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2일 토요일
명마(名馬)를 만든다는 백락(伯樂)
-펌-
말은 발굽의 덕으로 서릿발이든 눈이든 밟을 수 있고 온 몸에 털이 있어 바람과 추위를 막는다. 들판에는 풀이 있고 물이 있으니 뜯고 마시며 마음대로 뛰고 논다. 야생마는 이처럼 살다가 명이 다 되면 죽는다. 이것은 곧 말의 행복이다. 장자는 말의 이러한 행복을 말의 본성으로 본다.
말이 산하에서 마음대로 살았을 때는 명마가 따로 없었다. 말을 잡아다가 사람이 길을 들여 부려먹기 시작하면서 못난 말과 잘난 말이 분별되었다. 물론 이러한 분별은 말이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짓이다. 이러한 분별 탓으로 말을 명마로 만들 수 있다고 자랑하는 인간이 등장하게 된다.
맨처음 이러한 자랑을 판 사람이 백락이다.
본래 백락은 천마를 다스린다는 별의 이름이다. 춘추시대 진나라에 살았던 손양이란 사람이 그에게 백락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백락은 손양의 명성인 셈이다.
산하에서 행복하게 사는 말을 잡아다가 백락은 말의 털을 지지고 깎았다. 말발굽을 깎아내고 인두로 지져댔다. 말의 굴레와 다리를 밧줄로 묶어 놓고 멀직히 구유와 마판을 나란히 차려 놓는다. 백락은 왜 이렇게 묶인 말 앞에다가 구유와 마판을 차려 놓았을까? 묶인 말에게 시키는 대로 한다면 끌어다가 구유의 속의 풀을 먹게 하겠다는 백락의 잔꾀가 그렇게 한 셈이다.
백락에게 걸려들어 묶인 말이 목숨을 부지하려면 백락이 시키고 하자는 대로 하여 멀리 있는 구유 속의 풀을 먹어야 한다. 그러면 백락은 말을 다루는 재주가 뛰어나 말이 잘 길들여졌다고 자랑을 했을 것이고, 속으로 비참한 눈물을 흘리는 말을 몰라본 사람들은 과연 백락이라고 찬사를 보냈을 게다. 재주를 팔아 명성을 얻어내려고 말의 본성을 짓밟아버린 인간의 짓을 무어라 할 것인가? 인위의 재앙인 셈이다. 백락의 재주 탓으로 그에게 걸려든 말들이 재주의 횡포에 시달리다가 죽어갔다. 산하에서 마음대로 살아야 할 말의 본성을 유린해버린 재앙이 아닌가.
말의 본성을 꺾어버린 백락은 마을 길들여 잘 달리는 말로 바꾸는 재주를 부린다. 먹이를 주지 않은 채로 달리게 하고 목이 말라도 물을 주지 않은 채로 달음박질을 시키면서 백락이 하자는 대로 하면 먹이를 주고 물을 주니 붙들린 말은 목숨을 부지하려고 다리고 달려야 한다. 채찍과 말고삐를 쥔 백락은 이렇게 명마를 만들지 않느냐고 의기양양하게 뽐냈을 게다.
그러면 사람들은 과연 백락의 천마라고 환호성을 질렀을 게다. 이 또한 재주를 팔아 명성을 산 인위의 재앙이 아닌가. 이러한 재앙에 걸려든 말은 재갈을 물고 가슴받이를 걸고 엉덩이에 채찍을 맞으면서 숨질이 막혀도 달려야 한다. 그러니 그에게 걸려든 말은 반수 이상 죽어버리게 된다.
천하에서 제일이라고 자랑하는 백락의 재주에 걸려든 말이 끝까지 목숨을 부지하여 명마라든지 준마라든지 천마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을 때, 그 명성이란 것은 말이 원한 것인가 아니면 백락이 노린 것인가? 그 따위 명성은 말에게는 한푼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본성을 빼앗기고 유린당하고 말았으니, 말이지만 이미 말이 아닌 셈이다.
사람을 말처럼 조련하는 백락은 없을까? 역사상 이름을 남긴 군왕들은 거의 백락의 재주를 간직했었다. 백락은 말의 본성을 유린하여 명성을 얻었고 그 재주를 감추질 않았지만, 군왕은 수더분한 사람들의 본성을 유린하여 권좌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 재주를 감추었을 뿐이다.
몽고인들은 징기스칸을 으뜸가는 군왕으로 모신다. 그는 기마병을 거느려 천하를 정복하였다는 명성을 얻었다. 징기스칸의 병사들이 말의 본성을 짓밟았고 징기스칸은 병사의 본성을 짓밟은 재주 탓으로 무수한 말과 병사들이 싸움터에서 피를 흘리고 죽었다. 진나라에 살았던 손양은 말을 잡는 백락이었지만 징기스칸은 사람을 잡는 백락인 셈이 아닌가. 그러므로 백락은 인위의 재앙을 팔아 명성을 사는 재주꾼일 뿐이다.
장자는 이러한 재주를 고발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장자의 고발이 오늘날에는 필요 없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없을 게다. 재주가 비상하다고 자랑하는 난 사람들이 오늘날에는 더 많은 까닭이다.
<출처 :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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