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2일 수요일

커피, 그 매혹적인 존재



     
          맹하린


1992년도의 8월에 내렸던 아르헨티나 최고의 강우량이 277mm였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엔  8월 21일까지만 해도  223mm의 비가 내린 탓에 아르헨티나 8월의 역사상 새로운 기록 달성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으로 기상청은 예상하고 있다.
오지랖이 넓은 편은 아니지만, 한 오지랖은 한다고 보는 나는 은연 중 교민 경제가 우려되기 시작한다.
아베쟈네다 의류 도매상의 판매가 원활해야 고리처럼 연결된 타 업종들이,  정체(停滯)되거나 삐걱대지 않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내 지인들이 하나같이 아베쟈네다에 구축(構築)된 하나하나의 기둥이거나 주춧돌이거나 지붕, 그리고 벽이나 현관문의 역할을 이어 가고 있음에랴.

소규모의 자영업자인 나지만 항상 나 개인의 영달(榮達)에 앞서, 비만 많이 내려도 교민 경제에 대한 염려를 우선으로 삼게 된다.
그러니 내가 오지랖이 아닌 것 같지만 한 오지랖 한다는 이실직고(以實直告)같은 걸 하게도 되는 것이다.

2001년에 내가 꽃가게를 맡을 무렵에는 아르헨티나 사회 전반(全般)에 걸쳐 제 4의 달러파동이 발생했던 시기(時期)였다.
제 1은 군정(軍政)이 끝나던 무렵이었을 테고, 제 2는 말비나스(포클랜드) 전쟁을 치루고 난 뒤였을 것이며, 제 3은 IMF가 터졌던 1985년도의 전 후반에 걸친 시기(時期)가 아니었나 싶다.
그 다음이 2001년도였다.
더불어 지금은 제 5의 달러 파동이나 마찬가지의 현황(現況)에 처해 있다.

관심이 많아 항상 눈독을 들이던 한국인이 운영하던 꽃 가게가 2000년도에는 1만 5천 달러에 매물(賣物)로 나왔었는데, 2001년의 달러 파동이 닥치자, 2천 달러로 파격적인  하락(下落)을 했다.
때마침 C신문사를 그만두었던 나는 서둘러 계약을 하게 됐었다.
그때만 해도 꽃 집이 두 개 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꽃시장에서 결혼식 꽃을 트럭으로 구입해 오는 모습을 여럿이나 되는 이들에게 들킨 모양이었다.
개신 교회의 헌화 회에서 꽃 봉사 일을 해내던 몇 분이 유행처럼  꽃 집을 차리기 시작했다.
저축 좀 해야지 싶으면 꽃 집이 생겨났다.
하물며 내게 꽃 집을 인계(引繼)했던 새댁 들까지 서너 번은 자리를 옮기며 다시 차렸다가 몇 달도 못 견디고 다시 문 닫거나 그래 왔다.
차후에 꽃 집은 절대로 차리지 않겠다고 했던 새댁 들이었다.
분명한 것은 나는 그때 2천 달러에 차린 꽃 집으로 밥은 먹고 살지만, 그녀들은 매번 몇 만불씩을 투자해도 얼마 못 가 그만 둔다는 점이다.
밥만 먹기가 괴롭고  힘겨운 모양이다.
(칫! 밥만 먹어도 고마워 하기가 아무 한테나 쉬운 줄 아는 모양이지?)

이 몸은 그럴 때마다 교민 경제부터 걱정하기 시작하는 아이러니의 만발(滿發)이다.
소규모인 꽃 가게가 이 정도니,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추세인 아베쟈네다 의류 도매 상인 들은 어떤 현상(現狀)에 처할 지가 눈에 훤히 보이게 되는 것이다.

4만이라던 교민 인구가 2001년 급격히 줄어 2만 정도 밖에 안 남아 있다고 들  말한다,
호주나 미국, 또는 캐나다로 빠지던 교민들이 이웃 나라나 멕시코로 특히 많이 들 떠났다는  얘기다.
나는 편하게 장사한다.
화분도 준비를 많이 하면 매상(賣上)이 훨씬 웃도는 수준에 이를 것이다.
그런데 주로 생화(生花)를 취급한다.
나는 부자(富者)가 되는 일을 경계(警戒) 한다기 보다, 자유방임주의(自由放任主義)를 표방하며 살기를 선호하기에 더 그렇다.
사람은 가게를 가꾸고, 가게는 사람을 가꾼다고 말하면 지나친 역설(逆說)일까.
세분화(細分化), 차별화(差別化), 가치창출(價値創出).
내게 몹시 낯선 언어(言語) 들이 가끔은 윤택한 삶으로 자연스럽게 나를 인도하겠다고 유혹의 눈길을 보낼 때 또한 없지 않아 있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나에 어울리게 살아내고 싶다.

극키르츠네르파인 에드가르도 데뻬뜨리 하원의원은 “키르츠네르파 내부나 다른 당을 아무리 훑어 봐도 대통령 크리스티나를 대체할 인물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3선을 부추기고 있다고 매스컴은 전한다.
3선이 가능하도록 헌법 개정을 추진하자는 목소리까지 드높은 국면(局面)에 이르렀다.
대통령 크리스티나로서는  자연스러우면서도  태연한 자세로  침묵을 고수(固守)하고 있는 가운데,  호르헤 사빠그 네우껜 주 주지사 역시  질 세라 “3선은 허용해야 하며 전체적인 헌법 개정 없이, 일부 조항의 수정 만을 통해서도  3선은 허용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현실이다.
연극 ‘상복(喪服)이 어울리는 일렉트라’가 아니라 상복(喪服)이 어울리는 대통령 크리스티나와 그의 정책과 행정력을 몇 년쯤 더 지켜봐야 하는 시대(時代)를 그려 보게 되는 실정(實情)의 작금이다.
아르헨티나 국민은 물론이고 우리 이민자들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일까.
너무 오랜 집권(執權).
크게 명예(名譽)롭지는 않아 보인다.

많이 개었다고는 해도 다시 흐려지는 날씨도 그렇고, 커피나 한 잔 마셔야겠다.
굳이 핸드드립으로 내려 마시진 않더라도 커피도 일종의 생(生)을 향한 전략(戰略)이다.
내가 지향하는 일 중에 가장 나를 편하고 가깝게 하는 존재가 바로 커피다.
마치 숨겨진 애인과 같으며,  든든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쓴맛을 안기는  친구와 다름 아니다.
커피, 그 매혹적인 존재가 있어 언제나 크고 작게 감사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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