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1일 목요일

영원한 서민...맞다




                  맹하린


아르헨티나는 12월부터 들썩이기 시작하여 3월 초까지 여름휴가철이다.
보통 보름 정도의 여행들을 떠난다.
본국의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민족 대이동을 연상하게 될 정도의, 같은 수준이라고 하기에는 훨씬 길면서도 도시 전체가 텅 빈 느낌 매우 강하다.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여름휴가를 알차게 보내기 위해, 일 년 내내 적금을 붓기도 한다.
기다렸다는 듯,  해마다 이맘 때쯤 되면 달러가격은 지나칠 정도로 급상승의 곡선을 긋는다.
수요와 공급이 적정선을 유지하지 못하는 관계로 과도한 달러병목현상까지 유도한다.
루머에 의하면 몇몇 정치가들이 달러시장을 쥐락펴락 한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피어나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불경기, 달러시세 급등(急騰), 수입규제라는 삼박자의 경제적 변동에도 불구하고 해외로 관광을 떠난 피서인구는 그 어느 해보다 신기록 갱신의 수치를 달성했을 정도로 올해 역시 시작부터 여행이고 즐김이고 휴식이다.
이웃나라 칠레에 몰린 관광객의 40퍼센트가 아르헨티노들이라고 한다.
우루과이나 브라질의 해변 가에 있는 개인별장이나 임대별장을 선호하던 지난해까지의 유행이 향방(向方) )을 뒤바꾼 양상으로 변했다고도 전한다.
결정적인 원인은 적정선 이하의 가격다운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대통령 크리스티나는 관저의 화장실 수리비용에 3백만 달러인지 3백만 페소(1백 50만 달러 상당)인지를 들였다는 소식이 얼마 전 현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하도 인플레이션이 가파른 곡선을 긋고 서민들의 장바구니가 날이 갈수록 부피가 줄어드는 사태가 발생(發生)하자, 꼬보스 전(前)부통령은 화폐개혁이 절실하다는 예견을 강하고 절실한 태도로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현 부통령의 성씨는 부두다. 한글로 글을 끄적이는 내겐 웃음만 나오는 존함이다. 하물며 부두 부통령의 이름은 아마도다. 나는 가끔 아마도 노래를 잘 흥얼거린다. 아마도 별 일은 없겠지. 아마도 화페개혁은 없겠지. 아마도 머잖아 다시 좋아지겠지.)
각설하고,  화폐개혁설은 2012년 내내 몇몇 정치가들이나 경제인들에게서 자주 회자되던 쟁점(爭點)이었다.
현실적으로 정권(政權)의 실세(實勢)도 아닌 정객(政客)의 정치이론인지라, 공신력이라거나 공권력이 제 빛을 잃은 한낱 주장(主張)에 불과하다고 가볍게 치부할 수도 있다.
하여간에 정치가들이란 입에 무쇠조각을 단 것처럼, 평소에는 아무 말이 없다가도 맘만 먹으면 너도 나도 쨍그랑거리면서 요란을 떤다.

작금(昨今)의 아르헨티나 Pampa(대평원)나 Campo(농경지대)들은 소를 사육하는 일보다 쌀이나 콩, 그리고 옥수수와 해바라기들을 재배하는 일이 보다 원활한 수출신장을 보장하는 공헌이라고들 확신을 굳혔는지, 알게 모르게 점차  변화하는 추세다.
아마 몇 년 전부터 그러한 변혁을 실현해 왔던 듯하다.
고기값이 올라서 어쩐지 고기맛이 고급스러워졌다고 감탄했더니,  아마 소보다 작물이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는 실정(實定)이라서 더 그리 된 모양이다.
정부는 앞으로의 주요 경제성장을 콩 수출에 쏟고 기대하는 시대적 추이에 너무나 민감해 있다.

달러파동도 그렇다지만 화폐개혁.
한두 번 겪은 일은 아니다.
일어날 수도 있겠으나 안 일어 날 확률도 많다.
누가 뭐라 해도 그것은 최선(最先)이라는 이름의 최악(最惡)의 카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아침,  암달러시장인 후로리다 거리는 어느 큰 손에 의해 큰 폭으로 좌지우지 됐었다고 메스콤은 전한다.
한 사람이 4백만 달러를 구입해 가는 이변(異變)을 보인 것.
당연지사  암달러상승현상은 큰 파장으로 전환된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중앙은행은 발 빠른  개입을 서두르며,  적정량의 달러를 암달러 시장에 풀어 왔고, 위험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태세에 전폭적으로 임해 왔으나,  어제는 정부시세만  조정하는 선에서 그쳤다는 속보(速報)다.
별일이 아닌 것 같은 별일이다.
달러는 잊게 만들고 페소만 생각나게 해주겠다던 정책이 어찌, 뭐, 왜 이런가.
내 철학은 아르헨티나에서 느긋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달러가 널 뛸 때일수록 달러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주의다.

아르헨티나에서 살아가는 일.
그건 절대로 심심하다는 수준과는 무관한 일이고 어떤 면으로는 흥미진진이다.
그러나 심심하지 않다거나 흥미롭다는 내 표현은 표면적으로 이해한 것에 불과할 뿐, 결국 아르헨티나의 속성(屬性)까지 이해했다는 말은 아니다.

일찍이 괴테가 읊었을 것이다.
'인간들이란 대개 어슷비슷한 거라네.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가기 위해 다 써 버리고, 자유로운 시간이 그저 조금이라도 남아 있게 되면 오히려 마음의 안정을 잃는 데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그 시간을 없애 버리려고 기를 쓰는 성향이 뚜렷하지.'

지나치게 왁자지껄한 분위기일 때면  나 도리어 여행을 삼간다.
더 이상 잃을 게 없어서 흐뭇한 아침이다.
나 같은 사람의 여유만만을 보호하려고  먹고 살 걱정은 마련된 성싶은, 어떤 면으론 완덕을 요구하는 땅...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나대로의 생(生)은 고스란히 제대로 잘 지나가고 있다.
하루하루를 고분고분하게.
나 영원한 서민... 맞다.


-초여름-
오늘은 국경일이다.
어쩌구저쩌구를 표방하는 100주년 기념일이라서 백년 마다 쉬도록 급조한 날이라고 한다.
왜 높은 이들은 백년에 한 번 있는 기념일까지 맘대로 금긋고 난리인가.
나처럼 나이 잊고 사는 사람도 고작 한 번 밖에 못 맞는 매우 소중한 기념일이긴 하다.
일 년에 공휴일이 19번이나 있는 나라.
토요일도 공휴일인 나라.
주중에 국경일이 있을 경우, 금요일이나 월요일로 당기거나 밀고 합쳐서 3일간의 주말연휴를 실컷 즐기게 만드는 나라.
이민자들이나  토요일을  반공일로 거울 삼는  나라.
나와 같은  뭐시깽이한테나 토요일이 가장 바쁜 나라.

