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4일 목요일
Villa Ocampo (Casa de Cultura=문화의 집)
맹하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근교인 산 이시드로 지역에 자리 잡은 오캄포 별장은 20세기를 주름잡던 세계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천재작가로 알려진 아돌포 까사레스가 자주 회합을 갖고 교류를 나누면서 지성인(知性人)들을 위한 문예지 수르(Sur)를 창간한 곳이다.
아르헨티나 문인들과 유럽문학의 대들보였던 버지니아 울프(Virgenia Woolf)와 호세 오르떼가 이 가세트(Jose Ortega y Casset) 등 당대 최고였던 문인들과 라벨을 위시한 작곡가나 예술인등의 사무실 역할도 했다.
이 별장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보르헤스는 무명인사에서 유명인사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 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그들은 모임을 가질 때마다 유럽과 남미의 문학이 가져야할 진로(進路)와 방향(方向)을 서로 고민하며 거론(擧論)했고 자주 담합(談合)을 가졌다.
문제는 그들이 문학을 논하면서 사회문제까지 논평의 주제(主題)로 삼았다는 점과. 날이 갈수록 반페론주의 성향의 기치(旗幟)를 높이 내세웠다는 데서 발생 되었다.
특히 보르헤스는 페론 당을 공산주의 세력이라고 가차 없이 몰아 세웠고, 프롤레타리아 투쟁이자 반민주적 정부이며 불온세력의 온상(溫床)이라는 평가를 남발했고 여론(輿論)으로 삼았다.
보르헤스와 그 외의 문인과 예술인들의 비난 실린 봇물이 페론당원들을 제대로 휩쓸어 내기에는 모든 면에서 역부족 현상이 돌출 되고 있었다.
페론당원들은 오캄포 별장을 반체제 인사들의 은신처이자 활동영역이라고 몰아세우기 시작했고, 전반적인 감시 아래 사법기관의 조사를 받게 하는 방파제(防波堤)까지 쌓기에 이르렀다.
페론당원들의 비난은 짧은 기간에 극에 달했다.
'오캄포 별장에 안주(安住)한 채 호의호식(好衣好食)만을 일삼는 귀족주의 문인들, 서민들의 애환(哀歡)을 외면하는 전형적 부르주아들.'
결국 오캄포는 체포되었고 한 달 가까운 영어(囹圄)생활을 마감하면서 곧장 유럽으로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전개 되었다.
오캄포 별장을 제 집처럼 드나들던 문인들 역시 은둔자로 변신을 꾀하거나 해외로 망명생활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1968년.
15년 동안의 유럽생활을 청산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별장에 돌아온 오캄포는 하나에서 열까지 격세지감(隔世之感)을 수도 없이 겪고 껴안고 먹고 마시고 체감(體感)해야 했다.
장기숙식처(長期宿食處)라도 된다는 듯 허구한 날 머물던 문인들도
오캄포를 여왕으로 떠받들던 요리사들과 하인들과 집사(執事)들도
언제나 군림(君臨)하던 부귀영화와 권위조차도
페론의 재집권도
오캄포를 크게 고립 시켰고 자괴감에 잠기도록 유도(誘導)했던 것이다.
1973년도.
심기일전(心機一轉)을 꾀하던 오캄포는 "세계 문화 창달을 위해서"라는 기치(旗幟)를
자구책(自救策)으로 삼으며 오캄포 별장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활용하기 바란다는 제안과 함께 유네스코에 기증을 결심했다.
페론당 정부와 일부 기업들과 뜻 있는 시민들의 후원으로 운영을 지속하고 있는 오캄포 별장은 현재 특유의 궁궐과 같은 자태를 뽐내며 많은 수목으로 가꿔진 장원(莊園) 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탁월한 주위 경관(景觀)을 지닌 채
관심 있거나
관심 멀어진
가깝고 먼
오캄포 문화의 집으로 거듭난 별장.
두어 해 전.
지인 몇 분과 오캄포 박물관을 다녀오면서 태평성대(太平聖代), 인생무상(人生無常),귀족주의, 문화창달(文化暢達)등의 수식어(修飾語)들에게 며칠이고 갇히는 기분이 들었었다.
중세유럽의 고성(古城)을 연상케 하는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은 문인 오캄포의 일생을 내 나름의 각도로 조명(照明)하며 이 며칠, 모처럼 휴일을 맞은 고즈넉함을 즐겼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으면 마음도 편해지는 법!
산책을 나선다.
길은 여태 나를 기다렸다는 듯 매우 상쾌하게 전개 되어 있었으며 고요, 그 자체였다.
나는 천천히 관찰하면서 계속 산책을 즐기게 될 것이다.
때로는 딜레마의 극복과 추구의 경계(境界)를 넘나들며.
문학(文學)도 생(生)도 간혹 딜레마의 한 장르임을 절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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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개:
제가 제일 좋아하는 memphis la blusera 올려 주셨네요.^^;
이틀전에 교통사고로 리더 Adrián Otero 가 사망해서 마음이 좀 울적했는데..
감사히 잘 감상하고 갑니다.
좋아 하시는 부문이라시니 가끔은 노력해 볼게요. 원래 좋은 건 가끔이 더 좋아지는 것?ㅎㅎ
님과 저의 서재는 아마 저렇게 깔끔하지는 않고 많이 어수선 할 듯~~~
원래 살아 있는 서재는 어지럽혀 있어야~~~
네. 저 역시 아드리안의 몇 노래를 따라 부를 정도였었는데요...
누가 세상을 떠날 때마다, 특히 예술하는 분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럴 때마다 살아 있을 때 더 존경할 걸 그런 애석함 남죠.
밝고 산뜻한 주말 되시옵기를!
오타 수정~
좋아하시는 그룹이라시니 가끔은 올려 드릴게요.
님이 음악은 저보다 더 많이 아실 듯~~~
리더인 아드리안은 팀과 결별었했다죠?
대부분의 그룹들은 잘 헤체되는 경향이 있군요.
예술하는 이들의 개성미가 넘 강해서인가 봅니다. 아르헨티나의 아버지날 추카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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