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하린의 수요칼럼
아르헨티나중앙일보
1996년 6월 16일
어느 날.
우리 가게 앞으로 대여섯 명의 히따나들이 왁자지껄 떼를 지어 지나가고 있었다.
히따나들은 360도나 되는 호화찬란한 원피스를 치렁치렁 땅에 끌며 허리만 잘록하게 조여 입는 전통을 고수(固守)하는데, 머리는 하나같이 어깨를 덮게 기르고 원피스와 같은 천으로된 머플러를 리본처럼 머리에 묶은 채 몰려다닌다.
집시의 원래 출신지는 인도라고 한다.
그들은 보헤미안의 혈통을 이어 받아 세계 여러 나라에 흘러 들어가 언제나 집시답게 가장 집시다운 생활을 영위해 왔다고 전해진다.
아르헨티나에선 천막생활이 아닌 떳떳하게 집을 소유해서 살고 있는 실태(實態)다.
현지인들조차 그들을 전혀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대하는데, 대부분의 집시들은 그들 고유의 언어를 주로 사용하며, 하나같이 손금을 봐주거나 점(占)을 봐주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더 그런 대우를 받는 것 같다.
곱게 손금을 봐주거나 점만 친다면 괜찮겠지만, 그러는 과정의 중간에는 야바위 짓까지 해낸다고 한다.
우리 가게 옆에서 까미사(블라우스)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패션 신띠아의 현지 엄마는 실제로 그들에게 결혼패물을 몽땅 빼앗긴 좋지 못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런 연유로 히따나들이 상가(商街)에 나타나기만 하면 현지 엄마는 훠이훠이 손짓을 하며 쫒아내느라 주위가 시끌시끌해질 정도로 야단법석을 떨고는 한다.
신혼 때의 현지엄마가 Flores 공원을 지나가는데, 히따나 몇 명이 가까이 오더니 친절에 친절을 다하면서 족집게처럼 지적을 했나 보았다.
-당신은 얼마 전에 결혼을 했죠? 그런데 일정한 직업을 못 정해서 고민 중인 것 같네요.
그렇게 정곡(正鵠)을 찌르며 이 일 저 일을 또 다시 꼭꼭 짚어 내더라고 했다.
그러던 히따나들은, 좋은 직업이 정해질 수 있도록 주술(呪術)을 외어 줄 테니까 지금 몸에 지니고 있는 보석마다 신통력(新通力)을 걸자고 제안했고, 현지 엄마는 결혼예물로 받은 귀걸이와 반지, 그리고 팔찌까지 다 빼어 손수건에 감싸는 일에 협조를 아끼지 않았었다는 얘기다.
한참 주술을 외던 그녀들은 집에 가서 펴봐야 된다면서 손수건에 싼 패물(佩物)을 핸드백에 넣어 줄 때 기필코 보석의 건재함을 재확인까지 시켜 줬었다고 한다.
그런데 집에 가서 펴보니 분명 있어야 할 보석들 대신에 차돌멩이 몇 개가 손수건 안에 덜렁 들어 있었나 보았다.
기이한 일은 왜 그렇게까지 당하면서 손톱만큼도 그녀들을 의심하지 않았었냐는 일이었다고.
집시.
한국에 살 때는 집시라는 말만 떠올려도 낭만의 상징처럼 여겼었는데 내가 직접 바라보게 된 대부분의 집시들은 손금을 보거나 점을 치지 않으면 야바위 짓으로 생계를 유지해 가고 있었다.
그들이 열심히 지켜나가는 집시의 내력이나 자부심은 결단코 없어지지 않을 것처럼 굳세고 튼튼해 보인다.
집시로 태어난 게 부끄럽거나 싫다면 옷이나 치장부터 진즉 바꿨을 테고, 사기나 점을 치거나 손금을 봐주는 일도 집어 치우면 그만일 텐데 그들은 그 호화로운 무늬와 색깔의 차림을 고수하면서까지 일종의 긍지를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 겨레붙이를 관찰하듯 좀 더 유심히 바라보노라면 아무리 급진적으로 물질문명이 발달을 거듭하는 세상이고, 옛것은 소멸(消滅)되어가는 풍습이 만연(蔓延)하는 사회현상이 닥쳐올지라도 집시족 만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신념에 잠기게 된다.
현지 엄마의 자조(自嘲)섞인 탄식(歎息)이 공감되듯 떠올려진다.
-다 이민 온 죄지요. 한국에 있었어 봐요. 우리가 어떻게 집시의 실물(實物)을 제대로 볼 수나 있었겠어요?
맞다.
저토록 화려 만발함을
저렇게나 영원불멸처럼 확실한 모습을 한국에 있었다면 단지 사진이나 동영상으로나 볼 수 있었을 게 아닌가.
나는 신(神)께서 우리 인간 중의 그 어느 민족이나 개인에게는 특별히 뛰어난 독특함을 제시 했다고 여기고 있다.
신(神)은 우리의 행동을 기억하고 또한 우리의 언어까지 파악하고 있다시지 않은가.
하물며 우리 인간을 서서히 항복시키면서 제압해 들어가는 병법(兵法)에 특히 노련하다고까지 일컫는다.
신(神)의 칭찬, 그리고 다독임은 언제든지 우리 인간을 도취 시키거나 중독 시키는 면까지 강하거나 약하게 잦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지 못할 때가 허다(許多)하다.
그대, 그리고 그대!
그대들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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