마 후, 사무실 안에 있는 서류를 찾을 일이 생기거나 좀 쉴까 싶어 들어가게 되면 그때껏 남아 있는 그들의 잔여향이 여운처럼 스며 있음을 여실히 깨닫고는 했다.
서류를 찾을 경우, 찾아서 나오면 그만이지만, 쉬기 위해 들어 갔을 때는 창문을 열어제쳐도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 향기가 불편하여 그만 가게로 나가 다시 일을 붙들기 마련이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쳔연향은 1천 5백여종을 넘고, 화학재료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합성향만 꼽아도 수천여종에 이른다는 통계를 어느 책에선가 접한 일이 있다.
내가 만난 여러 혈통을 이어 받은 각 분야의 직업에 종사하는 아르헨티노들에게서 제각기 다른 수십종의 독특한 향기를 저절로 자연스러이 스쳐 지나온 셈이다.
그들이 향수를 즐겨 사용하는 의도는 좋은 향기를 취미처럼 몸에 익히려는 뜻도 있겠지만, 되도록 다른 사람에게 향기로운 인상을 전달하려는 기본적인 예의범절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중세에는 향수를 퇴폐와 방탕의 상징으로 단정한 결과에 의해 법으로 금지됐었는데, 십자군 원정 때 다시 향수의 물결이 유럽으로 밀려 들었다고도 하고, 19세기 중엽부터 화학적 합성향이 등장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저러한 향수의 역사를 떠나서 나도 아르헨티노들처럼 적절한 에티켓을 유지하고 싶어져, 조심조심 향수를 가까이 해보는 중이다.
한국에 살 때, 거리를 지나다가 샤넬5의 향수를 진하게 뿌린 여인에게서 산뜻하지 않은 인상을 받았던 기억은 뒤떨어진 사고방식이었다고 애써 접어 두면서.
자연적인 것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나의 성격 탓인지 썩 환영할 만한 선택은 아니지만, 나를 위해서라기보다, 다른 이들을 위해서라는 입장으로 향수라는 영역에 조심스레 접근을 시도해 보는 중이다.
법구경은 일컫는다.
"복숭아 향이나 향나무의 아름다운 향도 거슬러 부는 바람에는 제 향기를 발휘하지 못한다.
인간이 덕(德)으로 쌓은 향기만은 거슬러 부는 폭풍에도 그 향을 잃지 않는다."
최근의 나는 내 자존(自尊)을 최대한으로 기쁨과 화평을 지향하는 방향으로만 질서를 맞추며 지내 왔다.
대단히 역설적이라는 느낌 배제할 수 없지만, 나는 나라는 가치관에서 해방된 순간 참다운 존재를 발견하게도 되었다.
감성을 표현하는 것은 감성을 감춘다는 그런 의미와 같아야 하는데, 나는 오히려 감추기 위해 드러내고 있었음을 스스로 자인(自認)했던 것이다.
그럴 때의 나는 부서질 정도로 나약하다.
세상을 향한 나의 근본적 지향은 세상을 단순하게 소통하려는 데에 있다.
재산이든 무엇이든 내 몫 이외에는 탐내지 않고 온화하게 살아내고 싶을 뿐이겠고.
평소 하던대로 나는 여전히 가까운 곳에서 먼데로가 아닌, 먼데서 가까운 문제로 해결점을 찾으려 한다.
나는 여전히 물질과 티격태격 하지 않고, 언어와만 티격태격을 주고 받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사상(思想)이라는 식탁이 마련 될 것 같다.
나만의 주제가로 차려지는 나만의 양식이다.
우리 인생이 여러 기쁨과 여러 슬픔으로 엮어졌다고 해도, 그 모든 감정은 궁극적으로 평화라는 향수병에 담긴 일종의 향기가 아닐까 한다,
일교차(日較差)가 커다란 계절이다.
상념(想念)의 뜰 서성이듯 오가며 오늘의 빗장을 향기로운 향을 음미하듯 상쾌하게 열어 본다.
아르헨티나의 음악 경연대회에 나온 아마추어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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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말씀하신 대로 인격에서 흘러 나오는 향이 제일 좋고 강한 향 이라는 걸 늘 경험하곤 합니다. ^^
이 세상엔 마음을 뒤흔드는 감동적인 말들 너무나 많지만, 우리가 그걸 다 익히지 못할 때 더 많지요. 지금까지는 그렇지 못했을지라도 이제부터라도 그러기로 할까요?
늦게 찾아온 복은 늦게 떠난다는 격언처럼 늦게 찾아온 향기는 늦게 떠날 듯 해요.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올드맨님이 항상 부럽죠.
제가 몇 년 전 한국 갔을 때, 아직도 초등학교 선생님 하는 동창이 셋이나 있었어요.
그 친구가 그랬어요.
죽을 때까지 하겠다고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이 그런다네요.
"선생님은 왜 미스코리아 대회에 안 나가세요?
정말 이쁘신데, 나가시면 일등 하실건데."
ㅎㅎ.
님도 아마 아이들에게 그런 사랑을 받으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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