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9일 화요일
나는 이런 나라에 살고 있다
맹하린
매달 마지막 월요일 7시. H회관.
동문회 모임이 있는 일시와 장소다.
내가 소속된 단체인 문 협이나 부인회나 동문회에 가보면 분위기의 전체적인 흐름이 짧은 순간에 포착된다. 모두들 이민 햇수 25년 이상 되었고, 집이나 가게를 몇 개 소유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통상적으로 살만큼 사는 경지에 너도나도 이르러 있다.
어제 동문회에서는 체육대학을 나온 L선배의 짧으면서도 초점이 강한 시국강연(時局講演)이 있었다.
매우 긍정적이면서도 명쾌함이 가득한 연설이었다.
그분은 평소에도 아르헨티나가 처한 정세(政勢)를 손금 보듯 좌르르 정확하게 파악해 왔던 편이었다.
왜냐하면 정계나 제계나 경찰계통의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도움이 될 만한 현지인들을 여럿이나 포석처럼 심어 두었기 때문이다.
동문 중에서 시민권이나 여권의 해결이 지리멸렬 시일을 끌 경우, L선배에게 부탁하면 하루 이틀이면 해결되는 대단한 능력을 소유한 분이라고 보면 된다.
나야 워낙 직행을 거부하고 가까운 길도 돌아서 가는 성격이라 그런 일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겠지만...... .
L선배의 관점에 의하면 현 정책은 필히 지나쳐야 할 필요충분조건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었다.
세계 어떤 나라를 가도 아르헨티나처럼 살기 좋은 복지국가(福祉國家)는 발견하기 어렵다는 지론(至論)이기도 했다.
“병원 공짜며 학교 공짜지, 보상금 공짜지, 빨갱이 싫어하지, 자유주의도 배제하지, 잘난 체도 못 봐주지”
브라질까지 예로 든다.
“국민의 80퍼센트가 달러를 모르고 사니까 가는 곳마다 물자가 흥청망청 넘치면서 부동산 구입이나 모든 거래가 달러가 아닌 헤알화라서 자유경제체제가 눈에 훤히 보였습니다. 이 나라도 머잖아 그런 세상이 올 것입니다. 특별히 문제가 되고 있는 거지와 도둑은 아르헨티나보다 더 심각하고 훨씬 첨예하다고 보면 될 겁니다.”
L선배의 이론(理論)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 , 그리고 내가 살아 보니까 아르헨티나는 한 시절도 과도기(過渡期) 아닌 때가 없었다.
언제나 과도기였다고 본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없는 사람들과 이웃나라에서 흘러 들어온 사람들까지 잘 사는 나라로 변모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도 되었다.
이동 도매시장 ‘라 살라다’에서 하루 8백여만 달러가 인접국 사람들에 의해 대다수 이웃나라로 빠져나가는 심각한 추세에 도달한 작금(昨今)의 아르헨티나.
다시 L선배의 얘기가 이어진다.
“우리 한국 교민들은 여러 면으로 호구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호구로 알고, 유태인들도 한국 사람을 호구로 알며, 인접국 사람들한테도 한국 사람은 호구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자체적으로 유도(誘導)하면서 살아 가기를 마다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왜 호구입니까? 그만큼 잘 번다는 얘기죠.”
이 부분에서 L선배의 음성이 약간 잦아든다.
“요즘 아베쟈네다의 큰손인 한국인 2세들이 우루과이를 제 집 드나들 듯 드나드는 문제가 꽤 심각한 일이긴 하죠. 간도 커요. 전세비행기를 움직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달러를 밀반출하기 위해 드나들던 그들이 요즘은 카지노에 가기 위해 그런 경로를 이용하는 겁니다. 대단한 젊은이들이죠. 하루저녁 1~2만 달러를 기본으로 날립니다. 물론 따러 가는 건 아닙니다. 잃었던 걸 만회하러 간다고 봐야겠죠.”.
이건 무슨 의미인가.
그들의 행동반경(行動半徑)이 추적될 확률도 있다는 얘기다.
한때 브로커였고 뒷전의 지휘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L선배는 친(親) 아르헨티나인사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서서히 부상(浮上)하는 존재로 떠오르게 된지 꽤 되었다.
L선배는 어느 날인가 교민사회를 뒤흔들 충격적인 프로젝트가 ‘라 살라다’의 앞쪽에 세워지리라고 장담했다.
나는 장담하는 사람의 말을 잘 믿지 않는 성격이다.
하지만 우리 교민들의 전체 경제기반이라고 여겨지는 의류도매상인들이 지닌 입지가 점차 좁혀지고 있다.
그점 간과해서는 안 되리라는 일종의 우려가 서서히 각인하듯 밀려오던 순간이었다.
달러라거나 크리스티나 정국에 관한 논평이 한동안 계속적으로 이어졌지만 나는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갔다.
이 나라에서 벌어들인 재산을 미국이나 한국에 재테크 해 놓고 이 나라가 갈수록 왜 이리 살기가 어려워지는 가고 날이면 날마다 투덜대는 교민들의 용감성과 저돌성에 대해서.
또한 나처럼 연금신청을 가난한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양보한 사람을 또라이 바보취급까지 하는 사회성에 대하여.
어제 정오 무렵, 고객이 내게 물었다.
“주인이 바뀌었어요?”
“아뇨, 제가 저에요.”
그는 내가 달라졌다고 놀랍다는 표정을 했다.
좋은 쪽으로의 놀람이었다.
나는 속으로도 대답했었다.
(당신들이 내가 지나 온 20년이라는 터널을 알아요?)
아르헨티나에 사는 일은 날마다 흥미진진이고 화려만발이고 선후도착이다.
아르헨티나 정계에 몸담고 있는 Partido Liberal Librtario (자유진보당)의 당원들이 어제 아침 기상천외(奇想天外)한 데모를 해서 화제(話題)다.
자유진보당 대표는 "우리가 달러로 저축하는 것을 크리스티나 대통령 자신이 걱정스럽다면 화폐를 그만 찍고 본인들이 소유한 달러를 팔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날마다 이슈화 되고 있는 달러 꼬랄리또(족쇄)현상을 꼬집고 비난하려는 의도라고 본다.
300달러를 판매하겠다는 광고와 함께 1인당 1 달러씩만 팔겠고 정부시세로 베풀겠다고 선심까지 엿보이며 나선 것이다.
광고가 나가자마자 이미 1백 5십 달러가 매도되는 쾌거를 달성했다는 속보 역시 잇따랐다.
나는 이런 나라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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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좋게 보면 한없이 좋은 나라지만, 나쁘게 보면 끝도없이 나쁘게 보여지는 나라입니다.
저도 이곳저곳 여러나라를 많이 다녔지만 무엇보다 국민의식이 많이 뒤쳐지는것 같습니다. 이것들은 페론이즘과 포플리즘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한인2세들의 그런 문제점도 큰 문제가 아닐수 없습니다.
저는 아르헨티나의 좋은 점만 보고 살아 와서인지 지금도 불평보다는 애증을 더 많이 간직한 게 아닌가 그런 느낌만 더 합니다.
그리고 절망보다는 희망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문제라고 하면 아베쟈네다의 거대한 상가의 흐름이 이 시점에서 어떤 변화와 발전을 맞을지 한 편으로는 우려도 되고 긍정적인 가치를 두게도 되는군요.
여러 여건을 제치고 들려 주셨으리라 믿기 때문에 한층 감사하게 됩니다.
더욱 좋은 날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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