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8일 토요일

우기(雨期)의 세찬 빗소리를 들으며

         맹하린

아르헨티나 한국일보

2012년 8월 28일


어쩌자는 심사(心思)인지 비님이 일주일도 넘게 쏟아지고 있다.
그쳤는가 하면 또 쏟아지고 내린다 하면 다시 그친다.
어제 3시쯤 문협의 P고문이 예고도 없이 나타나셨다.
어쩌면 비님 탓인지도 모르겠다.
시댁 쪽  항렬로 아들의 아저씨뻘이라선지 오실 때마다 조카 주라며 과자를 사다 주신다.
차를 대접하려는 눈치가 보이자, 문협의 L회장 가게에서 마시자며 휑, 먼저 가신다.
L회장이 운영하는 가게에 간 지 열흘도 더 됐다.
헌옷은 그만 사 입고 이제부터는 한국수입옷의 오페르타(세일)로 구입방식을 바꿀 작정  같은 걸 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한다면 하고 안한다면 안 한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안한다면서 할 때도 있다.
'개인의 취향과 개인주의, 그룹에 속하고 싶은 열망과 그 그룹과 구별되고 싶은 욕망이 함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짐멜의 패션에 대한 위와 같은 지적은 사실 내 패션에 대한 자세와는 연관성이 전무(全無)한 개념일 뿐아니라 생뚱 맞은 지론(至論)이기도 하다.

L회장이 녹차를 준비하는 동안 P고문은  L회장이 키우는  반려견 방울이의 애꾸눈을 의아해 하시며 내게 그 이유를 물으신다.
"10년쯤 되었을 것 같아요.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엄마(L회장) 찾아 길 건너 가다가……. 방울이는 엄마 찾아 삼 만 리의 주인공이 아르헨티나로 엄마를 찾아  왔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던 모양입니다."
P고문의 빗소리를 밀쳐낼 것만 같은 파안대소(破顔大笑)...... .
(나는 대체적으로  문협식구들과 지인들 앞에서  좀 웃기는 편이며  공주병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내 생각으론 여성회원들 앞에서 몇 번 밖에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내가 야한 얘기도 잘한다나 뭐라나. )
마침 녹차를 내어 온 L회장이 부연설명을 시작한다.
"그때 방울이는 눈만 다친 게 아니었어요. 오른 편 장기(臟器)하나까지도  성하지 못하다고 했었거든요. 의사가 수술해야 한다고 했지만, 결국 저의 기도로 치유가 가능했답니다."
(때로 L회장은 전도회장처럼 발언한다.)
따지고 보면 셋 다 카톨릭 교우다.

P고문  역시 질 수 없다는 듯 10여 년 간 키우던 강아지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시며  눈에 안보이는 바통을 L회장에게서 이어 받는다.
그분의 처제가 미국으로 떠날 때 물려 준 강아지였다.
이틀 동안 앓더니 그만 세상을 떠나더라고  이미  이야기 보따리의 네 귀퉁이를 풀어 놓은 상태시다.
어떻게 처리할까를 온세 지역의 친구에게 전화로 물으시자, 까짓 똘똘 포장하여 쓰레기통에 버리면 간단하지 참 걱정도 팔자라는 답을 얻으셨나 보았다.
가족으로 키우던, 자식 같던 존재를 차마 그럴 수는 없다 싶어 깨끗한 천으로 싸고 또 싸서 맞춤한 종이 상자에 일단 담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근교인  merlo 행 기차표를 끊었고,  한 시간 후 도착하여  한참을 걷고 걸어 어느 광야에 묻으셨다는 설명이셨다.
나는 그때 순간적으로 강아지의 운구가 실린 장의차를 무릎에 올리고 차창을 바라보며 이별여행을 하고 계신 P선생의 고즈넉한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집에 도착하니 미국의 처제가 우연처럼 전화를 했더라는 대목으로 이야기보따리를 다시 묶으시기 시작했다.
P고문은 처제를 동생처럼 아끼고 있고,  처제는 P고문의 셋이나 되는  따님들  유학 뒷바라지를 해내는 처지의,  간호사를 직업으로 가진 50이 가까운 독신주의자다.
그녀는  아르헨티나에 살 때도 현지인 병원의 간호사였다.
두 사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칭을 생략하는  사이다.
나와 P선생은 아주 가끔씩  시시콜콜한 얘기를 전화로 주고 받는 사이고.
그래서 그분의 처제와 따님들이 맨날 전화 해서는 사람에 대한 안부는 제쳐 두고 강아지만 찾는다는 정도는 이미 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라고 전화에 귀를 대어 주면 강아지는 그야말로 너무나 슬픈 표정으로 변해서 함게 눈물을 뚝뚝 흘린다는 얘기도 기억하고 있는 나다.
아니나 다를까 강아지의 안위부터 챙기고 말았나 보았다
"형부, 내 강아지 잘 크고 있어?"
"그럼, 잘 크고 있지."
"잘 키워야 돼?  어젯밤 꿈을 꿨잖아. 그런데 아르헨티나에 있는 강아지가 미국의 내 집에는 왜  들렀을까?"
P고문은 내색이라는 내색을 온통 삼가고 딴청만 피우셨다는 실토를 이야기 보따리 안에 뒤늦게 꼭꼭  여미고 더욱 여몄다.