저녁 6시 반경에 S여사 댁에서 아사도(숯불갈비)를 먹기로 했다.
하하하, 나 요즘 이러고 산다.
어쩌면 가장 인간답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얼 먹을까.
무얼 입을까.
어떤 친구를 만날까.
.............................................

꼬보스 전 부통령을 기도라고 적었다가 나는 가족에게 엄청 깨졌다.
다른 질타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단지 이 말만 떠오른다.
"무식하고 싶어서 아주 작정을 하셨군."
글을 쓰기 전, 실수하지 않으려고 가족에게 한 번 꼬보스 전 부통령의 정확한 이름을 묻고도 이런 일이 생겼으니 쥐 죽은 듯 가만히 당하고만 있어야 했다.
아마 내게 치매라도 온 게 아닌가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야단을 쳤지 않았나 싶다.
현지인 게시판과 현지인 페북에 매우 그럴 듯한 아이디를 사용하며, 아주 철학적이고 바른 댓글만을 가끔씩 다는 가족이지만, 내 글은 물론이고  교민 게시판에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문우 S여사가 이곳 한국일보에 나온 윗글을 보고 기도가 아니라 꼬보스라고 오늘 전화로 알려 왔기 때문에 들통이 난 일이었다.
나도 한 번 S여사의 실수들을 바리바리 들썩여 봐?

아무리 내가 완벽주의자이긴 해도 가끔은 실수도  한다.
실수도 하기 때문에 완벽을 추구하는 것을...
실수해선 안될 날은, 실수해선 안될  일을  꼭  실수하게 된다.




2013년 1월 29일 화요일

입구는 하나




     맹하린


지난 27일, 브라질 남부 리우그란데 도 술의 주도(州都) 산타마리아의  나이트클럽 '키스'에서  240여명이 사망하고 200명 이상이 중경상을 입는 화제가 발생했다.
브라질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이 사고는 새벽 2시경, 출연진이던 밴드가 불꽃 쇼를 하느라 폭죽을 터뜨리다 무대 위에서 발생된 화재였다.
대다수 클럽에 있던 사람들은 빠른 탈출을 시도 했으나 출구(出口)가 1개였고 닫혀 있었기 때문에 뒤엉키고 서로 짓밟히면서 피해가 확대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나이트클럽 경비원들은 사고를 즉각 알아내지 못 했을 뿐 아니라, 술 값 등의 돈을 내지 않고 나가는 사람이 없도록 탈출구의 문을 철저히 닫아 놨던 데서 인명피해가 컸다고 분석되고 있다.
경비원들은 클럽 안에서 대형사고가 진행 중인 것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팔을 벌려 퇴장을 막기까지 해서 피해는 가속되었다고도 한다,
비록 하나이던 닫힌 문조차 막상 열리지 않아 인부들이 도끼로 벽을 부수고 늑장대피를 도우려하는 동영상.
칠레에서 개최되었던 메르꼬수르와 유럽연합의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지우마 조데프 브라질 대통령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조속히 브라질로 돌아가 4명의 장관을 대동 한 채 직접 사고현장에 도착했다고 한다,
현대의 비극이 따로 없다.
비현실을 외면하는 현실.
의도적이 아닌 것과 같은 우연의 천재지변과 다름 아닌 혼란.
하나면서 두 얼굴인 환락과 소멸.
'춥고 배고픔도 근심이지만, 덥고 배루름이 더 큰 근심이다'는 옛말이 매캐한 연기되어 숨막히는 현상을 고통으로 안기게 했다. 




2013년 1월 26일 토요일

'돌아온 장고(Django)'





      맹하린


검정가죽 소파에 기대 앉아,  나는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 속으로 초저녁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밤으로 도착하기도 전에 도중하차(途中下車)를 했다.
어제 퇴근 후였다.
아예 그만둘 각오를 굳힌 건 아니었고,  다음에 다시 틈을 내어 떠나 볼 의도로 그랬을 것이다.
가게에서 여러 번이나 관람을 시도(試圖)했으나 번번이 포기하고는 했다.
이상하게도 진도(進度)가 지지부진한 여행이었다.
슬픔이라거나 고통까지도 리듬으로만 창출(創出)된 영화였으므로 어딘지 모르게 진지(眞摯)해지지가 않았고 몰입조차 어려워서 더 그랬다고 본다.
그 영화를 보는 장면마다  나의 머리엔 음악적인 물결만 출렁였다.
고통이건 기쁨이건 따지지 않고 뮤지컬배우처럼 리드미컬하게 숨 쉬어 왔던 나의 일상(日常)들을 홀연 되돌아보게도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푸르르 일어나 원탁을 마주하고 노트북의 파워를 넣었다.
집에서는 금기(禁忌)처럼 멀리하던 작업이었다.
일 년도 더 넘게 노트북을 방치해 뒀을 것이다.
양어깨에 두 개의 날개가 솟고 푸르른 등줄기의 뿌듯함과
햇살 투명하게 반짝이거나 무지개로 뜨던 파릇파릇한 감성들이
파도 되어 밀려오고 밀려갔다.

