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4일 일요일

거기서 잘 지내쥬?



    맹하린


보름 쯤 되었을까.
Cartero(우편배달부)가 본국에서 보내온 전보를 가져왔다.
집도 가게도 이렇다할 이상이라고는  없었는데 ,그쪽에서 전화 연결이 잘 안되어
따로 연락할 길이 없었나 보았다.
시댁 가족 중의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전보였다.
나는 집배원한테 팁을 주려고 잠깐 기다리라고 했는데, 가족이 의외의 반대를 했다.
나쁜 소식인데 어찌 팁을 주려고 하느냐는 타박이었다.

그동안 나는 현지인 배달부나 청소부등에게 어김없이 팁을 건네 왔었다.
구약시대엔 안 좋은 소식(消息)을 가져 오는 자(者)를 죽이기까지 했다는 질책이 잇따랐다.
"지금이 구약시대니? 그리고 세상을 떠나는 일이 뭘 나빠?"
(때로는 나도 떠나고 싶단다.)
나는 그렇게 겉과 속으로까지 반문하면서 집배원에게 다음에나 팁을 주겠다는 뜻의 제스처를 전달했다.

어제 낮.
본국에서 달마다 보내오는 문예지를 집배원이 가져왔기에 밀렸던 팁까지 적절히 건넸다.
가족은 , 전혀 간섭하지 않고 있었다.
나쁜 소식이 아니라서 그러나 보았다.
동전 한 닢도 소중히 여기는 가족이지만,  나의 그런 면에 대해서는  평소 한 치도 간섭하지 않아 왔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일을 만나도 나를 에셉시온(예외적)한 존재로 대접해 왔기 때문이다.
가족과 나는 어떤 면으로는 상부상조(相扶相助)를 즐기는지도 모른다.
같이 사는 동안까지는 서로가 서로를 돕기로 암묵적 약속을 해낸 거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처럼 그렇게 언제나 각자의 배려를 아끼지 않으며 살아간다.
따로 약속은 안 했어도 함께 살 날 까지는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될 것 같다.

나는 항상 그래 왔지만 최근에 더욱 많은 변화를 갖춘 나를 발견하고 새삼 놀란다.
이틀 전.
어느 모임이 끝난 후 가게에 돌아온 시간은 오후 5시였다.


나는 가게로 총총 돌아오고 모두들 우르르르 N의 집으로 몰려가는 게 언제나의 정해진 코스라고 볼 수 있다.
가게에서 대강 일을 끝내고 나는 결국 N의 집으로 자연스레 이끌리듯 가본다.
가봐야 뻔한 일이지만 나는 항상 그래도 가보고는 했다.
언제나처럼 정원 옆 홀에서 네 명씩 두 팀으로 나눠 고스톱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동안의 나는 사실,  우리 교민들에게 고스톱이나 골프 등이 꼭 필요한 오락이며 운동이라고 매우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아 오던 터였다.
나는 그녀들이 고스톱을 치는 장면을 맞닥뜨릴 때마다 세 번쯤 박장대소(拍掌大笑)에 가깝게 웃기는 역할을 언제나 충실히 실행해 온  편이다.
첫째는 고스톱도 칠 줄 모르면서 배우고 싶어 하지도 않고 한 번 쳐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게 그녀들에겐 너무나 웃기나 보았다.
그 다음엔 칠 줄을 모르니까 금세 지루해져서 10분도 못 견디고 폴짝 날듯이 일어나는 모습도 무척 웃긴다고 한다.
마지막엔 내가 남기고 오는 인사말 때문에 가장 많이들 웃는다.
"그럼 고스톱도 못 치는 이 빙신(병신)은 이만 물러가도 되겠죠?  용서들 하세요!"
때로 나는 그녀들에게 한국산 아이스크림까지  사다 안긴다.
웬 아이스크림이냐고 그녀들이 의아해 하면 나는 서슴없이 대답한다.
"원래 이런 건 왕따 당하는 사람이 사 와야 하는 정도는 모자란 나도 벌써 알아채고 있었거든요."

오랜 방황과 화해하고 얼마 전 집으로 돌아온 사람처럼 최근의 내 하루하루는 유난히 신선하고 새롭게 느껴진다.
얼굴도 모르는 몇 분과 교류하면서 갖는 초심으로 돌아 간 것만 같은 동지의식(同志意識) 의 기분도 나름대로 근사하게 여겨진다.

순서도 없이 주위 사람들이 불현듯 세상을 떠나고 있다.
참 사소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사소하지 않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에 나는 마음이 아려 죽을 것 같다가도
그 아릿함을 대위법으로  각성(覺醒)과 같은 이치를  되찾는 경우 매우 흔했다.
나는 누구나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바짝 정신을 차려야 살 수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때로 남편을 그립게 저절로 추억한다.
그가 투병 중에 있을 때 손톱발톱을 깎아주며 해내던 치기(稚氣)어린 장난들.
-당신은 엄지발톱이 유난히 가스락져요. 한 성질 했을 것만 같은 발톱이십니다.
-하하 하하하.
다 깎은 손톱발톱을 왼 손에 쓸어 담은 후 그의 입 가까이 대며 아이 다루 듯 아! 하면 새끼 새처럼 아! 해 주던 그.
그때 비로소 왼손에 담았던 손톱발톱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손바닥을 과장스레 털어내는 나를 보며 다시 하하하 웃던 그.

"께 딸(어떻게 지내요)?  거기서 잘 지내쥬?  거기서,  거기서..."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