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2일 일요일
안부(安否)를 전하며
맹하린
토요일인 어제 오후.
고객인 끼모가 모처럼 찾아왔다.
한국인 2세인 끼모는 한국말이 서툴다.
언제나 현지인 애인과 함께 온다.
끼모라는 한국청년이 정계 진출을 앞두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여당에도 가입하게 됐다는 기사를 몇달 전 보았었다.
잔상처럼 남은 그 기억 때문에 완성된 꽃다발을 건네면서 안부(安否) 역시 건네게 되었다.
“세나도르(상원의원) 일은 재미 있어요?”
“아, 네. 뭐, 정치...그렇죠.”
끼모는 한국말에 익숙치 못하다는 걸 본인도 잘 알기 때문에 일단 토막 내고, 그 다음에야 이어 붙여 만들어 내는 편이다.
그는 내게 서반아어 보다는 한국말을 사용하려는 노력을 여일하게 보인다.
나는 그에게 서반아어로 말하기 위해 노력하고.
가만히 분석하자면 끼모는 어쩌면 나를 위해 토막 난 한국말을 열심히 이어 붙이는 지도 모른다. 하여간에 그는 완전 아르헨티노답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으니 아르헨티나 시민권자이지만, 부모를 위시한 조상을 존승하는 한국인임에도 틀림없다.
머리 스타일은 항상 벤허를 연상시킨다.
양옆은 면도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을 정도고 가운데만 무성한 갈기머리이다.
아르헨티나가 자유로운 나라는 자유로운 나라다.
정치를 꿈꾸고 민심(民心)에 파묻혀 지내기를 희망하고 있는 끼모의 머리 스타일이 그점을 증명하고 있다.
이름하여 모히칸 스타일이다.
Mojicano-Punky라고도 하며 끄레스타라고도 일컫는 모양이다.
꽃을 찾아갈 때마다 칭찬을 여러 번 해내는 대단한 에치켓쟁이다.
그럴 때 나는 노비아(애인)하고 너무 잘 어울려 보기 좋다고 말해 준다.
끼모의 애인은 여느 탤런트 보다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여하 간에 나라는 사람은 칭잔 쟁이 에치켓 쟁이한테 나약한 면모를 나 스스로에게 금세 들킨다.
(자라면서, 내가 자랄 때도 있었던가 싶지만... 아무튼 자라면서 나는 잔소리가 싫어서 칭찬만 먹고 자랄려고 매사를 솔선수범하며 자랐다고 본다. )
어떤 면으로 나는 끼모의 교양 있고 반듯한 모습에서 우리 2세들의 밝고 쾌청한 미래를 발견하고 일종의 안도감을 만끽하는지도 모른다.
어제 두 번 째로 인상에 남았던 손님은 현지인 화비안이다.
그는 옆길에 있는 레미세리아의 레미세로(대절용자가용기사)이고 이름은 화비안이라고 우리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본인을 당당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금요일에 자기 동료 산드로가 해간 것과 같은 값의 꽃바구니를 주문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밤당번이라서 내게는 낯설었다.
내가 밤에 어디를 잘 나다니지 않고 있고, 그런 이유로 밤에 레미스를 이용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가 낯설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월요일은 엄마의 생일인데, 그런데, 그런데, 나의 엄마가 아파요."
그런데를 여러 번 겹치며 거기까지 얘기하던 그는, 눈물 정도 글썽였다면 모를까 느닷없이 눈물을 떨구며 꺼억 꺽 울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찰나를 피우는 미소(微笑)만이 입가에서 망설임의 피고 짐을 거듭했을 것이다.
(나이도 40초반인 사람, 처음 본 사람, 거기다 현지인 사람이가 내게 꽃을 주문하러 와서 말 몇 마디 꺼내더니 자기 설움에 꺽꺽 울고 있네?)
사람이가... 이 말은 우리 2세들이 전체적으로 잘 사용하는 말일 것이다.
눈물이가, 연필이가, 가방이가, 가,가,가...... .
하지만 나는 금세 잘못을 뉘우치고 일단 표정관리를 위해 약간의 슬픈 얼굴을 보여야 했다.
이윽고 안도 했다는 듯 그는 내게 기습적으로 뺨을 대는 인사까지 해내고 있었다.