우리 인간은 얼마나 오묘하며  자유자재로이 흐를 때가 잦고 많은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무한정 과거로 거슬러 오르는 몫을 매번 거듭할 수가 있는
특별함을 갖췄다는그 자체라니.
때를 막론(莫論)하는 성격이기는 해도,  나는 중력 달 지구 타원궤도 회전 지구 행성 태양의 둘레 회전증명 등의 언어들이 잇달아 부각되는 뉴턴의 법칙에는 매우 드물게 관심을 기울이는 성향(性向) 매우 짙다.
나는 수학(數學)에는 지독한 문외한이다.
난해한 수학 때문에 한층 문학에 가까워졌을 확률 특히 많다.
세상에나!
지구라는 이 행성엔 내게 방정식처럼 난해한 수학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흔하게 널려 있는가.
하여, 내가 문학이라는  고난의 길목에서  목이 길어지는 건 당연지사(當然之事)가 당면(當面)한 문제처럼 파생 되었을 터…….
그렇지만 세상천지에서 가까이하고 싶은 일만 실행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는 공식(公式)은 자고이래 누누이 입증(立證)되어 왔다.
사람이 실행하기 가장 어려운 일 두 가지를 축소하라면 다른 사람이 나를 훼손하는 발언을 했을 경우 용서하는 마음과, 내가 지닌 것을 약간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자세라고들 일컫는다.
포괄적(包括的)으로 표현하자면 우리 모두 동시대(同時代)에 흘러가는 같은 행성의 테두리 안에서 크고 작게 반짝이는 하나하나의 별 떨기라는 사실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긍정 심은 그 어떤 위대한 이에게서도 질타로 표출되어서는 곤란하다.
사람이 그 누군가에게서 동질성을 감지하는 일은 생의 권태(倦怠)에서 비롯되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누구를 좋아하는 감정 또한 아무도 자신 있게 설명할 수가 없겠고.
그건 단지 운명적 압도(壓倒)라고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인생사 어찌 보면 격언(格言)이 바로미터가 될 경우 흔하게 있어왔다.
"밉게 보면 풀 아닌 것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것이 없다."
내 시야가 풀로 뒤덮이면 보이는 사물 마다 풀이고, 내 시야가 꽃으로 맺히면 눈에 띄는 상황마다 꽃이 핀다.

결국 나는 종반(終盤) 무렵에야 디카프리오가 악당(惡黨)역할로 등장하는 영화 '돌아온 장고'를 밤늦도록 관람하기에 이르렀다.
밤중에 마실 물을 병에 채우기 위해 부엌으로 가다가, 내가 아슬아슬한 경지에 몰입해 있는 거실에 섰던 가족이  한 마디 했었다.
"그거 애들이나 보는 영화인데……."
"옛날에 애들이던 시절에 남친 하고 함께 봤던 영화야.  무섭다는 핑계로 남친이 내손을 잡았던 것도 같고, 나도 좀 그렇다!  내쪽에서 무섭다고 내숭을 떨었어야 하는 거 아니었나?   하하.  새로우면서 흥미진진이야. 이 영화..."
사실 나는 아직도  스릴과 액션에 적응되고 당긴다는 자세를 고수(固守)하고 있다.
가난이나 절망, 혹은 극한 상황 등이 돌출하는 '레미제라블'이 내겐 영원한 부적절함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쉬엄쉬엄 접근하게 되는 분야인가 보다.
나는 계속 뮤지컬로 숨 쉬며 살아낼 것이다.
처음이다.
학창시절에 단체로 보았으며, 감명이  넘치던 영화를  이리도 띄엄띄엄 행군하는 '레미제라블'이라는 저 여행은…….

이 기호 소설가의 칼럼 '너무 많은 공감' 후반부가 강하게 어필된다.
아이들 때문에 '레미제라블'을 먼저 보고 온 그분의 아내가 전하는 말.
"그나저나 저 영화 왜 다 뮤지컬로 만들었는지 알아? 누가 그러더라. 가난한 것들. 이런 식으로라도 뮤지컬 봐라."






2013년 1월 20일 일요일

송태일~~~축하!

취임식 행사 맡은 연하나로기획은…아시안게임·올림픽·월드컵 행사 `연출`


연세대 응원단장 출신 송태일 대표 1985년 창업
朴 "中企가 맡으면 안되나"

김진선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이 20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취임식 준비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내달 25일 대통령 취임식 행사기획을 맡게 될 ‘연하나로기획’은 중소 행사기획 전문업체다. 연하나로기획은 연세대 응원단장 출신인 송태일 대표(55·사진)가 1985년 자본금 9억원으로 창업한 이벤트 전문 기업이다. 전체 직원은 70여명 정도다. 2011년 매출 240억원에 순이익 3억원을 거뒀다. 2011년까지 8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식전 문화행사 및 공식행사 연출을 시작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 식전 행사를 연출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행사에도 참여하는 등 굵직한 행사 기획을 맡았다. 김진선 취임준비위원장이 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와도 각별한 인연이 있다. 2003년, 2007년 제일기획과 함께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프레젠테이션 기획에 참여해 실력을 인정 받았다.

지금까지 세계 50여개국 100여개 도시에서 진행된 1500여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2006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가진 삼성모 바일 울트라폰 프레스콘퍼런스를 비롯해 2004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진행된 대한민국 세계일류상품로드쇼, 2003년과 2006년 칠레 산티아고와 핀란드 헬싱키에서 각각 진행된 한국상품전 등이 대표적이다.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 한국관광공사, 두산그룹, 금호타이어, SK텔레콤, KOTRA, 서울시 등과 주로 거래하고 있다.

취임식 행사 기획을 중소업체가 맡은 것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의중이 담겼다. 박 당선인이 취임준비위에 “취임식은 중소기획사가 맡아 하면 안 되느냐”고 제안했고, 취임준비위가 이를 받아들여 대기업 계열 기획사와 중견기획사를 배제한 채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8 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부터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까지 대기업 계열 기획사가 기획·연출을 맡아 진행했지만, 이번에는 최종 프레젠테이션에도 참가하지 못한 것이다. 취임준비위는 무대장치와 장식물 준비를 비롯한 세부적인 실무 작업도 중소기획사에 맡길 계획이다.

최만수/이현진 기자 bebop@hankyung.com

행복하고 기쁨 가득하기를…


         맹하린


우리 가게에서 세 블록 떨어진 C마켓에 어제 오후 산보(散步) 삼아 다녀왔다.
생선코너에 진열된 오징어가 꼴뚜기보다는 크면서 야들야들 싱싱해 보여 그걸 구입하여 오징어덮밥을 마련했다.
매콤하게 양념하여 프라이팬에 재빨리 볶았고, 깻잎과 풋고추와 파 마늘을 듬뿍 얹어 다시 한 번 볶아냈다.
꽤 그럴싸한 맛이었다.
나는 매일 장을 보기 때문에 그날그날 꼭 필요한 것만 사는 성격이라  같은 음식이 다음날까지는 안 간다.
밑반찬 위주에서 해방 된지 오래되었고, 두세 가지 이상은 준비하지 않는 주의다.
그런 이유로 우리 집 냉장고는 사시사철 텅텅 비어 있는 편이기도 하다.

명태와 무를 넣은 찌개는 다음 날을 위해 미리 끓이고 있었다.
퇴근시간이 가까운 무렵이라 맘 놓고 준비했다고 본다.
이상하게도 한국적인 음식을 만들 때면 현지인 고객이 닥치거나 소중한 손님이 찾아와 결국 맘속에서 민망함이 설익을 것처럼 뚜껑이 열린 채 들끓게 된다.

