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8일 화요일

나의 현실(現實)이자 당위성




         맹하린


여자 아기의 돌잔치가 있어 D정의 이층을 향해 계단을 올라 갔다.
분홍 톤의 사방화(四方花)를 납품하기 위해서였다.
가족으로 보이는 몇 분과 D정의 여주인이 유모차에 탄 아기를 어르고 있었다.
일요일이라 손님들이 일찍 도착하는 데다  사진을 찍으려면 오후 4시 반쯤이 적당해서였다.
사방화를 돌떡, 그리고 과일들이 괴어 있는 잔칫상의 가운데에 올려놓고,  아기와 가족들에게 사뿐한 걸음으로 다가갔다.
아기에게 직접 축하의 말을 건네고 싶었었다.
"이 아기가 주인공인가요?"
나는 튼튼한 우량아의 남자아기에게 깍꿍을 하면서, 속으로는 약간 놀라게 된다.
그 전날, 길에서 우연히 만난 D정의 따님이 자신있게 주문했었다.
"여자아이 꽃색갈로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가다듬으며 계단을 매우 천천히 내려왔다.
주인아저씨가 언제나  처럼 그런다.
"이 아줌마가 돈을 다 가져갔네?"
현지인종업원을 시켜 이층에 있는 부인을 불러 오라 지시한다.
내가 4시 이전에 도착되면 나중에 수금하러 또 가야하고,  4시 반쯤이면 직접 수금을 받게 된다.
이 아줌마가,  언제나 돈을 다 가져가서다.

나는 꽃값을 받으며 말하게 된다.
"따님에게서 여자애라고 들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실수했어요. 곧장 다시 해올까 봐요."
"글쎄 말이에요. 나도 내색은 못했지만 깜짝 놀랐어요. 그래도 힘드셔서 어떻게 해요?"
"힘들기는요. 이게 다 우리  일인 걸요."
나는 식당의 여주인보고 다시 이층으로 올라가 있으라고 부탁한다.
자연스럽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내 뜻을 알아듣고 그녀가 먼저, 그리고 나는 약간 나중에  다시 이층으로 올라갔다.
"오늘 돌 꽃이 다른 식당에도 있거든요. 지금 생각났어요. 그 식당과 꽃이 바뀌었어요."
아기의 아빠와 할머니 되는 분이 합창한다.
"글쎄요, 꽃이 여자애 색으로 보였지만 그래도 뭐 지장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기들은 울긋불긋 아무 색이나 좋아할 것 같아서요."
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한 상황으로 바뀌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도  느껴질 정도로  지나치게 활짝 웃으며 말한다.
금세 바꿔 올 거다, 염려를 끼쳐 죄송하다,  연신 변명처럼  그러며 다시 사방화를 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한 계단, 한 계단 내려오면서 나는 교양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안도감  같은 게 들어서  기분이 괜찮았다.
세 불록이고,  일요일이라 레미스를 부르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아  산책길을 선택해서 걸으며  가게에 닿았다.
분홍장미를 모두 뽑고 서둘러 빨강장미로 대체했다.
송이가 큰 수입 장미였다.
세상이치가 그런 것 같다.
항상 먼저 것보다는 좋아야 한다는 것.
나는 다시 산책길을 택하여  걷고 걸어 D정에 갔다.
"빨리도 가져오셨네?"
"아, 예쁘다!"
그때껏 이층에 남아 있던 여주인과 아기의 할머니에게서 산뜻한 칭찬을 들으며 다시 계단을 내려오게 되었다.

엊그제인 5월 5일 토요일에는 S교회의 결혼꽃장식을 맡아 3일 동안 동분서주(東奔西走) 바쁘게 지냈다.
금요일은 새벽에 구입했던 꽃들 모두 냉장고에 물 채워 넣고.
토요일은 꽃장식하고.
일요일은 뒷처리와 청소하고.
원래는 한인여성음악회 행사와 중복되어 맘적으로 몹시 부담이 컸었다.
그런데 그 여성합창단이 교민 언론지와 인터넷 신문에 광고와 기사를 대대적으로 두어 번 미리 내주어 뜻밖에도 나를 도와 준 셈이다.
과다한  설명과, 꽃다발을 사양합니다로 도배했던 맨 처음 광고와는 수준이 달랐다.

