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9일 화요일
디지털 시대의 길목에서
맹하린
중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 가려면 새벽 5시 30분쯤에는 일어나야 했다.
입맛이 없어 아침식사를 건성으로 하고, 도시락과 책가방을 챙겨 4Km를 걸어서야 도착할 수 있는 대장 촌이라는 기차역으로 간다.
공순이, 순자, 은자, 경자, 복례, 영님이, 수경이, 사촌 동생 정인과 양인, 그리고 내 동생 미숙.
그렇게 떼 지어 종알종알 얘기하면서 걷다보면 저만큼 앞에 사촌이면서 , 정인과 양인의 친 오빠인 덕준 오빠가 보이고는 했다.
고려대학교를 나와 지금은 모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덕준 오빠는 늘 혼자였다.
등하교 길에 손바닥만 한 종이에 적어 놓은 영어 단어를 설 미친 사람처럼 웅얼거리며 외우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저만큼에는 꺽새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종표 삼촌이 보였다.
장대처럼 커다랗던 종표 삼촌은 외가 쪽으로 친척이었는데, 내 초등학교 동창인 정표를 데리고 다녔다.
나의 가족들은 내가 정표에게도 삼촌이라는 호칭을 사용해야 한다고 여러 번 언질을 줘왔지만, 나는 끝내 정표를 삼촌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굳이 삼촌이라고 부르기를 꺼렸던 것은 허구한 날 다른 동창 애들 이름을 내 이름과 엮으면서 반장이던 김현중과 연애한다, 전기표와 좋아하는 사이다, 그런 식으로 애매하게 놀리고 있어서, 뭐 저런 친척이 다 있나 날이 갈수록 질리는 기분이었다.
정표는 한 번 놀리기 시작하면 기차가 도착해야 제동이 걸리고는 했다.
쥐어 패고 싶었지만 나는 참았다.
삼촌이라는 이유 하나로.
김현중이 나를 좋아 하긴 했었나 보았다.
어느 날 훈육주임이신 체육선생님한테 수업시간에 불려가서 치도곤이 야단을 맞았다.
김현중이 학교로 연애편지를 보내온 거였다.
멍청한 녀석이었다. 나는 편지를 좋아 하지만 몰래 보내는 편지를 좋아 하는지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행동이지 않은가!
연애가 아니라 혼자서 그러는 짝사랑이라는 설명도 못했다.
그 시절엔 그랬다.
지금은 선생한테 혼나면 되레 선생을 때리는 학생도 있다지만, 그 시절엔 내가 편지를 보냈다고 뒤집어 써도 꼼짝없이 당해야 일의 해결이 간단해지는 시절이었다.
그날 훈육선생님한테 들었던 훈계와 치도곤은 다 잊었지만 이 부분만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못 생긴 게 꼬리나 치고. 어린 게 나중에 커서 뭐가 되려고.
맞는 말씀이었다.
그때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으니까.
나중에 성장해서 동국대학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그 대학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친구들과 함께 서 있던 김현중을 10여년 만에 만났다.
나는 못 알아 봤는데 김현중은 나를 알아 보고 아는 체를 해 온 것이다.
(짝사랑 맞구나! 나는 자기가 김현중이라고 말해도 긴가민가인데...)
웃으며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중학교 때 훈육선생님에게 혼 난 생각이 떠오르는 깜냥으로는 쥐어 패주고 싶었지만 이미 잊었었고 지나간 사실일 뿐이었다.
쥐어 팬다...
나는 이 언어를 말로만 써 먹을 뿐, 자식조차 한 번도 야단치거나 때리지 않고 키웠다.
나처럼 뭐든 혼자 다 알아서 해내는 성격이라서다.
나한테는 장점이라고 해야 할지 단점이라고 해야 할지, 그 어떤 하나의 연관성만 있으면 이해하고 용서하는 면이 넘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치 위기(危機)의 껍질을 한 겹 벗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인생을 선택할 때보다 그냥 흐름대로 따르기를 즐겨 해석(解釋)해 왔다.
아침에 출근하는데 거리의 모든 사물(事物)이 소프트 포커스로 눈에 비치고 있었다.
아마 이틀 동안의 미열(微熱) 때문일 것이다.
현실을 직시(直視)할 필요를 걸음마다 깨우치게 되었다.
진눈깨비라도 흩날릴 것 같은 날씨다.
옷을 여러 벌 껴입고 코트와 머플러까지 둘렀는데 바람은 폐부(肺腑) 가득 X선처럼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이 며칠 나는 코즈모폴리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가장 외로운 시간들을 맞고 보냈었다.
아이덴티티가 확고한 몇몇 사람들은 항상 분명한 자기주장을 구축(構築) 하는 면모가 뚜렷하게 보이기도 했다,
나는 바짝 긴장하게 된다.
긴장은 내게 산소이며 사태이며 일련(一連)의 과정이다.
일생의 반 이상을 아날로그에 몸담았다가, 고작 몇 년 전부터 디지털 시대에 발 디딘 이 긴장의 시대.
한층 시대감각을 공유하며 내가 나를 검토할 시점(時點)이라는 사실을 인식(認識)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나는 어떤 면으로는 건방졌었나 보았다.
스트레스에 찌든 세상을 약간이라도 다독여 보겠다고 나섰지만 , 결국은 내가 먼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처할 때가 부지기수였던 것이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정보전환(情報轉換)의 직면(直面)앞에서 잠시 반성하게 된다.
머잖아 나 본연의 나로 환원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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