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6일 일요일

사라(Sara)의 선물



맹하린의 생활 산책


아르헨티나한국일보


1996년 10월 16일


나와 가까운 사이인 사라는 아베쟈네다 지역의 아르헤리치 거리에서 레갈레리아(선물점)를 운영하는 유태인이다.
인정, 심성 모두 고와서 유태인이라는 사실을 못 느낄 때가 많다.
엠빠나다(파이. 만두)나 피자를 만들면 잊지 않고 한 접시씩 챙겨다 주면서 시식(試食)해 보기를 권하는데 요리솜씨 또한 수준급에 이르러 있다.
UBA대학 경영학과 4학년이고 장래 계리사를 꿈꾸는 사라의 큰 아들 마르셀로가 시험 치러 가는 날.
사라는 그 커다란 덩치로 마르셀로를 포옹하면서 샬롬!하고 속삭였는데 푸른 그녀의 눈동자가 초록색으로 보일 정도로 눈물방울이 눈 안 가득 고여 있었다.
유태인 학살 때, 남녀노소 구분되어 가스실에 들어가면서 유태인 어머니들이 자식들에게 잊지 않고 해냈다는 인사 샬롬을…….
사라는 그렇게 심성이 곱고 부지런하며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성격을 소유하고 있다.
사라의 모든 장점(長點)    중에서 특히 괄목(刮目) 할 만 한 점은 다른 사람과 대화 할 때 듣는 것을 잘 들어주고 자기 목소리를 거의 내세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도 모든 좋은 점을 다 갖추고 있는 사라지만, 유태인 대다수가 그렇듯 사라 역시 지독한 구두쇠 쟁이라고 볼 수 있다.
심성이 곱디곱고 감정이 풍부할 대로 풍부한 사라가 돈을 쓸 때는 어떻게 저리도 강인하게 아낄 수가 있다는 얘기인지 내심(內心)  놀라게 되고 , 도대체 저 여인이 그 인정 많고 친절한 사라일까 하는 의아심까지 솟구치면서 고개가 저절로 흔들어질 지경이고는 한다.
굳이 속담을 인용하자면 근면이 사라의 오른 손이라면 절약은 사라의 왼손이다.
사라는 그녀의 남편 루이스보다 세 살이 많은 데도,  남편 대하기를 마치 상전 떠받들듯 높여주며 쩔쩔매는 자세는 기본으로 갖추고  있는 듯이  여겨진다.
하물며 몇 블록 떨어진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는 시어머니 베티에게도 각별한 정성으로 섬기는 현명하면서도 깍듯한 며느리이기까지 하다.

어머니날이 가까워진 며칠 전이었다.
우리 가게로 찾아온 사라는 볼이 발그레 붉어 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열이 받친 표정이 역력해 보였다.
사라는 자기 가게  맞은편인 한국인 도매가게에서 블라우스를 하나 샀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시어머니 베티가 한 사이즈만 더 큰 걸로 원해서 일의 발단이 생긴 거였다.
바꾸러 갔는데 도대체 들은 척도 안하므로,  같은 동족인  내가 좀 나서 달라는 얘기였다.  
패션 ‘비올레타’는 마침 우리와 잘 아는 처지였고,  나보다는 남편끼리 더 친근한 관계에 있었으므로 나는 남편에게 그 일을  부탁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일이라면 언제나 성심성의를 다하는 성격의 소유자인 남편은 두 말도 필요 없다는 듯 사라를 앞장세우며 패션 ‘비올레타’로 갔다.

