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8일 월요일
숟가락
-박영인
다섯 살 아들녀석 밥 먹지 않겠다며
숟가락을 집어 던진다
어느 때보다 심하게 아이를 혼낸다
나는 겯숟가락이었던 적 있다
열네살, 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큰아버지댁 군식구가 되었다
큰아버진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된다 하셨다
큰어머닌 숟가락 하나를 더 놓아야 된다 하셨다
양푼 가득 밥을 비비면 밥과 나물이 잘도 섞었다
네 명의 사촌이 부딪는 숟가락은 리듬을 타며 정겨웠는데
내 숟가락만 엇박자로 치달아 박자를 놓치고 했다
그렇게 어눌한 숟가락질이 부산해도, 너무 느려도
눈치가 보였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숟가락질이었다
대기발령 받은 남편
며철째 말이 없다
숟가락은 쉬 부러지지 않는다
나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숟가락을 주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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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의 숟가락
-손택수
외갓집은 찾아오는 이는 누구나
숟가락부터 우선 쥐여주고 본다
집에 사람이 있을 때도 그렇지만
사람이 없을 때도, 집을 찾아온 이는 누구나
밥부터 먼저 먹이고 봐야 한다는 게
고집 센 외할머니의 신조다
외할머니는 그래서 대문을 잠글 때 아직도 숟가락을 쓰는가
자물쇠 대신 숟가락을 꽂고 마실을 가는가
들은 바는 없지만, 그 지엄하신 신조대로라면
변변찮은 살림살이에도 집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한 그릇의 따순 공기밥이어야 한다
그것도 꾹꾹 눌러 퍼담은 고봉밥이어야 한다
빈털터리가 되어 십년 만에 찾은 외갓집
상보처럼 덮여 있는 양철대문 앞에 서니
시장기부터 먼저 몰려온다 나도
먼길 오시느라 얼마나 출출하겠는가
마실간 주인 대신 집이
쥐여주는 숟가락을 들고 문을 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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