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6일 토요일
머피의 법칙
맹하린
친구 옥윤 씨가 내리 사흘 동안 매일 다녀갔다.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예전에 성당에서 ME교육을 받은 선배들이 이번에 받을 부부들에게 쓴 편지를 보여 주려고.
그리고 달러파동이나 다름없는 이 난국(難局)을 어째야 옳은가의 얘기를 나누기 위해.
소화가 안 되는 병은 신경성이 주범인 듯 싶어 잘 달래 주었다.
편지는 그녀가 써온 짤막함에 약간 보태줬을 뿐인데도 그녀의 얼굴을 금세 활짝 어니 펴지게
만들었던 것도 같다.
가게도 소유했고 공장을 겸한 커다란 주택도 있고, 아들도 장성했고 딸은 미국유학을 마치고 다시 아르헨티나에 돌아와 계속 미술공부에 전념하고 있고.
남편의 술담배야 의사의 경고조치를 노란딱지로 받았으니 막나가지는 않을 텐데 무에 그리 걱정을 벽돌처럼 쌓는 중인가, 히고 새삼 토닥임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만나러 올 때마다 언제나 감탄을 빠뜨리지 않는다.
도대체 걱정이라고는 없는 나를 보면 부럽고 신비스럽다는 얘기다.
걱정…….
뭐든 나를 나한테 맞춰서 사는데 걱정할 일이 뭐라는 말인가.
어떤 일을 만나도 절대 놀라거나 걱정하지 않는 게 바로 나의 유일한 생활철학이다.
나는 사는 게 그냥 좋다.
돈 버는 일에는 낮은 점수를 받지만 혼자서도 심심하지 않게 잘 지내라면 시간이 부족해서 아까울 정도로 싱싱 신나게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리고 나는 언제 어디서나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이 최고라고 쾌재를 불러대는 좀 모자란 인간의 전형(典型)쯤 된다.
어쩌면 나는 픽션(허구)이나 팩트(사실)를 마구 뒤섞으며 살기보다 인생을 무조건 즐기고 감사하게 여기는 스타일 인지도 모른다.
가끔은 기분이 많이 다운될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집에 가서 아무도 모르게 좀 울어야지. 이불을 뒤집어써야지.)
그런데 거짓말을 좀 보태자면 눕긴 누웠는데 이불을 뒤집어쓰기도 전에 잠에 빠지는 나의 잠복이여!
아침이면 기분 근사하게 거뜬해 있는 나의 단순함이여!
그럴 때면 나는 일련의 의문 같은걸 떠올리게 된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나빴던 것일까? 아니면 너무 적게?)
나는 잠들 때와 잠 깰 때, 기분 좋기로 작정한 사람에게 받는 상이 있다기에 오랫동안 그걸 지켜온 사람처럼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낼 것이다.
옥윤 씨가 돌아갈 때, 우리 가게 앞의 버스정거장에서 거의 30분 정도 함께 기다려줬다.
나는 가게의 영업시간에는 꼭 가야할 일이 아니면 어디도 가지 않고 만약 가야 할 경우 주로 레미스나 택시를 이용한다.
시간절약이 차비절약인 것이다.
그렇지만 옥윤 씨는 집에 자가용이 두 대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나 아들을 절대로 성가시게 안하는 상이 있다고 여겨온 사람이 있다면 그 상을 타야할 사람처럼 군다.
평일이니까 버스가 자주 오기는 했는데 현지인 여자와 옥윤 씨가 함께 손을 들어도 웬일인지 그냥 지나가고 있었다.
한 대만 지나간 게 아니라 세 대가 그랬다.
흡사 시간에 쫒기는 버스들만 같았다.
마침내 현지인 여자는 한 정거장 전으로 떠나고 있었고, 옥윤 씨는 한 정거장 다음으로 떠나게 되었다.
두 사람 다 나를 한 번씩 유심히 지켜본 후에 결정한 일이었다.
나만 결정을 안 해도 될 일이었다.
버스 정거장은 어디나 두 블록을 사이에 두고 구간이 정해진다.
그녀들이 반 블록 쯤 나를 사이에 두고 점차적인 간격을 둘 무렵, 드디어 버스가 왔다.
이미 탈 사람은 남아 있지 않은데도 버스는 섰다.
나는 손도 안 들었지 않은가.
순간적으로 나는 양편을 모두 돌아보게 되었다.
현지인 여자는 되돌아서서 내게 어깨를 으쓱 움츠리는 제스처를 보내왔고, 옥윤 씨는 타박타박 뒤도 안보고 걷는 중이었다.
모르긴 해도 버스가 옥윤 씨를 지나칠 즈음에야 비로소 발견하고 아차 그렇게 짧은 탄식을 터뜨리게 될 것이다.
버스를 탄 일이 몇 년도 넘었고 버스를 탈일도 없는 내 앞에서 손도 안 들었는데 우뚝 서준 버스.
언제였을까.
하릴없이 버스를 타고 바깥 풍경을 유심히 바라보며 종점(終點)까지 다녀오던, 내내 상념(想念)
에 젖어 있던 날들을 기억한다.
비가 와서 길에 고인 물웅덩이를 자가용으로 달리며 물길이 좍 옆으로 갈라지는 현상을 환희롭게 즐기던 날들도 추억(追憶)한다.
말 그대로 머피의 법칙(法則)을 실감한 날이다.
피할 수도 피해지지도 않는 상황.
법칙은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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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주말 잘 지내셨나요?
버스 얘기가 나와서 문득 저도 추억이 떠오르는데 예전 이나라 중학교 다닐적에 학교가기 싫은데 돈은 없고, 무작정 버스타고 종점까지 갔다 집으론 돌아가곤 했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님과는 다른 추억이네요.
오늘은 걱정이 하나 생겼습니다. 토요일부터 장문 글을 쓰고 있었는데 저장해두었던 글이 아침보니 다 날라갔네요.ㅎㅎ 다시 글을 쓰잔니 끔찍합니다..ㅎ
좋은 하루 되시길..
주말요?
아~어제와 그제요~
아버지날이라서 묘지 가는 젊은이들이 많아서 약간 바빴습니다.
이 나라의 버스는 제게 많은 상념을 키워 주는 구실을 했어요. 심심하면 버스 타고 싸다녔거든요.
그런 날들이 있었기에 지금은 글을 쓸 수 있게 됐는지도 모르겠어요.
님도 그런 날들이 전혀 해롭지는 않았을 듯~
아마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역할을 해줬을 것 같아요.
정성을 다하셨을 글이 날아 가서 속상하시겠어요. 저도 그런 경험 많거든요.
그럼 좋은 내일 맞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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