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4일 월요일
생(生)의 큐비즘
맹하린
아들과 나는 가끔 선의(善意)의 논쟁을 한다.
내가 IMF라고 말하면 아들은 FMI라고 고쳐 주려고 하고, 내가 NATO라고 표현하면 아들은 OTAN이라고 우겨대기 때문이다.
물론 서반아어에서는 명사(名辭)를 잊으면 안 되는 존재라고 여겨서 앞쪽에 놓는다는 것과 영어에서는 명사(名辭)란 소중한 존재라서 아끼는 의미로 뒤에 말하는 차이에 불과한 것이기는 하다.
하여간에 나는 아들과 그런 일을 만날 경우 언제나 겉으론 바득바득 우기면서 속으로는 쿡쿡 웃으면서 나의 주장을 강하게 고집하는 편이다.
토론이 어떤 과정을 겪어야 하는 건가를 깨우쳐 주기 위해 일부러 그래 온 것.
어떤 때, 인터넷 뉴스를 본다거나 교민게시판 등의 사이트를 들락거리다가 나는 눈앞에 알짱대는 모기를, 마우스에 얹고 있던 오른 손을 잽싸게 움직여 찰나처럼 잡아 챌 때가 있다.
물론 그러는 동시에 소리친다.
"잡았다!"
그러면 아들은 젓가락을 가져다 컴퓨터 근처에 놓으면서 말한다.
"이 빨리또(Palito=젓가락)로 한 번 잡아 보세요, 실력이 날로 날로 늘고 있어요."
박수 치면서 잡는 방법을 사용하는 아들에 비하면 나는 고단수의 모기사냥꾼이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우리 가게엔 모기가 좀 있다.
수중재배로 키우는 화초들이 여럿이나 있어서다.
이상하다. 수초도 있지만 수초가 자라는 환경에는 곤충이 얼씬도 못한다.
아들과 나는 매사를 그런 식으로 산뜻하게 대응하며 살아내고 있다.
어제는 일요일이라서 9시 미사에 참례하려고 10분 전에 가게를 나섰다.
보통, 20분 정도 일찍 나서지만 어제는 미적미적 늑장을 부리다가 결국 늦어지고 말았다.
성당의 입구에서 보좌신부님과 반갑게 악수하는 순간, 미사시작을 알리는 입당성가가 나더러 어서 서둘러 들어 오라는 뜻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내가 선호하는 앞쪽의 세 번째 자리는 비어 있었다.
광고시간에, 자모회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호떡 판매가 있으리라는 공지를 들었다.
나는 미사가 끝나자마자 광장으로 다가 갔다.
친구들은 모두 레지오 회합이나 단체모임에 참석하는지라 미사가 끝나기가 바쁘게 핑핑 사라지고 있었다.
작은 식탁처럼 크고 잘생긴 데다, 검은 윤기가 자르르 반짝이면서 따사로운 느낌까지 주던 신품의 호떡기계 앞에 나 홀로처럼 외로이 섰다.
아들의 중학 선배이자 K소아과 원장인 교우가 맨 앞이었고 내가 두 번째였다.
둘이서만 내내 줄 서 있는 동안 보좌신부님이 두어 번 다녀가셨다.
도대체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는 반 농담과 반 진리를 보좌신부님은 잊지 않고 설파하셨다.
하필이면 본당신부님이 두어 달 전에 지적하시던 말씀이 떠올라 나는 속으로 풀풀 웃었다.
-성당입구에서 까불까불 인사하던 보좌신부가 얼마 전부터 교우 여러분의 눈에 전혀 안 띄시죠? 지금 페루에 계신 한국 신부님들한테 다니러 갔어요. 일주일 후면 돌아올 거구 만요."
그날 우리 신자들은 폭소의 도가니였다.
아마 보좌신부님만 모르는 웃음 보따리였을 것이다.
나는 신부님들의 그런 소탈한 모습이 참 보기 좋고 존경스럽다.
자모회 임원 넷은, 틈틈이 찾아와 칭얼대는 아이들 거두며 밀가루 반죽 안에 흑설탕과 야채 고명을 따로따로 넣고 만들고 굽고 하는 일에 단체로 쩔쩔 매고 있어서인지 거의 20분도 더 기다려서야 호떡 몇 개를 살 수 있었다.
(편의점 강 여인 에게 주보를 건네면서 호떡 하나 맛보게 해야지.)
그런데 친구 N도 편의점에 앉아 있어, 결국 N의 식당에서 커피를 곁들여 먹기로 즉석 약속을 주고 받았다.
아들 몫은 따로 챙겨다 주었다.
계피와 흑설탕과 호두가 잘 어우러진 호떡은 한참이나 기다린 효과를 대접할 셈이었는지 한국에서 먹던 호떡보다 훨씬 맛이 괜찮았다.
자주 못 가지만 가끔은 다닐 수 있는 성당이 있고, 위트 넘치는 사제들을 접할 수도 있고, 특별히 나를 아껴주고, 내가 사랑을 쏟는 친구들과 지인들을 만날 수 있어 참으로 뿌듯하고 기쁘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는 더욱 반가워하리라.
세상이 딴 세상처럼 느껴질 때는
바로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으며
누군가를 관심으로 지켜줄 때라는 인식(認識)이
최근 내 생의 한가운데에 입체감으로 부상(浮上)하는 느낌 가득어니 넘치고 있다 .
분명한 것은 살아가는 일은 넘칠 때도 있는가 하면 모자랄 때 역시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때때로 오늘처럼 잔잔한 얘기를 소재로 삼게도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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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안녕하세요..이렇게 같은 아르헨티나에 사시는 분을 온라인으로 만나뵙게 되어 정말 반갑고 기쁩니다. 저는 아베상조회에 아르헨20년이란 아이디로 활동을 했었는데요..기억하시려는지 모르겠네요. 지나가다 우연히 들렀는데 천천히 님의 글들을 읽어보겠습니다.
반갑습니다...
물론 기억 못한다면 안 되죠.
강한 인상으로 남았던 분이시니까요.
들러 주심을 감사 하게 여기구요.
제가 이제야 댓글 주심을 확인하게 되어 송구스럽네요.
상조회는 지금으로선 시쳇말로 멍 때리는중입니당~
부족한 글 읽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나날이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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