나도 질세라 강아지 얘기를 꺼내야 하는데, 그런데 나는 애석하게도 강아지를 안 키우는지 못 키우는지 그럭저럭 흐르고 흐르며 사는  것만 즐기는 주의다.
내 한 몸 건사하며 살기도 버거운 나는 남의 강아지는 예쁜데, 키워 봐야겠다는  맘 같은 건 전혀 안 하고,  하물며 못 한다.
누가 나를 키운다고 팔 걷어 부치기 전에 내가 나를 잘 거두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만  날이면 날마다 하늘하늘 흩날리거나  차곡차곡 쌓이는 탓이다.
내 지인들과 내 그대들에게 상처나 주지 말아야겠다는 상념만 강아지의 털처럼 보들보들 보드랍게  살아 있기도 하고 누어 있기도 한, 그렇고 그러한 상태다.
그렇찮아도 얼마전 J교회에 다니시는 문우님께서 설파하셨다.
장교단으로 구성된 남전도회 어르신들이 저 꽃집에 있는 꽃을 왜들 못꺾느냐고 그랬었다는 우스개였다.
(아이고... 남편의 병치레를  8년이나 해낸 내가 또 누구 뒷바라지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말쌈?)

인생에 있어 상처란 꼭 싸움에서만 생기는 게 아니다.
너무 자상해도 너무 관심을 쏟아도 그게 결국은 상처가 되는  것이다.
생각하자면 인생 참 슬프고,  생각하노라면 인생 참 행복하다.
다행이다.
맨날 슬프거나 허구헌날 행복한 게 아니라서 말이다.
그러나 행복하다.
맨날 슬픈 것 같고 맨날 기쁜 것 같은 내 변덕 때문에 말이다.

나는 산책시간이 다가오기도 했고, 시간을 지켜야할 예약도 있었으므로 4시경 L회장의 가게를  나왔다.  물론 정중한 인사를 잊지 않고 남겼다.
두 분을 찰나처럼 웃겨 주려고 해낸 인사가 배꼽인사다.
밖은 여전히 비와 땅과의  속삭임이 소근소근  은밀한 비밀처럼 계속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번  겨울장마는 참으로  대단한 저력이 있었다.
신비로운 장마였다.
해도 보여 주고, 초생달도 보여 주고, 특히 구름, 그리고  바람과 추위와 온화함 역시 보여 줄 건 다 보여 주는, 파노라마에 버금가는 스펙터클한 장마였다.

밤중에 세찬 빗소리에 취한  채 나는 이 글을 적고 있다.
내 서재의 벽에 걸린 뭉크의 '절규'가 나 대신 비의 후련함을 부르짖고  있었다.






댓글 4개:

lovemate :

8월내내 비가 왔어요.
창을 열지 못해 방안 가득 온통 쾌쾌한 냄새와 끈적끈적하네요.
예전에는 비 맞고 걸어가는 사람을 보면 낭만 있게 보였는데 이젠 청승맞게 보이고,장사걱정을 하는 제자신을 보면,저 역시 이젠 나이가 들어가나 봅니다. 아마 그만큼 세상이란 때가 묻어 낭만보다는 현실에 집착하는 얄팍한 계산이 마음에 깔려있는 가봅니다.ㅎㅎ
오늘은 모처럼만에 구름한점없는 아름다운 날씨이지만 그저 이불 푹 덮고 한잠 푹 자고나면 이런저런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질것 같은데 아들 녀석이 외출하자고 하니 또 옷을 주섬주섬 입습니다...
이제 비가 그만 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님과 같은 대상 다른 생각이네요.ㅎ

maeng ha lyn :

8월 내내였나요_
비님을 워낙 좋아해서°°°
그래서 비님이라고 존칭ㅎㅎㅎ
당분간 안 오겠죠.
언젠가, 걱정은 90 몇 프로 헛수고라는 글 님이 게시판에 올리셨던 듯 한데요...ㅎㅎㅎ
니꼬는 잘 있나요_
장사 걱정 안 하면 장사 하는 분 아니시죠.
그래도 우린 장사라도 한다는 사실이 중요해요.
잘 되실 겁니다.
그러시길 바라구요.
좋은 연휴 보내시기를...
모간도 필요하심 드릴게요.구웠어요.
몇 분 드릴 생각...
좋은 연휴시기를!!!
어떻게 전하징-----

lovemate :

어제 백구에 지나가다가 님의 가게를 지나쳤어요. 마가렛 꽃집 맞죠? 휴일인데 가게가 오픈되 있더라고요..
"저기 들어가면 님을 볼수 있는데" 하고 한참 망설이다 돌아갔습니다. ㅎㅎ
꼭 한번 찾아 뵙겠습니다. 어쩌면 우연히라도 길에서 마주친 인연일 수도 있겠네요.
그냥 어제 일이 생각나서 뎃글 남깁니다.
오늘도 상쾌한 하루되시길..

maeng ha lyn :

저는 국경일이나 휴일에도 가게를 엽니다.
묘지를 방문하는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꽃다발을 만들어 주는 일이 하나의 의무이고 책임처럼 느껴질 뿐아니라, 가게는 저의 오피스텔 역할을 해주거든요. 제가 철저할 땐 얼마나 철저한지 집에서는 컴을 안하므로 어쩌면 컴퓨터 때문이기도 하고, 행여 님같은 그대들이 들르시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ㅎㅎㅎ

꼭 들르실 거죠?
커피는 믹스커피 정도 타드릴 수 있음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