처음 보는 젊은 커플이었다.
다음날 생신을 맞는 어머니를 위해 주문을 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신비가 엿보일 정도로 말수가 적었고 지나치리만큼 정중했다.
메시지는 가뭄에 콩 나듯 주고받고 서로의 글에 댓글이나 달던, 내겐 은둔의 문우인 아르헨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휩싸이던 순간들이 존재했다.
갈 때 매우 짧게 인사를 나누며 듣고 보니 지인(知人)의 자제였다.
바로 이틀 전, 장갑 사달라고 울던 그 아드님의 유년시절에 대한 얘기를 접했던 터라서 나는 퐁퐁 샘솟던 웃음다발이 생선찌개 때문에 창피한 상태의 내 마음을 연신 식혀 주고 있음을 감지했다.

너무도 잘 어울리던 두 사람이었다.
그들이 너무 아름답고 눈부셨던지라 장미 50송이쯤 채우기로 했던 꽃바구니를 지인(知人)의 나이수로 알고 있는 77송이로 장식했다.
두 사람에 대한 축복 역시 잊지 않고 기원했다.
행복하고 기쁨 가득하기를…….

평소에 아끼던 시집(詩集)을 읽느라 그날밤 잠을 설쳤다,
나처럼 감정이입(感情移入)에 멈칫대거나 넋을 드러내는 수식어가 아니라, 빈틈없고 짜임새 있고 서정(抒情)이 살아 있는 시어(詩語)들의 정원(庭園)이었다.
모처럼 불면을 겪었으나, 새벽길을 걷는 산책로 전체에 감성이 찰랑이고 있었다.

오늘 불현듯 스스로에게 감격이다.
나는 때로 길을 잃고 살아온 것이다.
짧은 시간의 숙고(熟考)도 거치지 않고, 나이나 취향에 상관없이 오직 느낌으로만 타인의 인격을 두둔하고 아끼려드는 내 단순명료한 성품.
예술을 신뢰하는 마음.
그게 없었더라면 나는 인생을 망쳤을까.
내가 원하는 일을 한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일의 조건마다 아낌을 고수(固守)하며 산다는 것.
그게 그리도 못난 일일까.
결국 내가 지향하는 참된 진리의 길은 자유가 아니려는지…….
나는 어쩌면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 모호함과 불가사의(不可思議)를 선망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진정한 글쟁이 맞다.
그 작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서 오늘이  특별하고  사는 일 한층 감사하다.
고맙고 고맙다는 마음 새록새록이다.
내 친애하는 그대들에 대해서도.



2013년 1월 16일 수요일

삼계 유일심(三界 唯一心)



           맹하린


해마다 연말이면 인터넷을 검색하여 '토정비결'을 본다.
지난 해 연말은 이래저래 바쁜 일이 겹쳤었기 때문에 2013년 연초인 일주일 전에야 '토정비결'과 조우할 수 있었다.
일년 가득 좋은 일이 많다고 나와 있다.
2월에는 아름다운 이를 만나는 인연을 맺는다고 하여 하하하 포복절도(抱腹絶倒)가 터졌다.

불교에서 말하기를 부부인연은 "하늘 높은 곳에서 바늘을 쏘아 땅의 겨자씨를 맞추는 것이라고 했던가.
내가 남편에게 잘 한 거라고는 어떤 악전고투 속에서도 이혼하지 않은 것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환득환실(患得患失).
무엇을 얻기 전에는 어떤 수단을 부려서든 그것을 확보하려고 노심초사하고, 일단 획득하면 그때부터는 그걸 잃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걱정한다는 의미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답게 살아내는 근본 개념은 크게 어려운 일은 이닐 것 같다.
크고 작은 일마다 슬기와 지혜를 병행하면 그나마 인간다운 도리에 닿는 게 아닐까.
소박하게 사는 것.
그게 내가 가장 잘 사는 바로 내 스타일이다.

나의 뇌 속에는 팻말이 하나 걸려 있다.
필리핀 칼멜 수녀원의 벽에 걸려 있는 팻말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축소한 것.
1. 그 사람이 너에게 한 서운한 일을 용서하면 네가 그 서운함을 잊게 되고 , 그 섭섭했던 일을 잊게 되면 너는 드디어 치유를 맞는다.
2. 사람의 위대함을 깨닫기 위해선 그 사람이 너에게 어떤 마음을 남겼는지를 보면 된다.

인생사 어차피 삼계 유일심(三界 唯一心)이다.
세상만사가 오직 마음 하나에 달려 있다는 불경(佛經)의 계시가 아니더라도 뭐든 편하게 여기면서 더욱 자유롭고 수월하게 흐를 생각이다.




2013년 1월 15일 화요일

휴식과의 소통



        맹하린


지난해엔 지독히도 극심한 불경기를 겪었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겸허를 표출했지만 나로선 다른 해보다는 더 바쁘게 일했던 것 같다.
인플레 문제, 그리고 환율급등으로 위정자들에 대한 불신(不信)과 잦은 어리둥절 상태는 그다지 낯설지만은 않던 사안이었지만, 애면글면 분주함 속에서 지냈다는 사실만으로 명쾌히 접어 두게도 된다.

여름태생이어선지 나는 여름에 주로 글을 쓴다.
하물며 아르헨티나는 12월 초부터 3월 초순까지 무려 3개월이나 휴가시즌이다.
1년에 걸쳐 19번인가 있다는 공휴일은 차치하고,  대부분 보름이나 한 달 남짓 지방 도시와 국외로의 여행들을 연례행사 삼아 다녀온다.
도시는 서부영화에 나올 법한 장면처럼 텅 비고, 거리마다 자동차도 드물고 고객들 또한 뜸한 상태다.
한적한 시간을 여행이라는 고생과 맞바꾸는 일이 내겐 어느 날부터 더 이상 내키지 않는 삶의 행간처럼 접혀져 있다.
음악 속에서 글 쓰고 책이나 읽으며 소일하는 게 가장 신명이 날뿐이다.
책을 읽는 도중엔 습관적으로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사다 먹고 그런다.
나는 붕어나 멜론으로 된 한국산 아이스크림보다 아르헨티나산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훨씬 맛있어 하는 취향이 있다.
값도 저렴하고 산뜻한 맛이라서 더 그럴 테지만, 어찌하여 한국 아이스크림은 약간의 눈물이 글썽여지는 고향 맛이기에 부득불 간혹 가다 구입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어제 역시 알멘드라(아몬드) 맛의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편의점에 갔다.
마침 편의점 강여인을 포함한 지인 넷이서 각자의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서는,  각각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희희낙락이 대체적이었다.
Y엄마는 카톡, N여인은 가요동영상을 보며 어깨춤. K여인은 기념사진 들여다보기, 강여인은 거베라꽃 두 송이가 크게  부각된 바탕화면의 아래 켠을 손가락 끝으로 밀면서 내게 시 하나 좋은 거 건졌다고 자랑처럼  보여주고 그랬다.
하하하. 그렇게 화통한 웃음을 잘 터뜨리는 나지만 그곳을 나올 때는 깔깔 대며 웃지 않을 도리라고는 없었다.
넓은 정원을 소유한 저택에 살면서들 왜 날이면 날마다 좁디좁은 편의점에 약속처럼 들이닥쳐 양푼 하나에 공동합자(公同合資)로 밥 비벼 먹고, 호박잎쌈 나눠 먹고 그러는 것일까.
하필이면 한 깔끔하는 내게까지 이 여인 저 엄마가 한 쌈씩 큼직하게 손수 나의 입안에 쌈밥을 넣어 주고 그러는 것일까.

