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8일 목요일
각본(脚本)의 각본(脚本)되어
맹하린
어제 정오 12시경에는 문협회장의 사업장에서 점심을 들었다.
얼마 전 민주평통 남미서부협의회가 개최했던 통일기원 글짓기대회에 제출된 글들을 어제야 따로 심사한 후 심사 위원들 네 분과 삼겹살 구이와 쌈밥으로 된 식탁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 회장은 함께 식사를 할 때마다 나의 음식 솜씨를 잊지 않고 추겨 세워준다.
내가 차리지 않은 식탁에서 나를 칭찬 받는 일은 좀 설컹하다.
그래도 칭찬은 칭찬이다.
하여간에 미나리 전과 배추 국이 곁들여진 어제 점심은 진정 모처럼 맘에 드는 소탈한 식사였다고 되레 내 쪽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고 도로 갚았다.
오후 3시에는 성당 교우들의 반 모임이 같은 장소에서 있었다.
대낮에 가게를 비우기도 그렇고, 나는 일요일에 미사나 드리면 대 만족이라면서 몇 년이고 반 모임을 소홀히 대해 왔었다.
그런데 새로 뽑힌 반장이 오랜 지인이라 돕자는 뜻으로 모처럼 참석하게 되었다.
반장이 S어묵 공장의 주인이라 어묵을 반원마다 선물로 세 묶음 씩 안겨 고맙게 받았다.
반 모임에 가려고 가게를 나설 무렵, 현지인의 전화가 연신, 끊임없이, 줄기차게 걸려 왔다.
모르면 몰라도 일곱 번 쯤?
장난 전화도 같았지만 흡사 스토커 수준과 맞먹는 짓궂음이었다.
현지인 TV의 저녁 프로에 나오는 수법과 비슷했다고 생각된다.
그 프로의 사회자 목소리와 너무나 똑 같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거리 이름을 여럿이나 따다다다 말하면서 곧장 따라서 하라고 지시하거나 슬슬 놀리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저절로 욕설이 폭발하듯 터지게 만들고는 상금을 보내주는, 헤로인이나 조연 배우나 엑스트라가 한통속으로 바보가 되는 각본(脚本)이었다.
나와 가족이 교대로 전화를 주고받으면서 무난히 잘 견뎌 냈다고 본다.
하지만 두어 번으로 그치지 않고 끊으면 또 걸어오고 끊으면 또 말 시키고 거의 욕설이 튀어나올 지경으로 이끌어 내는 일에의 탁월한 역할을 상대는 참으로 잘도 요리해 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가족에게서 욕설을 끄집어내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는 일이라서 그 사람은 결국 낭패 비슷한 기분을 맛보았을 것만 같다.
맨 나중에 가족이 해낸 협박성 발언으로 하여금 겨우 일단락되었던 일이었다.
계속 귀찮게 굴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경고 정도로 그 불분명한 소란은 그치게 되었다.
시절이 시절인 만큼 스토커로 추측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나는 매사를 그렇게까지 나쁜 상황으로 비약시키는 절망론자는 결단코 못된다.
욕을 할 줄 알았더라면 잔뜩 퍼부어주고 상금을 거머쥘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을려나.
욕을 할 줄 모르는 공간 속에 머무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가족이라서 참 안됐다.
욕을 바라던 이여!!!
분명한 것은 욕을 상금과 바꾸는 일을 우리에게서 노렸다면 안됐지만 실수한 겁니다.
우리 가족은 그럴 경우에만 양반이랍니다.
사람들은 진정성에 근접(近接)하는 문학을 도모(圖謀)한다는 게 얼마나 고달프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내가 한참이나 모자란 걸로 보이는 모양이다.
문학이라는 장르에서 어떤 강렬한 의미를 파악하고 여러 숙고(熟考)를 거친 후 안락과 평온이 보장된 생(生)을 가차 없이 팽개치려면 더할나위없이 힘에 겨운 인성(人性)을 필요로 하는 게 바로 진솔한 문학의 고난이 함께 하는 길이 된다.
결과적으로는 참다운 인격을 위해 자질구레한 선량함을 분산(分散)시킨다고 보면 간결한 설명이 좀 되려나…….
엊그제는 바로 그런 날이었다.
말 그대로 뒷전에서 침묵하며 주위 사람들의 개성 강한 목소리에 오롯이 귀를 기울이게 되던 하루였었다.
나는 때로 져주는 걸로 이기는 사람이 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교통사고로 어깨 쪽에 타박상을 입어본 적이 있다.
원상태로 치유되고 복구 될 때까지 거의 3년이 소요됐었다.
초기에는 두 팔을 넝쿨처럼 늘어뜨린 채, 아끼고 아껴야 할 것처럼 규칙적으로 고르게 내쉬어야 할 숨을 한 숨에 몰아쉬고는 했다.
아무리 의아한 마음을 품어도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전부 알 수 없듯이 아무리 모르는 척 해도 자연히 알게 되는 일도 세상엔 많다.
세상일은 때로 그렇다.
한 사람의 우문(愚問)을 백 명의 현자(賢者)가 집중하고 고심(苦心)해도 답변이 되지 못한다는 격언과 같은 상황을 초래할 경우가 때로 우리에게 닥치기도 하는 것이다.
각본에 의한, 각본의 각본 되어 휩쓸리며 기꺼이 떠내려가 주려던…….
엊그제는 바로 그러한 날이었다.
홀연, 비온 뒤와 다름없이 오늘은 시야(視野)마다 세상이 온통 산뜻하게 다가오고 있다.
사는 일 자체가 신비로운 날이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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