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30일 토요일
인생 껴안기
맹하린
여행 중이던 A라는 사람이 호텔에 찾아가 방을 얻었다.
호텔의 보이는 열쇠를 내주면서 남아 있는 객실이 모두 예약된 상태라서 이 방을 내 줄 수 밖에 없다며 한 가지 부탁을 신신당부하는 것이었다.
이 객실의 바로 아래 층에 머물고 있는 투숙객은 저명(著名)한 심리학 박사인데 신경이 몹시 예민한 편이니까 손님께서 객실을 사용하시는 도중에 신발을 끄는 소리나 무엇을 떨어뜨리는 소음(騷音)등을 특별히 삼가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럽시다, 그런 일이 뭐 어렵겠습니까?"
선선한 약속을 하고 객실로 들어서자마자 여장을 풀던 그 A라는 사람은 발소리까지 줄이며 조심에 조심을 다했다.
그러나 지나친 조심이었나 보았다.
침대 위에 눕기 위해 신발을 벗다가 그만 실수하여 한 짝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제 풀에 놀란 그 A라는 사람은 다른 신발까지는 안 놓치려고 한층 조심하며 , 침대 아래에 가지런히 놓은 후 비로소 침대에 누웠다.
가까스로 잠이 들었을 때, 도어를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A는 부스스 침대에서 일어나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문을 향해 걸었다.
누구일 것인가를 의아해 하면서 도어를 열고 보니 학자 타입의 노인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 드디어 항의를 하러 왔구나.)
구두 한 짝을 떨어뜨린 일을 기억하고 있던 A는 순간적으로 마음이 움추러드는 기분이 들었고, 가능한 한도(限度)내에서의 겸손한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노인의 항의는 좀 엉뚱하고 별났다.
"당신이 객실 바닥에 떨어뜨린 구두는 한 짝이었습니다. 그 다음 한 짝은 대체 언제 떨어뜨릴 작정입니까?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으니까 계속 신경이 쓰여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요. 이왕 떨어뜨릴 거라면 빨리 떨어뜨리시오. 제발 잠 좀 잡시다, 아시겠소?"
위와 같은 예화(例話)처럼 쓸데 없는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소비하게 되는 주위 사람들을 나는 종종 보아왔다.
걱정이라는 소굴에서 일찍이 해방되어 빠져 나온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나라고 본다면 알맞을 일이 될 것이다.
아무리 가던 길을 헛 짚어 발목이 빠질지라도 빠진 발목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고 망가져 버린 신발은 더군다나 걱정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가 바로 나다.
물질적 사회적으로는 탄탄한데 정신적으로 피폐(疲弊)한 사람을 간혹 봐왔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되도록 쓸데없는 일에까지 내 소중한 정신을 팔고 살아내기를 가장 꺼리는 정서라서 더 그래왔을 것이다.
그처럼 편리한 정신상태를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어서인지 나는 머리가 어디에 닿기만 해도 그대로 잠들어 버린다.
가족이 TV를 통해 밤늦도록 축구시합을 보면서 큰 목소리로 골인을 외쳐댈지라도 나는 바로 옆방에서 둔감하게 잠자는 스타일인 것이다.
더불어 아무리 좋은 영화나 괜찮은 수준의 드라마를 보다가도 나는 곧장 잠들고 말아서 좋은 영화, 잘 만들어진 드라마가 결과적으로는 좋은 자장가와 쾌적한 태평가(太平歌)가 되어 주는 일로까지 전환됨을 저절로 감각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내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잠만 자는 건 아니다.
나의 기상(起床)은 이른 새벽이 된다.
새벽은 내게 있어 잠결에 다가오는 게 아니라 언제나 생각으로 이어지듯 고요하게 다가온다.
종적을 알 수없는 꿈속을 헤매다가 갑자기 눈이 떠지는 상태가 아니라, 잠이 깨어나면 현실의 첫 자락을 붙잡는 동시에 비로소 눈을 뜨고 창밖을 바라보는데, 밖은 그때껏 어둠 속에 잠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른 새벽을 마주하고
나는 우선 세수나 샤워를 하고
기도를 바치고
음악을 들으면서
원탁을 마주하고 글쓰기를 시작하고...
나의 하루는 언제나 그렇게 자연적인 흐름에 실린다.
낮시간에는 빈틈을 이용하여 드라마를 한 두편쯤 보아낸다.
일종의 휴식이다.
유령과 신사의 품격 등을 본다.
복잡다단한 내용보다 산뜻하고 경쾌한 소재를 한층 선호하는 경향이 많다.
소간지(소지섭)가 나오는 드라마는 내용이 재미 없어도 재미 있다.
나는 오락 프로는 못 본다.
유령을 본다고 해도 웃는 사람이 있는데, 개콘이나 짝을 본다면 뒤로 넘어지는 친구라도 생길까봐 은근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나를 잊고 살 때의 나를 사랑하고 아낀다.
인생이란 그렇다.
무엇인가에 부딪치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잊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자주 그러한 인생을 껴안아 주기도 하고 토닥여 주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인생을 지긋이 바라보게도 된다.
현재의 있는 그대로인 나를 아끼고 다만 아끼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인생을 사랑하고 있고 계속 사랑할 것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우리가 인생을 놓치는 방식이 바로 인생이다.
그렇게 때로 인생을 놓쳐 왔지만 이제야말로 인생과 함께 걸어 갈 생각이다.
절대로 시무룩해지거나 비현실적인 기운에 빠지지는 않을 생각 같을 걸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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