가게로 돌아오는 길의 앞쪽에서 걸어오는 젊은 현지인 커플조차 서로 카톡하며 위태로이 아슬아슬 걸어오는데, 생글생글이 너무도 잘 어울려 보여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나는 또 웃고웃었다.
이번엔 쿡쿡쿡!!!

그 누가 설파했을까.
최상급(最上級) 쾌적함과 탁월함이 최선(最善)과 같이 아우러진 환경일지라도 마음이 함께 섞이지 못하면 지옥과 다름 아니며, 퇴보(退步)와 척박함이 뒤얽히듯 조성된 환경이라도 마음이 닿고 마음을 열고 마음을 쏟게 되면 그곳이 곧 천국이라고…….

햇살이 자글자글 퍼지는 도시.
너도나도 떠난 도시의 한 가운데에서 나는 올해도 틈틈이 산책하며 텅텅 비어 있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파수꾼처럼 열심히 지켜내며 재밌게 잘 지내고 있다.
예전엔  여행과 휴가를 제때에 누렸을지라도,  지금은 단지 집과 가게를 오갈 수 있다는 현실 그 본체(本體)를 가장 감사하게 되는 날들이다.

날마다 변화 추구하며 시골풍이면서 소박하게 차리게 되는 집밥을 매일 먹을 수 있어서.
내 소유의 연필이 작대기 발로 노트라는 빙판위에서 스케이트 타기를 즐겨 실행해서.
그 누구와도 나를 견주지 않아서.
거의 모두 떠났지만 나까지 떠나지 않을 수 있어서.
하물며 절대고독이 필수인 장르의 글쟁이 노릇에 치열하게 세뇌되어.
멀리 여행을 떠나온 처지도 아닌데 슬프거나 고즈넉해져서.
참 대책 없다.
내 영혼의 침잠(沈潛).
작렬(炸裂)하는 태양빛의 열정이 묻어 있는 내 빗장뼈의 시리거나 아린 통증(痛症).

그네에 흔들리듯 지금은 휴식과 소통하는 시간이다.




2013년 1월 13일 일요일

장자(莊子)를 펼치며





    맹하린


우리 집의  뒷집에는 볼리비아인 들이 살고 있다.
제품공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명색(名色)이 한인 타운이고, 한국교민들에게  제2의 고향이라는 감동을 안기던 이 지역이 점차 인접국 사람들과 연변 교포들의 소유지로 변천되고 있는 실정에 이르른 건 벌써 몇해쯤  되었다.
몇 달 전부터 우리 집의 벽과 천정에 물이 스며들어 마룻바닥이 아니라 나무천정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거나 벽면으로 줄줄 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몇 번이고 찾아가서 매우 좋은 말, 가장 상냥한 언어로 항의하면, 높낮이가 다른 그들 특유의 억양으로 비가 많이 와서 그럴 거라는 핑계만 주절주절  성긴 빗방울 뿌려 대듯 튕겨 버린다.
가장 경악할 만한 대응(對應)이라니...
자기들 집은 멀쩡한데 웬 트집이냐고 되레 통박을 보내온다는 사실이다.
문제가 되는 우리 집과 맞붙은 그 집의 이층 화장실 바닥은 세탁기의 물 버리는 호스가 바닥에 노출되어 있었다.
주범이라고 볼 수 있는 세탁기의 사용을 당분간 멈춰 달라고 부탁했던 일주일 동안 물방울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엄청난 폭우가 퍼부었던 날들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도 않아 다시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더욱 기가  막힌 건 그들은 우리의 당부(當付)를 전혀 지킬 생각조차  안하고 새삼스러이 뜬금없는  트집까지 앞세웠다.
당면한 숙제를 떠안은 당사자들은 바로 우리니까 우리 집에서 벽이나 천정을 깨부수어 고쳐 내야 한다고 고집하며 우기는 것이다.
그리고 화장실을 다시 보여 달라고 하면 한참이나 기다리게 만들고 가까스로 보여준다.
분명 임시조치를 취한 자욱이 넘친다.
억양의 높낮이가 다른 그들과 승산  없는 싸움을 벌일 수도 없고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와 가족은 평소에 가족끼리는 물론이고 그 누구와도 논쟁이라거나 언성(言聲)을 높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안다.
그들에게 친해지자고 유화작전을 시도할 확률이 많은 나를.
세상 살아가는 근본적인 설득의 원리는 논리(論理)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에 근거를 두어서다.
새벽이나 퇴근 후.
천정과 벽에서 떨어지거나 흐르는 물방울을 바라보며 마음만은 언제라도 편하려고만 하는 주의(主義)인 내 마음이 그다지 평화롭지만은 않다.

