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7일 월요일
크리스티나
맹하린
한인 타운에 위치한 우리 가게의 건물은 현지인 크리스티나가 주인이다.
1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그녀의 남편이 물려준 부동산이라고 한다.
핫도그와 떡꼬치를 취급하는 분식센터와 편의점, 그리고 곡물상회와 한국수입상품을 전문으로 하는 M미니 백화점, 거기다 우리 꽃집이 아래층에 소재해 있고, 이층은 재활용품을 사고파는 바다장터가 전체를 장악(掌握)하고 있다.
전부 한국인들이고, 대부분의 가게가 3.5m x12m의 면적을 지녔다.
우리 가게를 위시한 몇 가게는 하나씩만 사용하지만, 곡물상회는 두 개를 터서 하나로 사용하고 있고, M미니 백화점은 세 개만 터서 매장으로, 네 개는 트지 않고 창고로 점유하고 있다.
그런데 가게 주인 크리스티나는 월세를 제멋대로 올리는 데다, 가게마다 들쑥날쑥 차이를 두고 있어서 시시때때로 문제가 돌출되고 만다.
계약서도 기한(期限)도 있긴 엄연히 존재 하지만, 거의 무용지물(無用之物)일 뿐이다.
몇 달도 안가 지병(持病)이 도지는지 인플레이션에 의해서 어쩌고를 찾으면서 월세를 올려야겠다는 강압적인 주장을 전달하기 위해 몸소 행차하듯 나타나는 크리스티나.
안 올려 줄 거면 당장 비우라고 강하게 나올 때가 대부분이다.
초장에 강하게 말해야 성공적이라고 믿는 주의다.
M미니 백화점과 바다가게는 여러 개씩 사용한다는 이유로 월세의 급등을 여러 차례 눈 감아 준 상태지만, 그런 입에 발린 혜택이란 것도 사실은 다 소용 없는 선심(善心)이고, 혜택(惠澤)같지만 한 톨도 혜택이 아닌 셈이다.
전기세와 수도세와 가게 보험금에서, 그동안 못 받은 걸 모두 챙겨가는 매우 교활한 수법을 요리조리 실행하기 때문이다.
가게 보험금.
편의점 여인은 그 문제만 불거지면 부화가 치솟는 기운이 얼굴에 역력하게 나타난다.
가게 보험금을 세입자가 내는 경우는 첨 봤다고 따지며, 만약 가게에 불이 나면 누가 보상금을 타느냐고 물었나 보았다.
당연히 주인이 탄다는 뻔한 답이었다고 한다.
그런 보험은 난생 듣도보도 못했다는 얘기다.
공과금들의 고지서들도 크리스티나가 자기의 살림집으로 보내지도록 오래 전에 조치를 해둔 터다.
기가 막힌 건 계량기도 따로 설치를 금하며, 공동으로 한 장만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전체적으로 얼마가 정확히 나왔다는 걸 아무도 모르는 상태가 되도록 만든 것.
몇 번인가 반모임 같은 걸 열어 대표로 M미니 백화점 사장을 앞세워 봤으나 도대체 먹혀들지가 않는다.
누가 히틀러를 독재자라고 이름 지었는가.
우리의 가게 주인 크리스티나가 바로 독재자인 것을.
하물며 반모임을 하면 무얼 하겠는가.
두어 가게가 미리 겁을 먹고 당장 만나, 우리 만나! 그런 노래를 당장 나가 어서 나가로 바꿔 부르는 크리스티나에게 초장에 참패를 당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크리스티나의 요구대로 월세가 올려지는 일로 사건의 마무리가 이룩되는 것이다.
그나마 우리 가게는 내가 살살 어르고 버텨서 다른 가게보다 몇 달 뒤에 올려 주기에 이르고는 있지만, 이점만 봐도 문제가 아니려는지…….
달래고 버티면 몇 달은 봐주다니?
그 모든 가게에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돌출 될 때마다 아들이 통역을 맡아서 해주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하여간에 재계약 때마다 보증인이 없어도 되고 예치금 두 달 금액도 생략하고 공증비만 지불하는 방식을 누리고 있는 셈이긴 하다.
그런데 전기세와 수도세 등을 터무니없이 올리려 들며 여러 배려에서 파생되는 손해 같은 걸 만회(挽回)하려는 느낌을 못 버리게 되자, 아들이 강한 주장을 짧게나마 펼치기에 이르렀다.
