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10일 일요일

외숙씨



         맹하린


그녀는 외가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외숙 씨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내가 외숙 씨를 알게 된 건 재아부인회에서였다.
그 당시 회장으로 선출된 이웃의 N여인에게서,  회원 가입은 물론이고 부회장이라는 임원까지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었다.
외숙 씨는 그때 회계를 담당하게 됐었다.
나는 모임도 줄일만큼 줄였고 임원을 맡지 않는 주의에 철저했었지만, N여인과의 끈끈한 정 때문에 그 일을 순수하게 받아 들였었다.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외숙 씨와 나는 매사에 의기투합(意氣投合)하며  잘도 어울렸다.
절약이 생활화된 면도 그렇고,  외출복만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게 산뜻함을 강조하며 입는다는 점이 특히  그랬다.
키는 같지만(165cm), 외숙 씨는 47kg이고, 나는 56kg였다.
신비로운 건 56kg이던 외숙 씨는 모델과 같은 몸매로 변화 되었고, 47kg이던 나는 몇 십 년 동안 9kg의 체중이 불어난 것이다.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외숙 씨는 봉사마다  열심이었고,  나는 중노동자니 서로 그 정도는 유지해야 하는 것.
너무도 나약해 보여 봄의 날이나 어머니날 대목 때는 일손이 딸리면서도 차마 연락도 못했었다.
하지만 외숙 씨와  친구 수산나는 앞치마를 싸들고 짠! 하게 나타나고는 했다.
그렇게 그녀들은 마른일 진 일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나를 거들고 도왔다.

금요일 오후.
N여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님, 외숙 씨 어떻게 해요?"
"외숙 씨가 왜요?
"상조회 게시판에 올라 왔다는데... 못 봤어요?  아직 확실하진 않은 것 같아요.  형님이 글을 올린 이은산씨에게 연락 좀 해봐요. "
"요즘 게시판을 통 못 봐요. 휴가철이라서 철저히 놀고먹느라 내 나름대로  바쁘거든요."
이은산 전 한인타운회장은 전화건 핸드폰이건 모두  불통이었다.
결국은 N여인이 다시 소식을 알려 왔다.

내가 그리도 아끼고 사랑하던 외숙 씨.
교회 갔다 오는 길에, 수입상회에 그릇이나 이불 사러 온 길에, 크루즈 여행을 엄마하고 열흘 동안 다녀왔다면서 기념용 티셔츠를 두 장 선물로 건네 주며,  함께 있는 내내, 언니라는 노래를 언니 언니 부르고 또 부른 후에나 돌아가던 외숙 씨.

외숙 씨는 그리도 허무하게 떠났다.
교회 수양 관에서 사용할 야채와 과일 등을 구입하러 손수 운전하고 청과시장에 갔다가, 도둑과 핸드백 때문에 실랑이 하는 과정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세상에나!
어떤 나라는 지진이나 전쟁이나 쓰나미로 한꺼번에 많은 사상자를 내는가 하면,  이 잘난 나라는 일부러 도둑을 키우고 먹여 한 알의 총알만을 장전한 러시안 룰렛처럼 국민이건 이민자건 전혀 상관하지 않고 순서 없이  세상을 뜨게 하고, 겨냥까지 하고 있구나.

사실, 토요일인 어제 오후는  S식당에서 외숙 씨  엄마의 팔순잔치를 지내기로 예약된 날이었다.
항상 내 일을 자주 도왔던 터라,  사방 화와 꽃다발 열 개를 부조로 삼아 달라는 언질을 나는 이미 건넨 계제(階梯)였고.
언제 저녁이나 같이 먹자며, 꼭 한 번 들르라고 하자,  엄마의 팔순잔치나 치른 후 보자던 외숙 씨.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외숙 씨.
생일 꽃바구니도 가장 커다랗게 해줄 것을.
밥도 자주 함께 먹을 걸.
자주 포옹해 줬어야 했던 것을,
외숙 씨가 떠나고 나서야 더 좀 잘해 줄 걸 하는 후회막심을 새삼 뒤늦게 꺼내고 또 꺼낸다.
오늘 하루 내내 숲속에서 외숙 씨를 찾아야 하는 역할을 떠맡은 술래처럼,  나는 하루 종일 복잡하게 헤매고 헤맨 심정이다.
그녀도 나도 장애물 경기를 거의 마치고 드디어 평탄한 코스에 도착한 것 같다고   함께 기쁨의 말들을 나누며 자연스레  손까지 잡았었는데…….

피가 흐르지 않아 자나 깨나 돈 버는 일로 수혈(輸血)을 일삼는 이민사회의 기류(氣流)에 편승하여 외숙 씨는 참 알뜰살뜰 냉철할 만큼 치밀한 부(富)를 이룩했다.
항상 나에 대한 배려와 정이 넘치고 넘쳤고.
장의사를 벌써 두 번째 다녀왔다.
월요일 아침나절의  발인예배는 물론이고, 장지까지 다녀올 작정이지만 생각대로 될 지 모르겠다. 예약이 느닷없이 닥치면 가고 싶어도 못 가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만들어 준 하트형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무심하고 무구한 표정으로  눈 감은 채  누워 있던 외숙 씨.
그동안 다복하게 잘 살고 간 게 훤히 보였다. 남편, 그리고 세 아들, 엄마, 남동생과 여동생들, 제부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아웃 포커스로 비친다.
나는 외숙 씨를 잃었다.
나의 슬픔은 이미 너무 절제력이 강하다.
그렇지만 동쪽을 봐도 서쪽을 봐도 외숙 씨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잘 가요, 외숙 씨. 차우차우!!!
진정 사랑했어요.…….


댓글 2개:

Oldman :

서로 아끼며 다독거리던 지인을 잃으셨군요. 위로부터 오는 위로를 받으시길 빕니다. 제가 힘들때 해 주셨던 위로에도 감사를 드리구요.

별일없이 건강하게 잘 계시나요? "한동안 뜸했었지"요. ^^

maeng ha lyn :

반갑네요. 요즘 페북하느라 쫌 바빴어요. 그래도 님의 블로그는 꼭 들렀답니다. 전 님이 힘드셧을 때가 있었으리라고 상상도 못했어요. 항상 받는 입장에 계시다기보다 주는 입장의 몫을 묵묵히 실행해 오심이 눈에 선했었죠~ 오고 가고 ... 그게 세상원리인데 가까운 사람들 보낼 때마다 맘이라는게 참 그렇네요.

때로는 뜸할 때가 가장 생각을 많이 하게도 되죠~ 님도 건강하시죠?