(내가 어느덧 약간의 모성애라도 비쳤던 것일까. 에이 참, 계속 웃었어야 했는데...)
날짜와 시간을 적고 그를 보낸 뒤 작업실에 들어섰을 때, 이미 사태(事態)를 파악한 가족이 다시 미소를 띤 나를 향해, 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대며 짧게 주의를 주고 있었다.
"쉿!"
엄마가 아프다는 사람에게 그런 표정이 뭐냐, 다시 되돌아 와 잊은 말을 보탤 경우 들키기 십상인 자세다, 등의 압축됐으면서도 매우 짧은 타박이었다.
나는 다시 웃으며 변명을 시작했다.
"매장에서 이미 그에게 웃고 말았는 걸? 처음 보는 40대의 현지인이, 하물며 남자가, 고객이라는 이름으로, 엄마가 아프다고 갑작스레 울어댄다면 나로선 다시 안 웃겠다는 보장 같은 걸 당장엔 못 해내지! 못해내지?"
나는 때로 가족 앞에서 이리도 허심탄회의 극치다.
오랜 습관이다.
"그게 바로 아르헨티노들의 효심(孝心)이죠."
그랬다.
나는 화비안의 어머니 사랑을 칭찬하려고, 격려하기 위해 그리도 짧게나마 반기며 웃었을 것이다.
화비안.
그를 백번이라도 이해한다. 나는…….
사람은 때로 아는 사람에게도 숨겨 온 슬픔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내 비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때로 웃어야겠다고 결심하면서도 결국은 울컥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금요일 저녁은 나도 아는 여인이 골프장에서 홀인원을 했다하여 가까운 식당에서 축하잔치가 있었다.
값나가는 꽃들 여럿이나 배달했다.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고객들의 주문 시(時)에 짧거나 약간 긴 안부(安否)를 주고받는 일이 내겐 언제라도 다반사(茶飯事)다.
딱히 주문을 떠나서 그들과 평소에 못한 안부(安否)를 나눌 수 있어 기쁜 일이라고 본다.
바닥창에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새겨 걷는 걸음의 땅마다 그의 이름이 닿고 찍히기를 바랐다는 옛날 그리스 사람들의 샌들은 아니더라도 나는 나와 가족이 장식하는 꽃마다 나의 안부(安否)를 얹어 그들 모두에게 축복을 전하는 일을 즐겨 실행해 왔을 것이다.
-당신은 틈날 때마다 걷고 자주 여행을 즐기십시오. 키엘케골이 그랬을 겁니다. 걷는 사람에게 잊지 못할 일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이죠. 당신은 사람들과 안부를 나눌 때 특히 웃으시오.
내가 난생 처음 신경성소화불량이라는 병을 얻어 병원을 찾았던 이민자 시절의 첫 자락일 때, 현지인 의사가 내게 처방해준 명언(名言)이다.
그날 그 현지인 내과의 현관문을 밀고 밖으로 나설 때, 내 급성소화불량의 90프로를 치유 받았었다고 나는 확신을 거듭하는 바다.
그는 과연 명의(名醫)였다고 뒤늦은 칭찬 또한 새삼 아끼지 않게 된다.
나는 오늘도 내 고객들에게 안부를 보내고 , 내 지인들에게도 봄이라는 계절의 안부를 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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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남미분들의 정서가 우리네 정서와 비슷한 것 같다고 여러 번 느꼈습니다. 정(情)과 한(恨)에 있어 공통점이 많다는 생각.
하고 계시는 일 때문에 참 많은 사연들을 접하게 되시네요. 참 귀한 일 입니다. 꽃을 만들어 주시는 것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주시잖아요. ^^
넵~
세계에서 장모를 가장 많이 모시고 사는 나라가 바로 아르헨티나라고 합니다.
어떤 면으로는 우리네를 앞지르는 한과 정을 지녔다고 봐요.
하는 일에서 많은 감사를 얻어요.
세이빙은 별로~~~ㅎㅎ
그런데 꼭 고객의 개인사를 들추려는 의도보다 사는 얘기의 소재를 얻게 됨을 감사하죠.
생을 걷는 또 하나의 길이라고도 여겨요.
만져준다는 표현 맘에 들어요.ㅎㅎ
좋은 주를 맞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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