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7일 월요일
머위와 씀바귀
맹하린의 수요칼럼
아르헨티나조선일보
2000년 5월 25일
한국의 야채들이 모두 있는 건 아니지만, 한국에 없는 야채들도 많아서 적당히 상쇄(相殺)하며 살게 된다.
내 나라에서 즐겨 먹던 두릅이나 머위, 여러 가지 산나물들은 눈을 씻고 찾아 다녀도 없는 건 없기 때문에 그 점 참 아쉽다.
채식주의인 우리 가족의 식성에 맞추기 위해 흔하고 값싼 셀러리나 상치 근대 감자 양파들만 계속 식탁에 올릴 수도 없는 일이고, 한국식품점에 가면 깻잎이나 쑥갓, 또는 미나리 등을 손 쉽게 구할 수도 있는데 값이 좀 비싼 편이라 거의 현지인 경영의 마켓을 이용하게 된다.
마켓의 야채부에 들러, 정성스레 진열된 여러 가지 채소들을 바라 볼 때마다 고향의 채마밭에 닿은 것처럼 마음이 푸근해진다.
오이. 당근. 도마도. 가지. 호박. 시금치 등등 종류가 많기도 많지만 싱싱한 가지각색의 채소들은 한국 것에 비하면 대체적으로 크고 투박해서 좀 싱겁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땅이 비옥해서 그렇겠지만, 크고 투박한 채소들은 비료도 농약도 필요하지 않은, 아직은 오염되지 않은 천혜(天惠)의 땅에서 자라서 그런지 야무지고 단단해 뵈지를 않는 것이다.
마켓에서 내가 제일 자주 고르게 되는 채소는 작고 여린 씀바귀다발이다.
서너 단의 씀바귀를 잘 씻어서 사라다로 만들거나, 날김치처럼 여러 가지 양념으로 무치거나 살짝 데쳐서 나물로 내놓기도 하고 상추에 얹어 쌈으로 먹기도 한다.
쌉싸래하면서 야들야들한 씀바귀의 그 특이한 맛은 너무 그럴 듯 해서 자주 먹는 편인데도 전혀 질리는 일이 없다.
씀바귀 다음으로 즐기는 채소는 아치코리아(고들빼기)다.
신선하고 튼튼하게 잘 생긴 고들빼기를 몇 단 사다가 일주일 정도 소금물에 삭혀서 젓갈을 포함한 서너 가지 양념으로 알뜰하게 버무린 뒤 작은 항아리에 꾹꾹 눌러 담아 둔다.
그렇게 익힌 맛이 제대로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꺼내 먹는 톡 쏘는 듯한 진하고도 깊은 맛이란 기막힌 감칠 맛을 지녔기 마련이다.
단정하건대 나라는 사람은 생활도 생활이지만 음식에서조차 쓴맛을 즐겨 선택하는 듯 싶다.
아니면 미리 쓴맛으로 입맛을 단련시킨 후라서 웬만큼 쓰디쓴 세상살이에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는 강심장을 갖추게 되는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고국의 청주에 계신 엄마에게서 머위의 어린 포기를 뿌리 채 얻어왔었다.
우리집 마당 한 쪽에 심어 놓고. 어렸을 때 소꿉장난하면서 우산이라고 쓰고 다니던 머위의 잎을 그립고 소중하게 보아내다가 가을이면 거두어 껍질을 벗겨내고 머위 줄기를 숭숭 썰어 들깨와 멥쌀을 갈아 머위탕을 만들 결심을 했었다.
그런데 이사하는 과정에 그만 분실하고 말았다.
사람은 아플 때면 저를 낳아 기른 어머니 생각으로도 모자라 고향 생각, 그리고 어머니가 늘 해주던 음식을 애타게 그린다고 한다.
내가 그리워 하는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이 바로 머위탕이었던 것.
다시 모국여행을 하는 날이 오면 머위의 씨나 포기를 꼭 얻어 오리라.
외국에 살면서 우리나라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음을 그나마 감사하게 된다.
두어 가지 반찬으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내 식탁이 있어
나는 그것 역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며 사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이지 싶다.
분명한 것은 음식을 만드는 일이 음식을 먹는 일처럼 쉽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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