패션 ‘비올레따’의 아저씨는 일부러 어깃장을 놓느라 한국말, 그것도 충청도 사투리를 느릿느릿구사하면서 길다랗게  투덜대더라는 것이었다.
“하여간에 내가 저 유태인 놈들 꼴 보기 싫어서 결사적으로 안 바꿔줄 작정 같은 걸 했었던겨. 그런데 박형을 봐서 바꿔주는 거 아닌감?  저 옷걸이와 상자 앞에 분명히 오페르타(재고)는 바꿀 수 없다고 써놨는데 어찌 생떼남?  저 여자가 길 건너에서 장사하는 걸 내 모르는 바 아녀. 우리 차를 즈네 가게 앞에 세운다고 저 여자의 남편이 그동안 얼매나 우리 내외에게 텃새를 했는지 모를겨. 만약 차를 세우고 싶으면 자기네 가게 앞을 날마다 청소하라나. 뭐라나!  아주 웃지도 않고 나를 아침마다 놀리더라니까.”
남편은 루이스를 너무나 잘 파악해 왔기 때문에 하하 웃어 대면서 부득이 해명을 아끼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만 참고 진정해, 그래.  루이스는 유태인 맞아. 농담이 생활화된 사람이야. 이형이 자칫 오해했던 모양인데  루이스는 말이지, 농담할 때는 절대 웃지 않는 친구야. 생각해 봐, 코미디언이 웃으면서 코미디 하는 거 봤어?”
남편은 그렇게 다독여주며 사라가 원하는 사이즈로 바꾸고 차액까지 지불하도록 끝까지 돕고 주선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중요한 말은 지금부터라는 듯 남편은 토를 더 달았다.
“사라가 베티에게 선물하려던 블라우스의 가격이 얼마였는지 알아?  자그마치 9페소(9달러 상당)였어.  이 지역 도매상가에 몇 십만 달러의 가게가 세 개나 있고, 띠그레에 별장을 갖고 있으며 뚜꾸만에 농장까지 소유한 사라가 말이야.”

나는 순간적으로 남편이 그들의 별장인 띠그레 지역에 다녀오면서 겪은 일화(逸話)를 저절로 떠올렸고  나도 모르는 사이 풀풀 웃기 시작하고 있었다.
얼마 전, 남편은 사라 내외에게서  그들의 별장에 초대되어 다녀온 적이 있었다.
자가용을 둘 다 가져갈 필요는 없다고 해서 그들의 차로 움직였지만, 루이스는 휘발유 값을 삼등분하여 받았다고 한다.
 루이스와 베티와 남편이라는 삼등분.
내가 안 갔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사등분 될 뻔 했던 비용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소유한 보트를 탔을 때,  보트의 기름 값도  부담하라고 해서 남편은 선선히 다시 3분의 1을 지불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시 삼등분.
내가 안 가길 잘 했지, 내가 갔으면...... ,
남편은 항의도 할 수 없었던 게 그곳에서 구운 아사도(갈비구이)값도 삼등분을 해낸 직후였었기 때문에 어느덧 말문이라는 게 절로 막히고 말았었나 보았다.
속으로만 중얼거리다가 다녀와서야  내게 하소연을 터뜨리던 남편.
“그건 초대가 아니잖아? 당신이 준비해준 한국산 선물까지 일껏 준비해 갔었는데.”
나는 그들 내외와 어울리는 일은 가게 근처에서나 대만족이라면서 매번 적당한 이유를 붙여 합류하지 않아 왔다.

유태인들의 구두쇠 노릇을 한두 번 봐왔던 게 아니었고, 사라나 루이스가 그런 식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일도 한두 해 겪은 게 아니다.
하지만, 사라가 어머니날에 선택한 선물이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닿자, 곰곰 진지한 쪽으로 묵상에 잠기게도 되었다.
더불어 사라를 위시한 유태인들의 생활방식에 대해서 작은 분석까지 펼치게 되었다.
막연하게나마 그들을 유심히 살펴보노라면 사라와 루이스 뿐 아니라 대다수의 유태인들은 매일매일을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태도를 잃지 않으면서도 구약시대와 거의 다름없는 깊은 신앙심으로 하루하루를 신앙적인 사고방식을 가장 중요시하며 근면을 영위하듯 꾸려 나가고 있었다.
박학다문(博學多聞)의 지식을 지닌 대부분의 유태인들에게서는 익살과 유머를 빼면 절약심과 끈질김만 남을 뿐이라는 단정이 생길 정도로 그들은 매사에 웃음 섞인 절약정신을 아끼듯 껴안으며  살아가기를 서슴치 않는다.
사라의 철학에 가까운 습관과 더 이상 무너질 수없이 단단하게 굳혀진 경제적 기틀은 오랜 세월동안 갈 길을 다져온 유태인들의 전통적인 궤적(軌跡)을 발견해낸 듯 한 감상에 젖게도 한다.
분명한 것은 유태인들은 감성도 감성이지만, 이성(理性)이 더 발달했다는 사실이다.
돈은 아무리 많아도 너무 많지는 않다는 속담은 아마 유태인들 때문에 만들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유태인을 친구로 두었으면 그 정도로 되었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면서 지내고 싶은 것이다.
유태인처럼 살라면 나는 도저히  못 살 것이다.
나는  내가   한국인임을 새삼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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