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6일 일요일

여행 중(中)



            맹하린


먼 곳으로 가고 싶을 때가 있다.
혼자 혹은 이웃과 함께.
여행은 어디로 가는 것이라고 해도 좋지만
사실은 어디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해도 된다.
여행은 나로부터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무수한 삶을 찾아 헤매는 절실함으로 내 안으로 들어가면서
사색하는 행위일 터이다.
여행의 목적지가 다르다고 해도 되돌아오는 곳은 같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여행은 자기 자신을 기억하는 행위이다.
                   -안치운의 '그리움으로 걷는 옛길' 중에서-


작은 규모의 결혼 꽃으로  적당히 분주했던 어제.
아침 나절엔 절친이  전화주문했던 꽃을 배달한 일 빼고는 바쁠 게 없었는데, 오후엔 몇 개인가의 꽃 바구니가  겹쳐 있어  쉴 새 없이 바빴다.
산책 시간엔 중국인이 경영하는 슈퍼에 갔다.
중국 슈퍼의 여 주인 루이사는 오른 손의 검지를 피암브레(치즈와 햄, 또는 차가운 요리)를
얇게 썰어 내는 기계에 다쳐 네모난 하얀 기둥과 같은  깁스를 한 채 자랑처럼(?) 오른 손을 약간 쳐 들며  카운터 일을 해내고 있었다.
"오늘은 덜 아파요?"
"진통제를 먹고 있는데 여전히 아파요."
종업원 하나가 결근 하여,  직접 나서서 일하다가 그런 일이 생겼다고 했었다.
기계 일이 익숙지 않았던 데다, 낳은 지 6개월 된 딸 쟈니나의 울음소리에 마음이 다급했었다는 설명을 며칠 전 들었었다.
"아팅(아우스팅)은 요즘 통 안 보이네요?"
"저의 친정에서 당분간 돌봐 주기로 했어요."
아팅은 나만 가면 반가워 까르르 웃고 물품을 고르는 나를 쫓아다니면서까지 돕는, 루이사의 세 살 된 아들이다.
나는 어떤 면으로는 반가운 사람도 되는 모양이다.
꽃 시장에 가면 젊은 현지인들이 내 이름을 노래로 부르며 잠시 춤까지 춰 대서 매번 나를 박장대소 하도록 만든다.
내가 엄마처럼 느껴지나?
아무 때나 내 앞에서 학예회를 하려고들 난리다.
"급하게 일하다가 다치지 말아요. 아무리 애 보는 사람 따로 있어도 오히려 쟈니나에게 사랑을 덜 베풀게 됐잖아요."
그런 다독임과 함께 계산을 치르고 길을 건너다가,  나는 반 블록 저쪽에서 달려오는 자동차에게 순간적인 위협을 느꼈다. 그런 나머지 다급하게 뛰며 건너게 되었다.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이 기절초풍을 안했다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일 것이다.
왼쪽의 장딴지가 경직(硬直)되어 당장 걸음이 불편할 일이 발생했다.
갈 때는 멀쩡했던 걸음이 올 때는 절룩임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크게 아프진 않은데 쥐가 떼로 몰려든 나의 장딴지.
급성 담이 담벼락을 쌓거나 바리케이트까지 친 셈인지, 긴장감이 감도는 무장지대가 되었다.
나는 평소엔 호들갑스러울 수도 있지만 아프면 되레 점잖아지는 별종(別種)중의 별종이다.
가족은 예외 없이 병원이라는 언어를 피켓처럼 높이 들며 읊는다.
"X레이 찍으러 갑시다!"
"됐어! 내 아픔은 내가 가장 잘 알걸?"

퇴근 시간엔 두 블록 반인 집까지  레미스를 이용하게 되었다.
욕조(浴槽)에 뜨거운 물을 받아 무릎까지 담그고 앉아,  내가 나에게 여러 번 덕담(德談)을 건네게 되었다.
"겁 없이 뛰다가 다치지 말아요. 딴 때는 상관없으나 , 뛸 때 만은 나이를 기억해요. 아무리 돕는 사람 있어도 고객들 보기에 민망스틱(?)하지 않겠어요?"

나는 오늘 역시 순례객(巡禮客)되어 절룩이며 걷고 있다.
어제보다는 한결 가벼워져서,  날아 볼 수도 있을 듯 한 절룩임이다.
90프로 정도 낫고 말았다.
절친이 꽃값을 가져다 줄 때,  엄살 잔뜩 섞으며  걸어 낼 작정이었는데…….

오늘도 나는 나로 돌아오기 위해 여행 중이다.
마치 너무 오래 걸어 낸 사람처럼 절룩이는 걸음이다.
등에 진 짐은 전혀 무겁지가 않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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