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4일 화요일
납덩어리와 금덩어리의 변신(變身)
맹하린
옛날에.
부지런하고 규모 있게 생활하기를 모범으로 삼는 농부가 시골마을에 살고 있었다.
그는 매우 알뜰한 성격이라서 한 푼 두 푼 기회 닿을 때마다 모은 3천 냥을 은밀히 간직하고 있었다.
어느 날, 농부의 집에는 나그네 한 사람이 찾아와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난 나그네는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샛노란 금덩이 하나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별안간 부탁드려 죄송한 일이지만 이 금덩어리를 맡으시고 돈 3천 냥만 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며칠 안으로 삼부 이자를 포함해서 갚아 드리겠습니다.
그 금덩어리는 농부의 눈에 몇 만 냥도 더 나가는 값어치로 가늠되었다.
하물며 며칠도 안 지나 3부 이자까지 주겠다는 언질이었다.
당장에 현혹된 나머지 농부는 서슴없이 돈을 내 주었다.
그런데 밤중이 되어서야 석연찮은 의심에 휩싸이게 된 농부는 나그네가 맡겨 둔 금덩어리를 꺼내 세심하게 이리저리 살펴보게 되었다.
이윽고 그 금덩어리가 단지 도금을 했을 뿐, 하찮은 납덩어리에 불과 하다는 걸 알아챈 농부는 혼비백산 놀라고 말았다.
"당했구나, 그 인간이 도둑놈이었다니!"
농부는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키고 어떻게 하면 잃어버린 돈을 되찾을 수 있을까를 순간적으로 모색(摸索)하기 시작했다.
농부는 궁리에 궁리를 다 쏟게 되었다.
(도둑놈은 금덩어리도 아닌 납덩어리를 맡겼으므로 돈을 돌려주러 올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도둑이 돈을 돌려주러 오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 납덩어리를 다시 금덩어리로 만들어야 한다.)
날이 밝자마자, 농부는 장터로 나갔다.
그 장터에서 가장 입이 빠르고 말 많기로 소문난 주모(酒母)가 꾸려 나가는 주막(酒幕)으로 들어가 아침부터 술을 마셨다.
이미 전작(前酌)이 있었던 것처럼 둘러대는 일도 잊지 않고 해냈다.
이윽고 술에 취한 척 엉엉 울며 주정(酒酊)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게 된 주모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농부에게 다가간 주모는 도대체 웬 소란인지를 캐묻게 되었다.
"세상에, 무슨 이런 고약한 일이 다 있답니까? 내 하도 기가 막혀 당장 죽고 만 싶은 심정일 뿐입니다. 어젯밤 어떤 선비께서 우리 집에 묵었는데 아. 글쎄 몇 만 냥은 족히 나갈 금덩어리를 하나 맡기면서 3천 냥을 빌려 갔지 않겠소. 그런데 그만 간밤에 도둑이 들어왔지 뭡니까? 값나갈만한 물건이라고는 그 금덩어리 밖에 없었는데 그만 그걸 훔쳐가 버리고 말았답니다. 그러니 내 이 신세를 어찌하면 좋겠소? 며칠 있으면 그 선비 어른께서 금덩어리를 돌려달라고 찾아오실 텐데, 그런데 과연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오? 나는 죽어야 합니다. 죽을 수밖에 별다른 도리는 없을 듯싶소이다. 이 일은 주모(酒母)만 알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절대로, 절대 비밀이오. 금덩어리를 잃어버린 걸 그 선비님이 아시기 전에 어떻게든 그 도둑을 잡아야지 않겠냐는 말입니다요."
한 바탕 굿을 치룬 후 농부는 집으로 돌아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한나절도 되기 전에 농부의 목적은 달성(達成)되었다.
말 많은 주모는 농부의 말에 살과 피를 붙이고 발라서, 온 장터에 소문을 퍼드렸다.
그 소문은 그 지방 전체에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당연지사 그 도둑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흐흐흐. 호박이 넝쿨 채 들어왔다 했더니 금상첨화(錦上添花)구나. 좋다! 당장 그 얼빠진 농부놈 집으로 가야겠다. 어서 금덩이를 되돌려달라고 다그친다면, 놈은 꼼짝없이 있는 재산 모두 처분해 내게 넘겨주지 않고는 못 배길 테지. "
이렇게 중얼대던 도둑은 돈 3천 냥에 3부 이자까지 합친 보따리를 들고 농부의 집으로 찾아 들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도금(淘金)한 납덩어리와 농부의 회초리였다.
위의 예화는 탈무드에서 읽었던 것도 같고,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봤던 것도 같으며, 한국의 예화집에서도 접했던 걸 약간 손을 보았다.
반향사고(反響思考)는 결코 우연히 이룩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구체적인 생각에 근거해야 하는 것이다.
침착함은 선천적으로 형성되는 것만도 아니다.
사회와 가정과 교육 환경의 영향과 후천적 형성으로 성립된다.
어떤 일에 당면(當面)해도 우선 침착성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제의 핵심을 올바로 주시하고 반향사고로 끌어내도록 한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과 대면한다고 해도 좋은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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