“한울림여성합창단의 다섯 번째 정기연주회가 연기됐다. 연주회는 이번 주 토요일(5일)로 예정돼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반주자 건강상의 문제로 두 달 미뤄졌다. 연주회는 7월 14일(토)로 연기됐고,  장소는 신성교회로 기존과 같다.   -꼬르넷 뉴스-

어찌됐던 내게는 다행이라고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걱정을 많이 했었다.
왜냐하면, 광고가 나가도 꽃을 선호하는 사람은 꽃을 꼭 준비해 달라며  떼쓰고  우기고 그러기  때문이다.
“꽃다발을  사양한다는 광고 못 보셨어요?  이렇게 되면 같은 성당에 다니는 J단장에게 면목이 없어지고 내  입장이 많이  난처하거든요.”
그러면 고객은 퉁명스럽게 쏜다.
“내 맘이에요. 무조건  해주세요.”

꽃을 좋아 해서 꽃으로 하는 사람.
꽃이 그나마 인사로 떼우기는 만만한 가격이라서 그러는 사람.
그리고 단체들은 소속단체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더욱  꽃으로 인사하는 경향이 많다.
그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은 뒤는 또 어떤가.
어떤 화가는  꽃을 배달하면 내 앞에서 직접 계단에 감추느라  바쁘다.
꽃 때문에 작품이 빛을 못 보면 안 된다는 매우 타당한 말씀이시다.
그럴 때 나는 그분에게 있는 애교  없는 애교 모두 동원하며 말하기도 한다.
"선생님, 행사에 꽃도 있어야 빛이 나죠?  하하."
그랬더니 입구나 뒷쪽으로 몰아 놓도록 하는  배려가 매우 조금씩  보이기도 한다.
그러저러한고객들의 강한 주관을 만날 때마다 나는 왜 하필 꽃집을 하고 있는가, 그 비슷한  자괴감에 빠질 경우 매우 잦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천 가게의 판매원으로 일하는 K씨를 생각한다.
아침에 출근할 때 장롱에 간과 쓸개를 빼놓고 나선다는 K씨.
미국에 유학 보낸 자식들의 학비를 벌려면 웬만한 타격 쯤이야 모조리  참을 수있다는 K씨를.

하여간에 나중에 나온 광고는 나를 도와도 크게 도운 셈이다.
왜냐하면 결혼식 꽃과  다른 행사가  겹치면 노동의 고달픔도 배가(倍加) 되고,  H음악회와  비슷한 정신적 부담 또한 적잖은 압박감으로 안겨 오기 때문이다.
두 달 후로 미뤄진 음악회.
나는 음악회가 다시 치러질 거라는 광고와 기사를 무덤덤 지켜보게 될 것이다.
맨 처음 나온 광고나 기사와 비슷한 문맥이 될 게 분명하다.

“H여성합창단은 이번 공연에 색다른 의미를 부여했는데, 바로 ‘자선음악회’이다.
지금까지는 발표회 형식의 음악회였다면. 이번에는 자선의 의미를 부여했는데, 자폐아등 정신지체아들을 돌보는 칼로스 재단을 후원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합창단은 연주회를 마친 후 전달되는 꽃다발을 사절하기로 했고, 꽃다발 값을 입구에 마련하는 후원함에 넣어 주기를 바랐다.”
                              -꼬르넷 뉴스-

어제 내가 교민게시판에서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지면서 드디어는 한동안 잠재웠던  내 정체성을 일깨웠음을 얘기하려던 핵심에서 한층  벗어나고 말았다.
엉뚱하게도 생업에서 생기는 앙금만 앞세운 셈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글과의 소통에만 한층 침잠할 것이다.
이게 바로 나의 현실이자 당위성(當爲性)이 되었다.
이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특성(特性)과 풍자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사회에   발 담그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내 커다란 잘못이었다.
이미 지워졌던 나를 다시 만나기 위해 나는 컴퓨터의 시프트 제트를 신중히  누르게 된다.
내게 남은 기억들 모두를 제거해 버리기 위해 컨트롤 엑스를 과감히 누른다.
 
나여!
패잔병(敗殘兵)처럼 지친 맘으로
하물며 글을 붙잡는 나여!
아래의 글을 오늘 여러 번 읽도록!!!



“작가란 글 쓰는 보람과 생활의 부담을 여러 번이나 함께 겪는 데서 즐거움을 찾을 뿐,
다른 것들에게는 동요(動搖)하지 말아야 한다. 성공도 실패도 칭찬도 비난도 물을 바라보듯 그저 무던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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