크게 걱정이 앞선다.
우리의 2세나 3세들이 교양이라고는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보이고,  억지 내세우기를 가장 첫째가는 근본으로 일삼는 인접국 도우미들의 손에 의해 자라면서,  우유를 먹고 기저귀를 갈아 채며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유아기(幼兒期)를 겪어내고 있음에 관해서다.
내가 알고 있는 한국아기 비올레타(보라)는 인접국 도우미에게 크면서, 몸의 군데군데가 멍이 들고 잠만 자는 게 너무  이상하여 도우미를 당장 내쫒았다는 하소연을 그 엄마에게서 들었다.
울어야 할 때마다 무섭게 울음을 삼키는 증상을 치유하는 데는 많은 시일이 걸렸다고 알고 있다.
자꾸만 안아 주라고, 머리도 자주 쓰다듬어 주고, 뽀뽀 역시 많이 해줘야 한다고 …….나는 그 엄마에게  다독이듯 그랬을 것이다,
우리 집 천정은 둘째 사항의 문제라고 여긴다.
우리의 2세나 3세들이 한층 부모와 많은 시간을 공유하기를 바라게 된다.
새삼 아르헨티나가 걱정 된다
나라에 경제파동이 닥칠 때마다 석학(碩學)들과 자산(資産)이 속속 외국으로 빠져 나가고, 이론이 통하지 않는 인접국의 억지사촌들만 꾸역꾸역 밀려와 중얼중얼 높낮이 없이 대책 없는 주장만을 앞세우는 세상이 도래해 있다.
그 여파(餘波)는 점점  도를 넘고 있고, 당면한 현실이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다.
결국 나는 난감(難堪)한 일을 겪을 때마다 접하는 장자(莊子)를 음미하듯 펼친다.

'송나라상인 이야기'
송나라 사람이 '장보'라는 모자를 밑천 삼아 월나라로 장사를 갔다.
그런데 월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짧게 깎고 문신을 하고 있어서 그런 모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소유요-

작금(昨今)의 나는 송나라 사람이 되어 있다.
야만 상태에 있었으나 중국역사에 동참했던 신흥국가 월나라 사람들을 보듯 인접국 사람들에게서 동질과 타협이라는 격차(隔差)를 직접적으로 실감하는 장터에 발길을 내딛고 있다.
내가 모색해 왔던 종족(種族)간의 이해와 협력이 결코 와해될 수는 없겠으나, 나는 이민자들 틈바구니와 간격에서 오는 신뢰감이 소멸되는 아찔한 현기증을 매우 강하게 체험하는 중이다.
말 그대로 종족과 정서와 문화에 대한 커다란 낯설음이다.
인접국 사람들 다루기.
어떤 면으로는 전쟁의 도화선(導火線)이 될 돌발적 사태로 진전될 가능성이 구석구석 흔하게 엿보인다.
세상사 언제는 묘수 같아도, 어떤 땐 악재가 될 소지가 많았던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언제라도 협상이라는 카드는 남아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지난 연말.
나는 빤둘세(견과류를 넣은 축구공보다는 작은 빵인데 연말에 주고 받는 선물용.) 하나와 시드라(샴페인) 한 병까지 사들고 뒷집을 방문했다.
갈 때는 살살 달래듯 말할 계획이었다.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더라도 되도록이면 마지막 카드를 커낼 계획은 삼가기로 작정을 굳혔었다.
그런데 여전히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그들을 대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맘이 변하고 있음을 실감하고 말았다.
한 가지 조건으로는 미약하다 싶어 전면전을 시도(試圖)한 셈이고, 별다른 돌파구는 없으리라는 단정(斷定)이어서 거의 자신감 넘치게 내 적절한 표현을 전달했다.
나는 결단코 웃으며 말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그 이후로 웃음도 두려울 때가 있다는 인상을 보일까봐 나는 최대한으로 진솔한 표정을 갖춘 채  말했었다.
"더 이상 이 일로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 않아요.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내가 곰곰 생각해낸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당신들 편에서 선택하는 거예요.  우리와 공동부담으로 고쳐 보도록 해요. 그것도 귀찮으면 간단해요. 며칠 안으로  Carta Documento(내용 증명서)를 받으시게 되겠죠?"
분명하고 확실한  사실은 그들에겐  표정조차 이렇다 할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내용증명서가 두려웠던 것일까.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도 말이다.
아니면 공동부담을 부담하기가  부담스러웠으려나.
그도 저도 아니면 Pan Dulce와 샴페인의 역할이 돈독했을지도 모른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협상 끝?
새해 첫날부터 물방울도 물줄기도 단숨에 행방을 감췄다.





2013년 1월 10일 목요일

우리 집 사전(辭典)



          맹하린


“아드님 있어요?”
이웃 가게에서 수입상품을 취급하는 S사장이다.
“정오쯤에 오는데 무슨 일이세요?”
“건너 편 공장 앞의 거지들 때문에 그럽니다. 저 공장 주인한테 전화해서 쟤들 좀 어떻게 해결하라고 그러세요. 도대체 쟤들 때문에 수준 떨어져서 어디 장사를 해먹겠습니까?”
이렇다 저렇다 토 달지 않고 나는 그렇게 전하겠다고만 대답한다.
가족한테 전화해서 나는 자세한 설명을 삼간다.
올래? 그렇게 짧게 말해도 곧장 나오기 때문이다.
주문이 여러 개 밀려 있게 되면, 나도 모르게 암묵적인 표현을 간단히 해낸다.
“왈래?”
올래를 왈래라고 말할 정도로 느닷없이 바빠 있다는 표시다.
5분이나 10분이면 도착하는 가족이 40분 후에나 도착했다.
욕실의 수도꼭지가 말썽을 일으켜 그걸 혼자서 뜯고 원상복귀 시키느라 늦었다는 얘기다.

생긴 건 곱상한데 뚜렷한 주관쟁이에다 끈기가 한 몫 한다.
뭐든 솔선수범 고치기를 즐겨 실행해 왔다.
어려서부터 멀쩡한 건 하나 같이 망가뜨려 놓고  고장 난 건 기어이 고쳐내는 반전의 연속이었는데, 나로선  전부 다 눈 감아 주고 기다리고 참아 줘 왔었다고 본다.
기술이란 게 실패하면서 익히기 마련 이라 서다.
어쩌면 나는 전생에 유태인이었는지도 모른다.
남보다 ‘뛰어나게’키운 게 아니라 남과 ‘다르게’키우는 걸 최우선으로 삼았지 싶다.

나는 점심식탁을 차려 주며 노숙자문제를 설명한다.
“그래서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분의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 뭘. 왜 하필 우리가 나서겠니?”
S사장은 최신형 아우디를 몰고 다니는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있다.
나는 짧고 핵심적인 결정을 순간적으로 표출한다.
“개입하지 말자.”
신문의 사설에서 누누이 읽어왔다.
노숙자 보호시설에 들어가면 끼니는 물론이고 날마다 샤워를 할 수 있고 단체생활을 영위한다는 잇점도 있으며 전문의 역시 상주한다는 사실을.
나는 글에서나 나댈 뿐 웬만한 일에는 못 본 척, 모르는 척, 모자란 척 하는 주의에 철저하다.
그렇게나 제대로 차려 놓은 복지시설을 마다하고 붙잡혀 가는 족족 뛰쳐 나오는 그들.
흡사 닭장 같은 나무상자를 켜켜로 쌓아 놓고,  너댓의 청년들이 노숙을 고수하고 있다.
저들에게도 자유를 누릴 특권은 분명 주어졌을 것이다.
한인 타운에 오고가는 한국인들에게서 떨어지는 콩고물 맛이 날이 갈수록 고소한 치즈 맛인지도 모른다. 쾌쾌한 냄새와 고소한 맛을 골고루 지녔으며 영양도 풍부한…….

