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7일 목요일
지금까지 살아 온 날들 중에서
맹하린
화요일과 수요일 이틀 동안 매우 타이트한 시간 속을 흘러 다녔다.
화요일 정오엔 한국학교의 동화구연대회와 나의 주장 발표의 심사를 맡느라 서너 시간을 우리의 3세들과 함께 호흡했다.
동화구연이 17명이었고 나의 주장이 10명이었다.
바로 이 어린이다! 하는 실력이 안 보이고 대부분 어금지금한 형세였다.
하지만 모두 상을 주고 싶을 정도로 한국말이 뛰어났고 예쁜 모습들이었다.
정성껏 준비해 왔을 참가자들은 시작 무렵엔 또박또박 발표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버릇이라도 되듯이 흐트러지는가 하면 중반부터는 속도 역시 빨라지는 경향이 전반적인 편이었다.
말의 이음 부분을 놓쳐서 말을 찾느라 많은 학생들과 교사들과 심사위원들을 앞, 또는 옆에 하고 당황하는 모습과 쩔쩔매는 순간들을 지켜볼 때마다, 해당교사에게서 원고를 얻어 당장 그 어린이의 손에 쥐어주고 싶을 정도로 안타깝던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절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뎌내는 모습들마다에서 우리 이민자들의 진정성 있는 실루엣 또한 파악해 낼 수 있었던 소중한 장면이었음을 유념하듯 깨닫게 된다.
서반아어와 영어와 한국어의 3개국어를 터득해야 하는 그들의 유년기와 일상(日常)에 주어진 그다지 가벼울 수만은 없는 과제들.
그에 비하면 너무나 씩씩 당당 활발한 자세들이어서 내가 다 어깨가 시원스레 펴지는 기분도 없잖아 있었다.
발표를 평가 해 나가는 시간이었다기보다 어린이들과 함께 어울려 즐겁고 보람된 시간을 보낸 듯 했던 느낌 같은 게 지금껏 잔존해 있다.
오! 벌집에서 꽃밭을 향해 우르르 몰려드는 벌 떼처럼 관중석에서 지칠 줄 모르고 조잘대던 우리의 3세들이여!
6월 9일이 되는 이번 토요일엔 전체 한국교회들이 뽑은 한글학교협의회 소속 학생들과 이번에 한국학교에서 상권에 든 어린이들의 대회가 다시 한국학교에서 치러진다.
해마다 한국학교의 교사를 통해 심사에 대한 부탁이 가장 먼저 내게 왔었지만, 그럴 때마다 언제나 문협회장의 전화번호를 알려 주며 책임을 일임해 왔다.
토요일 대회는 문협회장단에서 잘 진행하리라 믿는다.
어려서 발표의 기회를 갖는다는 건 장래에 많은 도움이 되는 계기를 안기게 된다고 본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에 송사와 답사를 모두 맡았던 경험에 의해 지금의 내 발표력이 적절하면서도 지대한 영향을 받았었다고 나는 자인한다.
그날 저녁엔 궁전 식당에서 문협 월례회까지 있어 기분 좋고 산뜻하게 하루를 마무리 했었다.
수요일엔 민주평통남미서부협의회를 위시한 재아교민사회에 본국에서 방아한 높으신 분의 강의가 있었다.
D식당에서 있게 될 그 행사의 전반적인 꽃 장식을 맡았던 탓에 그 일에 온통 열정을 바쳤다.
틈틈이 찾아 오는 고객들의 주문에도 성의를 다했다고 자긍하게 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지쳐 있을 경우 오로지 휴식과 잠만을 그리워하는 스타일이다.
빨리 집에 돌아가 따뜻한 온돌바닥을 감사해 하고 만족스럽게 여기며 숙면을 취하고 싶었기 때문에 내가 뜻 했던 대로 그러한 행동반경을 즐겨 실행해 왔을 것이다.
(이쯤에서, 내게 그날 하루를 온전히 바친다는 절친이 순간적으로 떠오른다. 스타벅스의 커피를 즐긴다는 친구 역시도...그들과 오래토록 우정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예감한다.)
여타의 그 어떤 문제조차 내겐 아무런 찌꺼기로도 남지 않아 왔다.
하지만 그동안 즐겨왔던 관습들을 과감히 축소할 필요 같은 걸
어제 오늘 심사숙고 헤아리게 된다.
이제 나의 치기 어린 성격도 절제할 생각이다.
할만큼 했고
견딜만큼 견뎠고
질만큼 졌다.
오늘도 저 바깥 세상의 그 모든 활기로 넘쳐나는 아침녘을 향해 새롭고 신선한 기분과 애정을 간직한 채 잘 흐르려고 한다.
아침마다 나 스스로에게 격려하 듯 묻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 온 날들 중 오늘이 가장 기분 좋고 상쾌한 날 같지 않아?)
오늘도 나는 내부에서 샘솟는 긍정과 여유로움을 갖추고 이 새벽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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