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7일 화요일
덴마크의 방풍림(防風林)
맹하린
아르헨티나뉴스
"대대적인 국유화 없다"
YPF 국유화는 대대적인 국유화 바람의 시작이 아니라고 여당 고위관계자가 밝혔다. 여당 하원의원 로베르또 펠레띠는 "YPF를 국유화하기로 한 건 핵심적인 자원인 석유의 개발과 공급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라디오10과의 인터뷰에서 "스페인 정부가 이번 사태에 대해 자성하길 바란다"면서 "스페인의 이해관계는 렙솔을 넘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펠레띠 의원은 또 "대대적인 국유화 정책이 시작된 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펠레띠 의원은 "경제위기가 있을 때 모든 외국인기업이 그렇듯 YPF도 그간 아르헨티나에서 벌어들인 돈을 스페인으로 보내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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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내가 아침마다 일과처럼 들르는 교민상조회게시판에서, 최근 이슈화 되고 있는 이 뉴스를 보면서 문득 채근담에서 읽은 예화가 떠올라 옮긴다.
시대가 격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날이 느끼는 게 아니라 시시각각 느낄 때 매우 많다.
한 나라의 부흥은 정치로만 이룩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묵상하게 된 예화였다.
국유화.
제휴기간 동안 70퍼센트를 재투자하리라는 약속도 전혀 안 지켜졌고, 그렇게 재투자해야 할 자산을 다른 부유한 나라에만 쏟았다는 여러 요인(要因)이 걸림돌이 되어 이런 사태가 닥쳐왔다고 보여진다.
모두 압수한 건 아니고, 우선 50퍼센트 정도를 관할하리라고 한다.
옳고 그름, 그리고 정책의 바름과 그르침은 역사가 말해 주리라 여겨진다.
위의 뉴스를 옮겨 올 수 있어서 교민상조회게시판을 관리하시는 담당자분들께 무한감사 했고
그리고 펌이라서 엄청 미안했음.
큰 이해 있으시길~~~
모두, 우리의 조국과
우리가 얹혀 지내는 나라와
우리가 하루도 빠짐없이 살아 나가야 할
세상을 사랑하는 맘에서였다고 여겨주시옵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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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의 전쟁에서 참패한 덴마크는 지금부터 120여 년 전에는 쇠나 석탄 등의 지하자원이라고는 전혀 없는 패전국(敗戰國)이었고 가난에 찌든 볼품없는 나라였다.
물론 남쪽의 기름진 땅이 있었지만, 적국(敵國)에게 빼앗긴 상태였다.
그렇지 않아도 넓지도 못했던 나라가 더욱 작아진 것이다.
유틀란트 반도를 거의 차지하고 있는 덴마크였지만, 서쪽 지역은 바다에서 불어 닥치는 바닷바람으로 나무도 풀도 돋아날 수 없는 사막과 같은 모래땅으로 점차 초토화 되는 추세에 있었다.
엔리코 달가스.
이미 노년에 접어든 그는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그 땅을 옥토로 만든다면 덴마크는 부유한 나라로 전환되는 일도 전혀 어렵지 않으리라는 각오 같은 걸 굳히고 있었다.
바다와 땅 사이에 방풍림을 조성하는 숲을 만드는 일을 계획한 것이다.
군대에서 공병으로 근무했던 그는 지질(地質)이나 식물에 관한 지식에 어느 정도는 도통한 인물이었다.
덴마크보다 더 추운 나라인 노르웨이에서, 성장에 이렇다 할 문제가 없다고 정평이 난 큰 전나무를 수입해다 심는다면, 가히 희망적일 수도 있다는 판단을 굳힌 그는 일을 서둘렀다.
가진 돈 모두를 투자하여 노르웨이산 전나무의 묘목을 사들인 것이다.
유틀란트 반도의 거친 모래땅에 심기 위해서였다.
아무도 도움을 주지도 않았고, 미친 짓이라는 욕만 먹기 일쑤였다.
처음엔 잘 자랄 것처럼 보이던 큰 전나무는 억센 북풍에 견디지 못하고 이내 시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아들 프레드릭 만큼은 언제나 아버지를 도우며 두둔했다.
"염려 마세요, 아버지. 제가 식물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어 기꺼이 도와 드리겠습니다."
"고맙다. 이게 다 , 우리의 일만 되는 건 아니고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이윽고 알프스의 산에 자라는 전나무가 바닷가에서 자라기엔 더할나위 없이 알맞은 품종이라는 것 또한 짧은 기간동안에 알아낼 수 있었다.
그 나무는 키가 낮아 바람이나 모래에 잘 견딘다는 것을 실험으로도 깨우쳤다.
그들 부자는 큰 전나무와 작은 전나무를 섞어서 심어 보게 되었다.
서로 보호자가 되고, 바람이나 모래에도 강한 작은 전나무가 큰 전나무를 지켜 주기까지 하며 함께 공생공존하리라고 전망(展望)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염원은 맞아 떨어지는 것도 같았다.
두 종류의 나무들이 함께 튼튼히 뿌리를 내려 싱싱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키가 많이 자라야 방풍이 될 텐데 키가 잘 크지 않았고, 오히려 작은 전나무보다도 못 자라나는 이변(異變)이 키 큰 전나무에게 생겨나고 있었다.
달가스의 낙심은 매우 컸다.
그러던 중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프레드릭은 혼자서 아버지가 하던 일의 뒤를 이어 언제나 바닷가로 삽을 들고 나갔다.
아버지 달가스가 걷던 수십 년의 길을 그 역시 걷게 된 것이다.
어느 날이었다.
프레드릭은 큰 전나무 한 그루가 높게 자라나고 있음 을 순간적으로 발견하게 되었다.
그 나무에 바짝 다가가 자세히 살펴 본 프레드릭은 그 한 그루의 전나무가 키를 높이게 된 까닭을 금세 캐낼 수 있었다.
그 길은 어부들이 바다로 나가는 통로(通路)였기 때문에, 전나무 둘레의 작은 전나무들을 다 베어 버렸다는 결과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 것이다.
"아, 그랬구나!"
프레드릭은 그제야 큰 전나무가 못 자라는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큰 전나무의 묘목은 바람에 약하기 때문에 강한 작은 전나무와 함께 섞어 심어야 뿌리를 내릴 수가 있었다.
그리고 뿌리가 내린 다음에 키가 못 자라나는 이유는 작은 전나무가 방해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뿌리가 일단 자라기 시작하면 작은 전나무를 잘라 주면 큰 전나무는 제대로 된 성장을 촉구하는 이치(理致)가 성립(成立)되는 것이었다.
프레드릭은 아직 시들지 않은 큰 전나무와 섞여 있던 작은 전나무를 과감히 베어 냈다.
그러자, 2, 3년도 안 되어 큰 전나무는 몰라보게 쑥쑥 자라 거대한 방풍림이 유틀란트 반도의 바닷가와 모래땅 사이에 기다란 숲을 이루게 된 것이다.
덴마크는 비로소 그 땅에서 농사는 물론이고 목축업을 일으켜 살기 좋은 농업국으로 거듭 나게 되었다.
달가스 부자는 그 후부터 덴마크의 영원한 아버지로 존경받기에 이르렀다.
달가스 부자가 본인들의 이익만 생각했었다면, 그리고 애초에 포기했다면 지금의 덴마크는 여전히 가난한 나라에 머물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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