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일 수요일
서반아어
맹하린
1987년
이민 온 지 2년이 지났을 무렵, 서반아어를 배우기 위해 꼬리엔테스 거리에 있는 학원에 다닌 일이 있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학원이었고, 현지인 여성이 강사였다.
여러 가지 동사변화와 인칭변화에 대해서 하나씩 깨우쳐 가면서, 그동안 서반아어를 얼마나 무지(無知)하게 사용해 왔는지, 지금껏 사용해 왔던 짧으면서 긴요했던 말들이 모두 항의하면서 나를 향해 와르르르 달려드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어디로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기까지 했다.
노력없이 다른 나라의 언어를 극복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몇 달 가지고 해결될 일도 아니어서 지금도 크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지만, 행여 말하는 중간에라도 제대로 표현하려는 의식만은 갖추고 있는 셈이니 그점이 하나의 수확(收穫) 이라면 수확이라고 할까
분명한 것은 한걸음 한 걸음 배워나가다 보니까 새로운 언어와의 만남에서 오는 희열 비슷한 느낌 같은 걸 획득하게도 되었다는 사실이다.
서반아어에 제대로 접근해 봐야겠다고 결정적인 결심을 굳히게 된 건 초등학생인 아들 덕택이었다.
어느 주말, 티뷔이에서는 초등학생들이 학예회 비슷한 걸 공연하고 있었다.
물론 현지인 어린이들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소원이라도 된다는 듯 간절한 음성으로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엄마가 언제 저 애들처럼 이 나라 말을 잘 할 수 있을까?"
"하하하."
나는 기가 막혀서 그렇게 허심탄회 웃어댔지만 마음속으로는 쇳덩이가 심장을 툭 밀치는 기분이었다.
결국 내가 그 초등학생들 보다 서반아어를 훨씬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던가.
고국에 있을 때 명절이 되면 외국인 장기자랑대회가 열렸었다.
외국인들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필수적으로 한복을 입고 나와서는 주재국 언어인 한국말로 장기자랑을 해내는 프로였다.
그런데 사실 너무 반지르르하게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이 나오게 되면 어딘지 모르게 얄밉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특상을 받은 미국인의 이런 얘기가 인상 깊었다.
-가게에 치약을 사러 갔습니다. 한국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니까 발음이 매우 안 좋았지요. 내가 쥐약 주십시오, 그러니까 가게 주인이 놀라면서 쥐약은 약국에서나 판다고 대답했습니다. 쥐약이 아니고 쥐약 주세요, 아무리 그래도 그 가게 주인은 내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고 계속 답답해 죽겠다고 그래요. 할 수 없이 내가 다시 설명했습니다. 내 이를 닦으려고 그러니까 쥐약 필요합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그때서야 내 말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쥐약 아닌 치약을 내 주었습니다.
그런 정도의 실수는 적당히 재미있었고 위트 또한 넘쳐 보였다.
작심(作心) 3일이라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시작이 된다는 속담을 떠올리고 하루에 한 마디라도 외우고자 노력을 시도해 보게 되었다.
적어도 가족에게서 놀림을 받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싹튼 결과였다.
굳건한 의도를 안고 아침이 되면 단어나 숙어를 하나하나 찾아서 외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평소의 나는 한다면 해내고 안 한다면 안하는 철저한 주관을 간직한 편인데, 어인 일인지 서반아어만은 한다면서 안 하는 분야로 자주 탈바꿈을 한다.
굳이 변명하자면 서반아어를 너무 잘 하면 내 나라 말을 조금씩 앗길까를 염려한 의중(意中)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한국가요를 잘 안 듣는다.
듣자마자 가사가 머릿속에 입력되어 하루 종일 머리나 입가에서 맴도는, 여러모로 성가신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나는 계산은 잘 못하는 머리지만 외우는 건 수월한 머리라고 자인한다.
그런데 왜 서반아어는 그리 쉽게 입력이 안 되는 것인지 도대체 내가 나를 이해(理解)하지 못하겠다는 심정이다.
이제라도 다시 시작하겠다.
무조건 외울 것이다.
오늘의 숙어는 이렇다.
방해하고 싶지 않지만, 그러나…….
(No Quiero interrumpir. Pero...)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지만, 반전인가요?
그러나, 그러나...
반전(反轉)이 서반아어로 뭐였더라?
나는 현재 한서사전에서 반전을 찾는 중!!!
-초여름-
지난 주말의 분주함으로 인하여 나는 며칠을 녹초되어 지냈다.
글을 쓰는 건 물론이고 워드작업조차 불가능했던 날들이었다.
일요일 밤의 꿈엔 내가 모르는 나라에 도착되었다.
너무나 낯선 나라여서 나는 평소의 나답게 웃었고 손까지 흔들며
그 낯설고 물선 나라를 빠져 나왔다.
"내가 사는 나라에 다시 가렵니다. 아직은 그 나라를 사랑해요."
나는 다시 살아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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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님...저 왔어요..
어머니가 한국에 가셔서 이쪽 저쪽 다니라 무자게 바쁘네요.
글을 읽고 있으니깐 저도 서반어 땜시 고생한 기억이 나네요..
제경우에는 현지인을 많이 만나고 어울리고 한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지금은 한국 친구들과 만나니 다시 서반어 실력이 다시 떨어졌어요. ㅡ.,ㅡ; 항상 느끼는거지만 언어는 사용하면 할수록 향상 된다고 봅니다. 영어도 배우고 싶고, 포어도 배우고 싶은데 이 게으름이 문제네요. ㅋㅋ
ㅎㅎ
바쁨은 어느 모로 보나 좋은 일이죠.
어머니가 계셔서 제가 다 든든해요.
저는 다른 일에도 그렇지만 외국어에 크게 욕심을 안 부려요.
안 그래도 서반아어가 늘어난 것도 아니면서 내 나라 말보다 저 먼저 튀어 나와요.ㅋㅋ
모든 서양언어가 라틴말에서 파생되어선지 뭐 비슷한 거 아닌가요?
아? 방가여~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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