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4일 월요일
패배 길들이기
맹하린
야유회 장소를 의논하던 지난 달의 문협월례회에서 나는 기다렸다는 듯 제안했었다.
"몇 년 전에 다녀 온 낄메스 지역의 강가에 인접해 있는 Jockey클럽으로 갔으면 해요. 가깝고, 오후 서너 시엔 강물이 썰물 되는 광경도 장관이거든요."
어제 문협회원들과 그곳에 다녀왔다.
그 클럽의 공원 안은 5년 전 보다 더 깨끗해져 있었고, 특히 날씨가 기막히게 화창했다.
지난 번 회장이던 P선생이 툴툴대면서 구워낸 아사도(갈비구이)와 Chorizo(돼지생소시지)와 Morcilla(순대)는 완전 예술이었다.
강이 매우 가까워서 공기가 습하고 숯불이 자연스레 타지 않는다는 불평이 한 몫 해낸 숯불구이였다.
내가 예쁘다며 아끼는 여류들이 마련해 온 김치와 사라다와 피클 역시 특별히 웰빙스러웠고 가장 새콤달콤했다.
나는 그런 장소에서 뒷전에 있어도 될 만큼 맛있게 먹어주면 되는 역할이다.
부탄가스로 커피를 끓이던 S여인이 내게 춥디 추운 표정을 한 채 가스통을 보여주었다.
강가인 데다, 기온이 다습해서인지 가스통의 온몸에 서리빛 모양의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전 회장 P선생이 준비해온 포도주 Lutini도 향이 환상적이었다.
새회장인 L선생이 준비해온 어묵국과 누룽지탕 역시 일품이었다고 여겨진다.
중간에 낱말게임이나 사자성어 같은 게임도 있었지만, 윷놀이 시간에는 P선생과 L선생의 티격태격 때문에 분위기가 사뭇 야단법석 소란스러웠다.
강한 자기 주장을 펼치는 함성과 같은 실갱이가 결코 만만찮게 들려왔다.
그 여러 게임에 참여하지 않고 강을 바라보는 일에만 넋이 빠져 있던 나는 그때껏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되어 내 앞에 앉는 L선생과 마주 보며 약간의 소론(所論)을 펼쳤다.
한때 이혼 했었고. 곧장 재결합 했지만 몇 년도 못 되어 다시 삐걱 이고 있다는 실토를 들은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나는 그를 좀 두둔한다기 보다 위로하고 싶어졌을 것이다.
이미 C선생과 P고문도 합류한다는 표정으로 다가와 앉으며 진지하게 경청했다.
어디 찾아보면 나올 수도 있는 글이 있지만 내 남편의 박고집에 대한 얘기였다.
나는 신혼 초부터 남편의 치약 짜기 버릇을 기필코 한 번 고쳐보고 싶었었다.
허리나 목 부분을 주로 눌러온 그의 반평생을 바르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달래고, 부탁해보고. 싸워도 보고, 삐치기도 했지만 그의 고집은 완고하고 견고한 울타리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어느 날 내게 터득(攄得) 비슷한 게 안겨 왔다.
(그의 고집을 고치려 들지 말고 나를 고치자. 나를 져주자.)
그날 이후 나는 치약을 사용할 때마다 남편이 매번 허리나 목을 눌러 놓은 자국을 내 손으로 그럴 듯하게 고쳐 놓기에 이르렀다.
허밍으로 노래까지 곁들이면서.
"싱깅 트랄랄 랄랄 랄랄 랄랄라 싱깅 트랄랄 랄랄 랄랄 랄랄라 싱깅 트랄랄 랄랄라……."
그처럼 수월하고 간단한 해결책이 따로 없었다.
내가졌지만 내가 이긴 거나 하나도 차이 없는 게임이었다.
얘기를 듣던 P고문께서 박 씨들을 대변(代辯)하듯 정리하며 내 말을 매우 간결하게 도왔다.
"안. 강. 최를 순위로 정하는 고집대회에서 고집이라면 둘째라고 해도 서러울 박 씨 고집이 왜 빠졌는지 아십니까? 그 세 성씨를 모두 합해도 박 씨의 생뚱맞은 고집을 못 꺾기 때문에 빠진 거라고 합니다."
가느다란 철사 울타리를 사이에 둔 강 옆의 시멘트로 만들어진 식탁에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던 우리에게 성큼성큼 다가온 당사자 P선생이 다시 윷놀이 얘기를 꺼냈다.
"이 말이 서울에 도착했고, 저 말도 서울에 합류해서……."
손으로 시멘트 식탁을 두들기며 윷놀이를 되짚기 시작했다.
눈앞의 문우 두 사람이 서로를 방어(防禦)하는 게 아니라 자꾸만 상대방을 긁고 있었다.
나는 L선생에게 뭔가 누르는 시늉을 했고, 치약이라는 메시지를 전송(電送)했을 것이다.
고뇌에 찬 표정으로 L선생은 몇 마디만 건네고 이내 고개를 숙였다.
" 이쪽 모가 서울에 닿으면 저쪽 걸도 서울에 닿게 되고……. "
고집게임 끝이었다.
다시 한 차례의 아사도 잔치가 있었다.
어느 새 화기애애한 가운데 낱말 게임이 시작되었다.
나는 매년 소풍 때마다, 게임에 동참하는 일이 참으로 성가시다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
사실 게임에 대한 흥미를 잃은 지 오래다.
다른 사람이 낑낑대면서 하나의 사행시를 고심할 때, 여럿이나 뽑아지는 내 사행시는 그들이나 나 스스로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가 있을까.
나는 게임에 임했을 때 승부를 즐기는 인간이기 이전에초연한 몫에 충실하고 싶기도 한 것을.
이래저래 져주고 싶은 맘만 지대한 것을.
강물이나 흠뻑 닮아 두자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다시 홀로 강을 앞에 두고 앉게 되었다.
강물은 참 이상했다.
겉으로는 밀려오는 물결을 이루면서 속으로는 밀려가는 것이다.
조금씩 강물이 바다 쪽으로 다가 가고 다가 갔다.
나는 그때 비로소 다시 글을 써낼 수 있는 실마리를 썰물 한 자락에서 건져 내게 되었다.
마침내 마법에 걸린 것처럼 영원히 놓칠 수도 있었던 실마리였다.
강의 초입은 부서졌으나 멀고 깊숙한 곳부터는 살아 있는 무에제(Muelle=잔교)의 모습이 낮고 긴 탑처럼 부상되어 떠올라 있었다.
새들이 떼 지어 매달린 풍경이었다.
시대를 상실(喪失)한 내가 패배를 길들였던 날들 역시 부리를 가슴에 묻고 매달려 있었다.
정말 얼마나 처절하면서도 절실하도록 아름다운 강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가장 옷을 잘 입은 사람으로 어제 내내 자주 문우들의 칭찬과 화제에 오르기도 했고, 포상까지 말이 마무리 되려고도 했지만 당연지사처럼 사양하고 있었다.
인정한다.
나는 날개와 깃을 잘 다듬는 일을 어려서부터 즐겨온 것이다.
그게 바로 패배를 길들이는 자가 해야 할 의무(義務)였을 것이다.
Asado en Mendiolaza (Marcos Lop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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