결국 우리 가게의 공과금은 다른 가게에 비해 가장 낮은 가격으로 책정되는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가장 전기세를 많이 내는 가게들은 물론 가게를 여러 개 사용하는 바다와 M 미니 백화점이다.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 아닐 수없다.
바다가게와 M미니 백화점은 다달이 5천 페소를 전기세로 지불하는 것이다.
가장 억울한 건 우리 가게라는 걸 다른 가게들은 뻔히 알고 그점을 많이 애석해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에어컨도 없고, 선풍기도 고객이 와야 켜는 사람들이라서다.
겨울엔 난로도 안 켠다.
그 대신 바다가게와 M미니 백화점에서 왕창 사용하는 편이다.
편의점과 분식센터는 우리 가게보다 절반 정도 작은 면적인데도 우리가 매달 내는 전기세 3백 6십 페소 보다 곱절이나 많은 가격 8백 페소 이상을 지불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유는 근사하다.
에스끼나(모퉁이)는 원래 몫이 좋아 월세도 전기세도 더 비싸게 내야 된다는 얘기다.
아들이 또박또박 해냈던 대답은 이랬다.
“대통령 크리스티나가 복지(福祉)국가의 건설 등을 내세워 이 지역을 극빈자들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점, 또한 모든 전기세와 수도세를 최하위의 기본요금 선으로 묶어 둔 특정지역임을 당신은 우리 이민자들보다 더, 아예 깡그리 모르고 계신가 봅니다?”
대통령 크리스티나 덕택에 우리는 살림집도 기본요금을 조금 웃도는 가격으로 지불하고 있다. 하물며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절약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인 것을.
대통령도 가게 주인도 크리스티나들은 어찌됐던 대단한 인물들이라는 인식(認識)이 날로 새롭게 피어 오르는 요즈음이다.
크리스티나가 대통령으로 권좌를 누리고, 크리스티나가 가게 주인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떵떵 대는 세상.
하지만 양날의 칼 같아도 두루 뭉실 담 넘어가는 부분도 없지 않아 분명 있다.
어젠 U교회의 장로 임직식이 있었다.
작은 교회이고 장로 직에 오르는 분도 한 분이시라, 느긋하게 쉬엄쉬엄 일할 생각 같은 걸 하고 있었는데 상상 외로 주문이 많았다.
그리고 운동모임의 시상식 꽃 여럿, 돌잔치, 묘지방문 등등
대통령 크리스티나 덕택에 100페소(공정 환율 가격 20달러 상당)의 지폐가 참 흔하게 유통되는 추세다.
더군다나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전혀 기분 나쁘지가 않다.
새로 찍어 낸 지폐들이 주류를 이루는 판국이다.
가게 주인 크리스티나에게 나긋나긋 말해줄 생각이다.
“올려 주긴 할게요. 지금은 안돼요. 바케이션 시절이 지난 내년 3월부터나 가능해요.”
편의점과 분식센터는 이미 올려준 상태다.
그렇게 매번 올려 봤자, 달러로 치면 언제나 400달러라는 답이 나온다.
그러니까 내가 꽃 가게를 인수 받았을 때 400페소였던 월세가 지금은 2000페소이고 내년 3월부터는 2500페소를 지불해야할 입장이다.
가게 주인 크리스티나는 언젠가 내게 그랬었다.
“건물 하나 갖고 있지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고 골치만 깨지도록 아파요.”
골치가 안 깨지고 있는지 확인하듯 자신의 머리까지 살살 두드리며 해낸 하소연이었다.
자고새면 오르는 물가(物價)에 , 눈만 뜨면 떨어지는 화폐가치(貨幣價値).
그건 가진 자들에게도 헤어나기 어려운, 넘치거나 겹치는 부담감의 극치인 모양이다.
그래도 그렇지, 죽어라 일해도 밥만 겨우 먹고 사는 내게 고작 할 말이라는 게 골치만 아프다니!그렇게 허구헌날 긁어 가면 뭐하나?
만날 다이어트 하느라 밥도 나보다 덜 먹는 정도가 아니라 허구헌 날 굶으면서 말이다.
나는 대통령도 가게 주인도 아니고 크리스티나가 아니어서 특히 다행이라는 느낌을 최근에 유난히 자주 껴안는다.
대통령도 가게 주인도 딱히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닐 것이다.
운명이 그렇게 정해 주고 안배(按排)했을 확률(確率)이특별히 많았을 거라고 여겨진다.
어차피 운명이라면 마르가리따의 역할(役割)에나 계속 충실하고 더욱 밝게 살아야겠다는 각오비슷한 게 새록새록 다져지고 있다.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