며칠 전,  S사장과 노숙자들이 서로 갈궈 대는 소란을 우연히 목격했었다.
S사장의 고객들이 구매 후에 집으로 돌아가다가 노숙자들에게 적선하려던 찰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S사장 쪽에서 못 주게 가로막은 데서 생긴 충돌이었다.

나는 우리 가게 앞을 지나가던 S사장을 반대로 지나가던 중, 지나가는 말을 지나가게 전하고 있었다.
“쟤들에게 앙심을 품게 만들지는 마세요. 해코지라도 당하고 싶으신 거예요?”
“박해를 당해야 저곳을 포기하고 떠날 것 같아서 그럽니다.”
“쟤들이 무슨 예수그리스도인가요? 저 공장의 관리인들과 경찰들조차 건드리지 않으려는 문제아 그룹입니다. 무늬만 노숙자들이라는 거 아시죠?”
난감한 표정을 못 벗어나는  S사장을 웃어주며 나는 가게로 향했다.
S사장은 잊었다는 듯 커다랗게 내 뒤에 대고 소리쳤다.
“내가 저 녀석들 나무판자를 모조리 끌어다 버렸습니다. 저놈들 안보일  때 말입니다.”
나는 못 들을 척 서둘러 가게에 들어섰다.
S사장의 커다랗던 음성이 의아했던지 가족이 물었다.
“괜찮아요?”
“물론 괜찮아.”
나는 속으로 대답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세상은 격파하는 게 아닐 거야. 마냥 흐르는 게 순리인 것 같아.)

우리 집 사전에는 고발이나 고소가 없다. 신고 역시 화재신고 정도만  한다.
내게 남겨진 소중한 시간들 아무 일에나 낭비하고 싶지가 않다.
세상과 예술을 아끼기에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고통에서 벗어나서야 평화가 온 게 아니라, 고통 중에 있을 동안 나는 특별히  평화를 얻었는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에 젖을 때 간혹 있어 왔다.
내게는 노숙자들이 전혀 거치적거리지도 않고 불편할 일이 없는데,  다른 이들의 눈에는 가시처럼 쓰리고 따가운 모양이다.
(나는 거지사촌쯤 되는 존재?)
저 높은 이의 시선으로 부각시키자면  우리 모두 노숙자들이 아니려는지...

초인종이 울린다.
다시 S사장이었다.
얼떨떨한 표정을 숨기며 나는 가게 문을 열었다.
“아드님 있어요?”
“네. 있어요.”
“산책길의 수도가 크게 고장 났어요. 저놈들이 머리감고 옷을 세탁하느라 난리를 치더니 결국 고장을 냈지 뭡니까?  당장 신고하고, 수도 자체를  아예 없애버리라고 하세요.”
“하하.  잔디나 나무들은요?  그리고 쟤들도 사람인데 샤워라도 하게 놔둬야 할 것 같은데요.”

가족은 시청에 전화도 하고 수도 국의 홈페이지를 검색하더니 메시지도 보내고 그런다.
우리 집 사전에 첨부해야겠다.
수도고장신고도 한다!
가로등 사이의 플래카드 되어 펄럭이는 ‘물을 아끼자'는 캠페인이 느닷없고 속절없어만 보인다.


2013년 1월 7일 월요일

CCTV





      맹하린


온세 지역에서 의류도매상을 잘 하더니, 15년 전 미국으로 재이주를 떠났었다.
그랬던  K여사 내외가 금요일 오후 불현듯 나타났다.
둘째 손자의 돌 꽃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목요일 아침 아르헨티나에 도착 했다 한다.
나는 그분들이 손자의 돌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하지 않고, 우리 가게에 주문하려고 아르헨티나에 온 것처럼 반가웠지만, 호들갑은 사양했다.
(꽃이나 많이 넣어 고급스러우면서도 산뜻하고 예쁘게 장식해야지…….)
따님 결혼 꽃은 물론이고 작년에 큰 손자 돌 꽃도 우리 가게에 주문했었다.

한국으로 치면 강남 땅 정도 되는 Puerto Madero 지역의 중국식당 Royal China로 토요일 오후 배달까지 도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우리 교민들의 대다수가 상류층 부류에 진입한지 오래고, 치안문제의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잔치나 행사의 장소가 때로는 급전환을 시도하는 추세다.

토요일 새벽, 나는 몇 개 쯤 겹쳐 있는 예약에 대비하려고 6시 반경 가게에 도착했다.
7시쯤, 어딘지 모르게 가게 밖이 소란스러웠다.
현지인들 간에 싸움이 터졌지 싶었다.
투덕투덕, 퍽퍽, 서로 두들겨 패는 소음도 들려왔다.
나까지 구경하고 상관할 일은 못된다고 단정했다.
길에서 일어나는 사건마다 모두 구경하고 참견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그런데 오아시스받침을 가지러 매장에 나갔던 나는 금세 작업실로 다시 되돌아오고 말았다.
가게 건너편의 산책길에 예닐곱의 경찰과 등 뒤로 수갑을 찬 채 앉아 있는 현지인 남녀와 그리고 엎드려뻗친 자세인  또 한 명의 현지인을 액션영화 관람하듯 바라보고 말았다.
경보 등을 켠 경찰차들과 구급차는 서로 누가 더 많이 현란하고 요란하게 반짝일 수 있는지를 내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들렸을 사이렌 소리는 지나가는 중이려니 그렇게 예사로 지나쳤을 확률이 많다.

