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하린
친구 수산나가 두 달이나 무소식이었다.
우리 가게에서 세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한국인성당에 오게 되면 한 달에 한 두 번은 찾아오던 그녀였다.
엊그제 일요일에 그녀가 나타났다.
때가 때이니만큼 외숙씨 얘기를 주로 나눴다.
얘기 도중, 그녀는 내손을 잡으며 말했다.
"참 건강하시고 항상 밝으셔서 보기 좋아요."
"노동자가 오매불망 건강이라도 챙겨야 나름 걸맞지 않을까요?"
그녀가 돌아가는 시간에 나도 따라 나섰다.
흑임자로 만든 미숫가루를 사러 D떡집에 가야 하는데 함께 가자고 말하면서.
세 블록을 사이좋게 팔짱끼고 걸었다.
두 몫으로 담아 달래서 그녀에게 한 봉지 건넸다.
내 몫까지 본인이 지불하려고 했지만, 우격다짐으로 내가 다 냈다.
바쁠 때 나를 도와 준 고마움을 나는 그런 식으로 갚아 나간다.
다시 팔짱 끼고 걸어 태극당제과 모퉁이에 닿자, 7번과 50번 버스가 동시에 왔고 나란히 스톱하고 있었다.
뒤에 있는 50번 버스에 수산나는 탔다.
우리 가게에서부터 이미 꺼내어 손에 꼭 쥐고 다니던 교통카드를 그녀가 버스기사 옆의 메모난 기계에 대는 모습까지 지켜 본 후, 산책로를 택해 총총 돌아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혼자서 쿡쿡 웃었을 것이다.
버스 카드를 기계에 대던 수산나가 나보다 훨씬 유식해 보였기 때문이다.
수산나의 집엔 자가용이 세 대 있다. 남편과 아들과 딸이 각각 따로 사용한다.
그런데 수산나는 오로지 버스, 버스만을 이용한다.
수산나의 집엔 자가용이 세 대 있다. 남편과 아들과 딸이 각각 따로 사용한다.
그런데 수산나는 오로지 버스, 버스만을 이용한다.
사실은 크게 앓고 난 직후(直後)라서 성당의 독서그룹도 구역반장 위임도 모두 반납(返納)하거나 고사하고 왔다던 수산나.
온세 도매상 지역에 큼직한 옷가게도 지녔고, 비록 경제적 기반(基盤)을 확고히 구축(構築)해 놓긴 했어도, 평생을 소모해 왔을 이민자로서의 파근파근한 그녀의 일상(日常)들을 어루만지듯 나의 상념(想念)마다 다듬으며 산책로를 걷는 내게 집중포화(集中砲火)처럼 쏟아져 내리던 여름햇살을 기억(記憶)한다.
덤으로 사는 인생.
크게 근심할 일도 그다지 조심하고 싶은 일도 없이 타박타박 걷기만 하면 도달이 가능할 지점이 되는 과정에 이른 내게 지인들의 떠남이나 와병(臥病)은 일종의 쓸쓸한 아픔이 된다.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은 아직껏 사뭇 미려(美麗)하고 섬세(纖細)한 것을...... .
평소에 겸애(兼愛)를 표방해온바 여실했지만, 새삼 겸애주의(兼愛主義)에 관심이 쏠리고 쏠리는 중이다.
때로 이 나라에서의 외로움엔 나를 감싸며 마음을 휘젓는 기류(氣流) 같은 게 분명 있다.
단정하건대 부에노스아이레스 땅, 여기에서야 나는 비로소 진솔한 나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생(生)에서 더좀 강렬한 의미를 찾고 여러 숙고(熟考) 끝에 친구에 대한 아낌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됐다면 이제라도 그리 살아야겠다는 각오다.
나의 친구들에 대한 열정(熱情)은 어떤 면으로는 사랑처럼 나를 꼼짝 못하게 구속(拘束)해 왔을 것도 같다.
오늘, 유난히 셍 떽쥐뻬리의 명언이 내게 회오리친다,
"사랑, 나의 안내로 그대가 그대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
댓글 2개:
아무리 친한친구라도 서로 신뢰가 있어야 오래동안 벗으로 가능 하겠죠.
진정한 신뢰는 먼저 나를 온전히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면에서 님의 친구들분들과 님은 서로 믿고, 공정한 처신을 하신다고 믿습니다.
누가 물질적으로 많고 적음을 떠나 상대방에게 곧고 평평한 길을 갈 수 있도록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이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잘 지내시죠?
조금 전에 아나바다에 들렀어요. 문협차원에서 책을 대여해 주는데 세 권 가져다 주고 두 권 빌렸네요. 마땅히 빌리고 싶은 책이 없었어요. 집에 책이 많지만 다 읽었고, 가끔 다시 읽는 맛도 쏠쏠해요.
문협회장이 그래요. 다들 어렵다고들 하는데 왜 맹선생님은 한 번도 내색이 안 보이는가고요. 전 가게 월세 제 때 내는 걸로 대만족인 사람이거든요.
제 친구들, 만만친 않아요. 제가 간격을 잘 유지하는 편이기는 해요.네. 님의 말씀처럼 배려와 양보 참 꼭 지켜야 할 몫이죠. 요즘 페북에 드나드느라 게시판도 눈팅만 해요.
님처럼 이모티콘 쓰는 분도 발견하고 그래요. 아무리 그래도 님이 제 절친이신 거 확실해요. 그 누가 커피 한 잔 나눠 마시지 않고 이처럼 살갑게 글을 주고 받을 수 있을까요?ㅎㅎ 이참에 고맙다는 말 합니다. 고마워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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