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일 금요일
나의 이민 동창들
맹하린
지난 일요일 오후 5시쯤.
D정에 돌 꽃을 납품하고 산책길을 걸어오는데 133번 버스 정거장에 이민동창이자 어르신들이신 범선생 어머니와 J섭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길을 건너 가 서로 포옹하는 인사를 나누었고, 버스가 올 동안 한참이나 얘기를 주고 받았다.
주말에는 버스가 덜 다니는 탓에 거의 반시간은 족히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버스노선은 매우 체계적으로 잘 되어 있으며 차종은 모두 벤츠다.
성당에서 아치에스 행사가 있었기 때문에 1백여 명 정도가 한복차림을 했었다면서 손에는 한복보따리를 각자들 들고 있었다.
대화는 이미 정해진 것처럼 D준 심의 타계(他界)에 집중적으로 쏠리게 되었다.
미국으로 재이민 떠날 무렵, 1백만 달러 이상 챙겨 갔다는 D준 심은 이나라의 D원 심에게 맡기고 떠났던 아베쟈네다 지역의 Felipe Vallese 거리에 있던 공장겸 찰렛(별장식 주택) 역시 절대로 만만찮은 높은 가격으로 얼마 전 처분해 갔었나 보았다.
한국으로 재이주한 부모에게 사드렸던 주택까지도 급매해 거두어들인 지 불과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발생한 일이라고 했다.
두 주택 모두 D준 심의 명의로 되어 있던 상태였다는 얘기다.
부모를 미국으로 모시자는 문제로 한동안 가정불화를 겪다가 부인이 은행에 다녀 오는 사이를 틈타 스스로 떠났다는 설명이었다.
부모는 D준 심이 심장마비로 인하여 세상을 떠난 걸로만 알고 있다고 한다.
J섭 어머니는 두어 번 다짐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 양반들 지금 미국의 딸네 집에 계시다나 봐. 며느리와 손자들한테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 같아."
대여섯의 이민동창 중에서 가장 성공했다고 회자(膾炙)되었던 D준 심네 가정이었다.
네 자녀 중 셋은 아베쟈네다 지역에서 의류도매상을 운영하고 있고, 근교에서 의류소매상을 여럿이나 이끄는 셋째 M준은 BUENEWS라는 교민신문사의 2인자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L씨 가정.
범선생 어머니의 자녀들 역시 빈선생치과와 범선생 치과기공사로 각각 일하고 있고 , 사위는 교민 1호 변호사다.
자녀들 중 큰 아들인 J섭도 BUENEWS의 요직에 있고 큰딸과 막내 역시 아베쟈네다 의류도매상을 경영 중인... J섭의 어머니.
이민 동창들 사이에서 나는 제일 어린사람 취급을 받았었고, 현재 역시 어리다는 인식을 못 버리겠는지 언제 어디서나 만나자마자 나를 아끼고 토닥이느라 여념이 없는 이민동창들.
나는 그 어르신들과 얘기를 나누며 연신 내 긴 머리를 묶는 시늉을 반복했다.
예전에 시우다델라에 살 때의 빈선생 어머니는 우리 자동차로 함께 성당에 다녀 올 때마다 길을 지나는 현지인 아가씨들의 긴 머리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고 강하게 비난하며 툴툴 댔었다.
-아이고, 저 머리 좀 가위로 싹둑 잘라 버린다면 소원이 없겠네.
나는 그날 일부러 두어 번 변명 삼아 묻지도 않는 말을 건넸었다.
" 아직은 염색을 안 해서……. 글 쓸 때는 생각과 연결되는 안테나라서……."
다행인지 가위로 싹둑 자르고 싶은 맘은 이미 오래전에 물 건너갔다는 눈길로 나를 곱게 바라봐 주던 빈선생 어머니, 그리고 J섭의 어머니... 그 어르신들.
아이고, 언제 어디서나 반가워 죽겠는 내 이민동창들.
D원 심에게 다니러 올 확률도 많은지라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D원 심의 부모와도 언젠가 만나리라 예상을 하니 벌써부터 슬퍼진다.
그분들을 슬퍼하자니 내가 온통 슬프게 된다.
우울한 소식을 듣는 일은 참으로 그렇다.
무슨 일이던 신(神)의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쓸쓸한 기분을 안기고는 한다.
멀리서 버스가 오고 있었다.
그 어르신들과 헤어지는 인사로 다시 포옹을 나누고 자꾸만 되돌아 보기도 하면서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산책길로 천천히 접어들었다.
의외로 느리게 걷는 걸음이 꽤나 무겁다고 여기며 가게 근처에 닿았다.
어떤 변화로도 나를 제압할 힘이 부족할 것만 같은 기분이 순식간에 휘몰아 쳤다.
나는 나한테로 기어드는 슬픔에 대항하려고 무장을 하듯 경직된 걸음을 한 채 가게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보이지는 않았으나 가까운 곳에서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 왔다.
언제부터인가 슬픔은 내게 오랜 세월 앓던 지병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아득히 멀어져 있었다.
현대인은 대부분 표준형 상실감을 앓고 지낸다.
모두들 자신에게 주어진 생(生)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보여 지는 생(生)에 깊이 중독되어 있다.
우리의 생(生)이 전혀 다른 접점(接點)에서 영위(營爲)되어서도 안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 보여 지는 삶을 지속하려고만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주 자신을 가두어 둔 자신만의 문을 열고 또 다시 열면서 그렇게 확인해 보아야 한다.
문제는 문제다.
내 주위에 동준 심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그 부인과도 너무나 흡사한 젊음들이 곳곳을 장악하고 있음을 발견함으로 인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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