영문을 알 도리가 없었지만, 이웃의 그 누구에게도 오전 내내 내색하지 않았다.
내 주위에서 나보다 일찍 출근하는 사람은 몇 년을 가도 없었고, 그 일에 대한 해답을 듣기에 앞서 내 쪽의 설명이 한층 불가피한 상황을 연출 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최근의 나는 내 스스로 느끼기에도 어딘지 모르게 전혀 나답지가 않다.
그런 이유로 장난기만은 여전히 살리는 중이다.
편의점 K여인이 문간에서 몇몇의 쓰레기 나부랭이를 서너 번에 걸쳐 발로 차내는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잽싸게 다가가 발길질이 그렇게나 재미있으면 나도 해봐야 한다며 나는 그녀를 고스란히 흉내 냈다.
자연스레 K여인을 파안대소하도록 유도한 일이 되었다고 본다,

오후 다섯 시가 다 될 무렵, Royal China에 가려고 서둘렀다.
큼직한 사방 화와 두 개의 유리화병에 얹을 꽃 장식을 싣고 레미스로 출발했다.
여름휴가철이라선지 거리마다 자동차들이 눈에 띄게 적어 상상외로 빠른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40분까지도 정체현상을 일으키던 길이었다.
아르헨티나 역시 한국처럼 날이 갈수록 자동차들이 늘어나고 있다.

레미스 기사 후안에게 질문하려고 오전 내내 침묵하고 있었다는 듯 나는 돌아오는 도중에
선뜻 물었다.
"오늘 아침, 우리 가게 건너편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대낮엔 노숙인 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밤이면 마약판매원인 청년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왼편에서 걸어오다가 오른편에서 걸어오던 다른 세력의 한 명과 패싸움이 벌어졌었다고 한다.
우리 가게와 매우 근접한 곳에는 시청에서 설치해 둔 CCTV가 있다.
문제의 그 장면은 고스란히 포착되었고,  빠르고 강경하게  따로 지시를 받은 경찰들이 순식간에 속전속결을 단행 했었다는 설명이었다.

이렇다하게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가능한 한도에서 뭐든  상관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에 치우친 경찰들이 마약쟁이들을 꽤나 두들겨 패더라고 했다.
누구 하나 죽어 없어졌을 수도 있었던 패싸움은 경찰의 개입으로 일단락 됐다는 의미도 된다는 얘기였다.
나는 서부영화도 갱영화도 아닌
마카로니웨스턴에 나오던 돌아온 장고의 세상 역시 아니고 아닌
빠꼬(싸구려 마약)꾼들 벌판에 살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 마끄리가 일을 하긴 하는구나.
한인 타운을 관할하는 50경찰서가 그렇게 빠를 때도 있구나.
CCTV가 제대로 작동을 하고 있구나.
한인 타운 회가 미리미리 정책적 교류와 악수를 굳세게 많이 해뒀구나.







2013년 1월 1일 화요일

펠리스 아뇨 누에보




    맹하린


아침 8시까지 성묘 다발 3개를 준비해 놓으라는  고객의 주문에 맞추려고 6시쯤 집을 나서게 되었다.
영락교회 근처에 둥지를 튼 20대의 노숙인 들이 커다랗게 인사를 건네 온다.
"아쥼마(아줌마), 펠리스 아뇨 누에보(새해에 복 받으세요)!"
"이괄 멘떼(마찬가지로)!"

정원이라는 이름의 식당 앞 산책길에서는 피식 웃음이 터진다.
벌써 보름째나 그 자리를 지날 때마다 습관적으로 웃는 웃음이다.
부인회 임원인 L여인이 보름 전의 오후 무렵, 엉덩이 부분이 암팡지고 사람보다는 약간 키가 큰 덕더구리란(덕란)을 올려다보며 현지인 여인과 대화 중에 툴툴대고 있었다.
아랫부분으로 흐르는 마르고 갈색이 된 쭉정이와 다름 아닌 머리카락들(?)을 누가 모두 뜯어냈다는 투정이다.
나는 그녀와 안부의 포옹을 나눈 뒤 선뜻 이실직고 했었다.
"나였는데?"
나는 산책길의 나무들에 붙어있는 노랗거나 퇴색한 잎, 또는  가지들을 그동안 자주 손봐줬었다.
"아이고, 이 나무는 우리가 20년을 집 앞의 화분에 길러 온 나무인데 우리만 보느니 다른 이들도 보게 하자고 얼마 전 내다 심은 나무랍니다. 알아도 우리가 더 잘 알죠. 그냥 놔둬야 훨씬 잘 자라거든요? 그렇게 마르면서 크는 게 이 나무의 특징이에요. 오죽하면 우리 집 양반이 악담을 다했을까.  이 나무의 겉잎을 누가 다 뜯어냈다고, 어떤 손모가지인지 당장 부러져 버려라! 그렇게 ."
"하하하."
환희작작  웃음부터 터뜨린 나는 순간적으로 내 손모가지를 올려다 보다가 자세히 내려다보게도 되었다.
"아직은 멀쩡한데요? 모든 나무의 삭정이들은 제 때 따 줘야 따로 영양소를 빼앗기지 않아요. 앞으로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왕성하리라고 확신 합니다. 약속까지도 할 수가 있어요."
"글쎄 우리가 자식처럼 키운 나무라니까요. 알아도 우리가 더 알죠."
그런데 그 나무가 보름이 되는 요즘 머리카락의 숱을 푸르면서도 놀랍고 풍성한 모습으로 잔뜩 내려뜨리는 중인 것이다.

나는 며칠 전 L여인의 남편이 허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손목이 아니고 왜 허리지?)
살아오며 나는 수차례 경험했었다. 내가 누구를 욕하면 그 욕이 누구에게 미처 닿지 못할 경우, 결국은 내게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결코 어떤 누구에게도 욕을 사용하지 않는다.

제일교회 앞의 산책길을 지날 때는 되도록 땅을 보며 걷거나 하늘을 올려다보며 걷기를 즐기고 선호한다.
제일교회를 지키는 현지인 Vigilancia(사설경찰)와 매일 인사하기가 약간 겸연쩍어서다.
가끔은 길을 사이에 두고 고개를 까딱하거나 손을 들어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오늘 역시 오른쪽나무들과 눈 맞추며 그곳을 지나고 있었다.
"세뇨라( 아주머니)!"
그 사설경찰이 나를 불러 세웠다.
나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길 가장자리까지 다가오더니 길이라는 돗자리 앞에서 한국식으로 허리를 잔뜩 숙이며 인사를 보내 왔다.
"펠리스 아뇨 누에보(새해 복 받으세요)."
나는 순간적으로 길이라는 돗자리의 중간쯤까지   갔고,  그 역시 스스럼 없이 다가와 우리는 길이라는 돗자리 위에서 서로 악수하며 각자의 인사를  충실하게 다시 해냈다.
"펠리스 아뇨 누에보."
"펠리스 아뇨 누에보."

가게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나무들과 꽃들과 세상을 향해 새해인사를 동서양식 마구 뒤섞으며 작게 외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펠리스 아뇨 누에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